"모두 죽었네, 나와 자네 수하 모두..."

추리무협소설 <천지> 310회

등록 2007.11.16 09:09수정 2007.11.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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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의 얼굴에 다소 안심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추태감의 태도로 보아 뭔가 복안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추태감이 상만천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의 협력은 아직까지 유효한가?”


그 말에 상만천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핫핫핫… 물론이오. 당연한 말씀 아니오?”

그는 철저한 상인이었다. 비록 상대방의 등에 비수를 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약속을 이행한다고 말할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인간들을 가리켜 음흉하다느니,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느니 더 나아가 인간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권력이나 돈을 움켜쥐는 경우가 많다.

솔직하고 정당하게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락으로 떨어져 허우적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래서 어쩌면 세상은 불공평하게 보이기도 한다.

“본관은 정말 우려했다네. 자네가 생사림 안에서 본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을 동귀어진 하도록 만들고 자네만 빠져나와 자네의 큰 협력자인 성곤과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자 하는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 말이네.”


그러면서 추태감은 나이답지 않게 매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속으로는 분노가 치솟아 참을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상만천의 대답이 매우 흡족하고 그를 믿겠다는 모습이었다. 추태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모습을 보며 순진하다든다 아니면 매우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비웃었을 터였다.

허나 추태감을 그렇게 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가 말했듯이 그는 이미 상만천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상만천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상만천이 더 이상 다른 흉계를 가지지 못하도록 경고한 것이다.


“허허… 내 어찌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소?”

상만천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지적하는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

“자네 말을 믿네. 그래도 우리는 이십여 년이 넘도록 손발을 맞추어 온 사이가 아닌가? 자네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정말 인간이 아니겠지. 더구나 이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말이네.”

회의 회주로서 표면적으로나마 서로 협력해 왔던 사실을 끄집어내는 말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상만천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 절박할 것 까지는 없소이다만….”

여전히 느긋한 미소를 띠며 상만천이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렇군. 자네는 여기 온지 꽤 되는 모양이군.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말과 함께 추태감이 시선을 상만천으로부터 운중에게로 돌렸다. 그 사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짧은 순간에 표정을 금방 바꿀 수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능력이었고,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마 추태감 뿐일 것이다.

“매우 놀라워… 역시 운중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네. 이곳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면서도 우리가 전력을 투입한 생사림의 승부를 반시진도 채 걸리지 않고 간단히 끝내버렸으니까….”

그 말에 상만천의 얼굴색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대답은 질문을 한 상만천에게 하고 있었지만 추태감의 시선은 여전히 운중을 향했다.

“모두 죽었네…. 본관의 수하나 자네 수하 모두 말이야…. 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여기 앉아있는 우리들 정도이지…. 본관도 보지는 못했네…. 무조건 피하라는 말에 나는 비겁하게도 이곳으로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네. 검은 폭풍이라고 암향부동화가 말해주더군. 수를 셀 수 없다고도 했지….”

그 말에 상만천이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해룡신 위일천…! 그 자로군… 모두 죽었다는 말이 사실이오?”

이미 상만천도 이 안에서 시비가 운중에게 보고하는 소리를 들었다. 좌등이 사라진 이상 그 밖에 없다. 허나 추태감은 다시 상만천에게 시선을 던지며 입 꼬리에 미소를 매달았다.

“아… 자네의 두 딸 때문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군. 걱정은 하지 말게… 다만 자네의 두 딸을 호위하던 그 사내놈 말이네.”

“……?”

자신의 호위인 오위 중 수장을 말함이다. 상만천은 생사림에서 오위 중 수장의 인물과 두 딸 만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에게 특별히 지시를 내려 두 딸을 맡기고 운중각에 들어왔다.

“그 놈이 자네의 두 딸을 겁탈하려고 하더군. 다행히 본관이 마침 보았으니 망정이지… 하여간 자네를 대신해 본관이 단호하게 응징했네. 그리고 자네의 두 딸은 암향부동화에게 맡겨놓았으니 안심하게.”

말은 안심하라고 했지만 이것은 협박이다. 두 딸을 자신이 인질로 잡고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오위 중 수장이 자신의 두 딸을 겁탈하려 했다는 그의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오위는 절대 그런 수하들이 아니다. 그저 추태감이 그를 죽였다는 것만이 진실이다.

“역시 태감이시구려… 두 여식을 위기에서 구해주셨다니 정말 감사드리겠소.”

장군에 멍군이다. 상만천 역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색하지 않았다. 상만천이 선수를 쳤지만 추태감 역시 뒤지지 않았다.

“자네 딸이 곧 내 딸이 아니겠나? 새삼스레 감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네.”

말과 함께 추태감은 다시 표정을 심각하게 굳히며 운중을 보았다.

“자네나 본관의 수하들을 순식간에 몰살시킨 검은 폭풍… 매교신의 보고에 따르면 정말 무서운 존재들이네. 결국 위가의 힘이 아니라 운중이 남겨둔 힘이라고 봐야겠지.”

운중의 시선과 허공에서 엉킨 추태감의 눈빛은 그렇지 않느냐는 자문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운중은 약간 입술을 씰룩거렸을 뿐 확답은 주지 않았다. 추태감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의 어조는 더욱 신중해져 갔다.

“본관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왜 운중은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하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야….”

운중에게 하는 질문 같지만 모두에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정말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대답을 시원하게 찾은 사람이나 운중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안에 있는 사람은 예외 없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운중에게로 쏠렸다. 그것 하나만큼은 피아를 가릴 것 없이 공통된 의문이었다. 운중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굳이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대답을 하고 싶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답해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 하듯 자신의 의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 되어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두려웠지. 나는 본래 무림인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근골이 어떠니 체질이 어떠니 해서 선발되어 익히기는 했지만 나는 무림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지.”

누구에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그 자신도 얼마 전 깨달은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천지를 연재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 아마 다음 주면 대미를 장식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애독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인사말은 주말에 제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천지를 연재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 아마 다음 주면 대미를 장식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애독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인사말은 주말에 제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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