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금융사건, 시험대에 선 한국 언론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전문가의 '전문적 분석'과 '상식적 판단'을 들어보자

등록 2007.11.17 15:38수정 2007.11.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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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전 BBK 대표 김경준 씨가 송환돼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 대선 판도가 크게 요동칠 개연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준 씨가 송환되면서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조·중·동>도 김경준 주가조작 이 후보 연루 의혹 사건의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자에서 처음으로 이명박 연루 의혹의 쟁점을 정리해 실었으며,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비로소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 보도하고 있다. 설마 했던 김경준 씨의 송환이 이뤄지면서 이들 신문들도 더 이상은 이를 피해갈 도리가 없게 됐다.

 

<한겨레>의 보도로 수면 위 오른 BBK 사건

 

a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BBK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16일 국내로 송환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BBK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16일 국내로 송환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 남소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BBK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16일 국내로 송환돼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고 있다. ⓒ 남소연

이 문제가 대선국면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한겨레>의 보도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겨레21>은 지난 8월 <한겨레>를 대리한 현지 변호인이 수감 중이던 김경준 씨를 직접 접견해 주가조작 사건의 몸통인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였다”는 김 씨의 증언을 보도했다.
 
BBK에 투자한 다스의 실소유주 또한 이명박 후보며, BBK에 투자된 다스의 자금이 역외펀드와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그 계좌가 주가 조작에 동원된 LKe뱅크 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명박 후보는 즉각 이 같은 의혹 제기를 전면 부인하고, <한겨레>에 대해 5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언론의 추가 의혹 보도를 저지하고 나섰다.

 

그런 점에서 김경준 씨 주가조작 이 후보 연루 의혹 사건의 향배는 대선후보가 언론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가운데는 최대 규모인 이명박 후보와 <한겨레>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건의 실체적 진상 규명과 <한겨레>의 보도의 민사적 책임의 문제가 꼭 같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그것이 대선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2007 대선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지만, 사건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처럼 최첨단 금융기법이 모두 동원된 사건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역외펀드와 가공의 '종이회사'를 비롯해 일반인들로서는 좀처럼 그 실상에 접근하기 힘든 금융세계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아가 세계의 금융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합법'과 '사기', '조작'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금융시장을, 나아가 세계 경제에 개입하고, 조종하고 있는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일단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소송이 걸려 있는 <한겨레>는 물론 한국 언론의 '실력'이 시험받는 무대일 수도 있다.

 

온갖 서류와 계약으로 합법적으로, 혹은 합법을 위장하고 진행된 복잡한 금융 거래의 '실상'과 그 배후의 '주인공'을 가려내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 복잡한 금융거래의 실상과 온갖 그럴듯한 계약과 서류의 복잡한 함수 관계를 정리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그 핵심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 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한겨레> 등 극히 일부의 언론의 제외하고 다른 언론들이 적극적인 보도에 나서지 않은 데에는 일차적으로는 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전후과정과 관련 자료들에 대한 분석과 판단 등이 쉽지 않았던 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관련 자료와 계약서 등에 대한 조작 및 위조 주장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언론으로서는 그 보도에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론으로서 가장 편한 방법은 검찰의 수사 발표를 기다리는 일이다. 또 다수의 언론들은 벌써부터 모든 것을 검찰에 맡기자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물론 검찰의 '공정한 수사', '엄정한 수사'를 그 전제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태도는 언론의 직무유기일 수 있다. 물론 검찰의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에 대한 기대를 처음부터 접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의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언론대로 최선을 다해 이번 의혹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해 나설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의 종착역은 결국 복잡한 금융 거래에 대한 전문적·실증적 분석과 규명 못지않게 상식적, 윤리적 판단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금융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이명박 후보는 사무실 까지 같은 빌딩에 두고, 사업의 얼개를 협의했던 김경준 씨가 역외펀드와 종이 회사를 통해 투자금을 이리 저리 옮기고 한 것을 전혀 몰랐을까? 실과 바늘 같은 관계였던 BBK와 LKe 뱅크의 자금 이동에 대해 공동대표로서 그 개략적인 윤곽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 후보 측근으로 현재 이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람이 이 후보가 김경준 씨와의 관계를 청산했다고 주장한 이후에도 문제의 주가 조작 대상 기업인 옵셔널 벤처스에서 근무하면서 통장 관리 등을 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런 의문들은 사실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언론들이 일차적으로 물어야 할 것들이다.

 

이른바 검찰의 실증적 수사와 확인이 필요하다는 복잡한 금융 거래의 실상 또한 의외로 쉽게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금융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 상식으로 볼 때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사안의 실상이나, 김경준 씨나 이명박 후보 측의 주장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가를 가리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어쨌든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 있는 마당이니, 차제에 언론은 국민들에게 현란한 첨단 금융기법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또 검찰의 수사 결과에 정치권이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지금이라도 금융계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모시고, 이번 사건의 이모저모를 자세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국민들의 금융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07.11.17 15:38ⓒ 2007 OhmyNews
#김경준 #주가조작 #한겨레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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