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명산 태산엔 단풍이 없더이다

[아들과 함께 한 무박 3일의 태산기행②] 태산 등반

등록 2007.11.25 16:00수정 2007.11.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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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파른 돌계단에도 끄덕하지 않고 뾰족구두를 신고 산행을 하는 중국인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가파른 돌계단에도 끄덕하지 않고 뾰족구두를 신고 산행을 하는 중국인들을 가끔 볼 수 있다. ⓒ 조영님


대묘를 약 2시간 남짓 둘러보고 곧바로 태산으로 향했다. 태산의 첫 관문인 대종방(岱宗坊)은 대묘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아침 10시 40분 경. 아직 등산을 하지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들이 "엄마, 산을 먼저 가고 그리고 나서 시내구경을 하면 더 좋았잖아"라고 하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들 말도 일리는 있었다. 차라리 기차역에서 꾸물거리지 말고 곧바로 태산을 등반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대묘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들 나이가 7살인데 이제 답사 코스에 대한 코치까지 하다니, 저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긴 것이라 생각하니 코웃음이 나왔다.


태산 등반은 이번이 두 번째가 된다.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이 그렇듯이 하루 동안에 태산, 곡부를 관광하려면 천외촌(天外村)에서 버스로 중천문까지 이동, 다시 남천문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에서 다시 걸어서 정상까지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과 단 둘이 등반하는 것이니만큼 태산의 일부만이라도 걸어서 올라가리라는 생각에서 대종방을 출발기점으로 정하였다.

a  공자도 천하명산인 태산에 올라 자취를 남겼다.

공자도 천하명산인 태산에 올라 자취를 남겼다. ⓒ 조영님


일천문(一天門)을 지나니 곧바로 역대의 시인묵객은 물론이요, 공자도 태산 등반을 하였다는 것을 표시한 '공자등림처(孔子登臨處)'에 이르렀다. 좌우의 비석에는 '제일산(第一山)'과 '등고필자(登高必自)'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등고필자라?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중용의 '登高必自卑'가 아니던가.

천하의 명산인 태산을 오르는 것도, 세상의 허다한 일을 완성하는 것도 모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데에 있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갔다.

만선루(萬仙樓)에서 표를 한 장 샀다. 중국 명소 중에는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조금 단장을 하고 입장료를 대폭 인상한 곳이 많이 있다고 하던데, 성인 127원이라니. 우와! 비싸다. 중국은 아이들 키가 120미터가 넘으면 반 표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무료이다. 아직 120미터가 안 되는 아들은 대부분 무임승차다. 어떤 매표소 앞에는 키 자를 그려 놓고 검표원이 아이들 키를 직접 재어보는 곳도 있다.

만선루에는 검표를 하는 바로 오른쪽 편에 은진동(隱眞洞)이라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동굴에 왕령관(王靈官)이라는 수호신이 있는데, 이 신에게 절을 하면 가는 길이 평안하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될까 물을 필요는 없다.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다시 20분쯤을 걸어가니 이번에는 두모궁(斗母宮)이라는 도교사원이 나왔다. 두모궁은 옛날에는 '용천관(龍泉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팔이 여덟 개 달린 두모낭랑(斗母娘娘)이 모셔져 있다. 두모는 북두칠성의 어머니라고 한다. 궁 안에는 크고 작은 향과 검게 그을린 향로만이 적막하게 있을 뿐 오고가는 참배객은 보이지 않았다.

두모궁 앞에 600년 된 느티나무는 볼 만하였다. 일명 '와룡괴(臥龍槐)'라고 하는데, 느티나무에서 뻗어 나온 커다란 나무줄기가 땅바닥을 가로질러 건너편 나무에까지 닿아 있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a  북두칠성의 어머니인 두모는 도교에서 받들고 있는 신 중의 하나이다.

북두칠성의 어머니인 두모는 도교에서 받들고 있는 신 중의 하나이다. ⓒ 조영님


아들은 힘이 빠져 못 가겠다면서 연신 가방 안의 초콜릿과 귤을 꺼내 먹는다. 그리고 투덜거린다.

"엄마, 여기가 그렇게 유명한 곳이야? 좋긴 하나도 안 좋네. 아무 것도 없잖아."

태산은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고, 이곳에 올라갔다 온 사람은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말해 주었더니, 제 딴에는 뭔가 재미있는 것이라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는가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들에게 산행이 주는 의미를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인생은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해 주면 이해할까? 지나오면서 1원을 주고 산 놀이감도 이미 망가져 버렸으니, 아들의 마음을 달래줄 또 다른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고 '잘 한다!'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계획한 대로 중천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돌계단은 상당히 지루하다. 발도 아프다. 중국의 산은 왜 흙길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돌계단을 뾰족한 구두를 신고 산행을 하는 선남선녀도 있다. 그것도 남자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넥타이까지 매었다.

중국에서 가끔 "중국 사람들은 강의할 때는 체육복 입고 강의하고, 산에 갈 때는 양복 입고 간다"는 말을 듣는다. 정말 중국 선생님들은 강단에 설 때 복장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온 듯한 분도 있고, 체육복에 운동화 차림도 가끔 볼 수 있다.

아마도 중국인들이 산행을 하는데 광나는 구두에 양복을 빼 입고 가는 이유는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전 우리나라의 70, 80년대에 놀이문화가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 꽃피는 봄이나 단풍든 가을에 촌에서 관광버스 한 대 대절해서 동네 사람들이 여행을 다녔을 때도, 지금 본 중국 사람들처럼 옷장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갔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뾰족한 구두에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헉헉대는 등산객을 보면 쿡쿡 웃음이 나온다.

산행 중간 중간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태산의 유명한 음식은 '대미전병(大米煎餠)'이라고 한다. 동그란 철판에 쌀가루 반죽을 얇게 펴고 그 위에 계란을 하나 깨뜨려 역시 얇게 펴서 익힌다. 그리고 중국 장을 얹고 가늘게 썰어 놓은 파 하나 얹어 둘둘 말면 끝이다. 간단한 요리에 비해 제법 먹을 만하다. 정상에서는 조금 비싼 5원, 산 아래에서는 2원 정도 한다. 전병을 먹으면서 산을 내려오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a  태산의 유명한 먹거리인 전병. 저렴하고 맛이 있다.

태산의 유명한 먹거리인 전병. 저렴하고 맛이 있다. ⓒ 조영님


이제 호천각(壺天閣)만 지나면 바로 우리의 목적지인 중천문(中天門)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항아리에서 하늘을 보는 형세라고 하여 '호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호천각의 입구 좌우에 쓰인 글귀를 보며 잠시 다리를 쉬었다.

이 산에 오르니 절반이 이미 호천.
천 겹으로 된 정상엔 복지(福地)가 더 많을 터.
登此山一半已是壺天 造極頂千重尙多福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진풍경이 많다고 하니, 기대를 하며 힘을 내어 중천문으로 향했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 가방을 둘렀는데도 그다지 힘든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날씨 탓인가 보다. 뜨거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초겨울 등산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중천문에 도착했다. 이미 앞서 도착한 등산객들은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우리도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기는 해발 847미터. 대종방에서 출발하여 2시간 20분만에 중천문에 오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식당과 상점들, 그리고 재신전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좋은 전망대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날씨도 약간 흐려 있어 산세가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도보로 남천문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택하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기로 하였다. 비용은 성인 45원이다.

케이블카는 미끄러지듯 천천히 남천문을 향해 올라갔다. 태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바위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역시 태산은 바위산이다. 그런데 가을을 넘어 겨울의 초입인데도 단풍은 보이지 않는다. 태산에 오르면서 한국에서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하였는데 여기는 온통 상록수뿐이다. 그저 허허롭고 다소 황량한 가을 산일 뿐이다.

a  케이블카에서 바라다본 태산의 모습.

케이블카에서 바라다본 태산의 모습. ⓒ 조영님


가을은 단풍이 있어야 가을답다. 아니, 단풍이 있어야 조락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천하의 명산이라고 하는 태산에는 단풍이 없었다. 어쩌면, 조락의 아름다움이 없기 때문에, 역대 제왕들이 신성시하여 봉선하던 천하의 명산, 신산(神山)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지금 단풍든 만추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데 아쉬웠다.

케이블카로 약 10분 정도 태산의 풍경을 보고 나니 남천문에 도착하였다. 남천문에서 벽하사에 이르기까지의 600미터 정도의 길이 마치 천상의 거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천가(天街)'는 몇 해 전이나 변함이 없었다. 다만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 군용 털 잠바를 걸친 사람들이 다를 뿐이었다. 여기에서도 날씨가 뿌옇게 흐려서 산 아래 풍경이 모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이 천가에서 기념품을 사고 싶다고 하여 물건을 고르라고 하니, 나무로 만든 뱀과 나무칼을 골랐다. 아들에겐 이것이 태산의 명품으로 보이는가보다.

a  천가를 지나서 벽하사에 이르는 돌계단.

천가를 지나서 벽하사에 이르는 돌계단. ⓒ 조영님


태산의 정상을 코앞에 두었기에 옥황상제의 딸이며 태산의 여신인 벽하원군을 모신 벽하사(碧霞祠)를 대충 둘러보고 대관봉(大觀峰)에 이르렀다. 커다란 바위 표면에 깨알같이 노랗게 새긴 석각과 크고 작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 거대하였다. 노란 글씨는 당나라 현종 때에 새긴 것으로 당마애(唐磨崖)라고 불리며, 글자가 모두 1008자라고 한다.

인간의 많은 행적이 역사에 기록되어 전하고, 또 구전으로 전하고, 또 이렇게 굳은 바위에 새겨진 채 천여 년을 전하고 있다. 바위를 뚫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는 인간의 의지도 대단하지만, 그를 버티고 있는 바위의 본성도 참으로 견고하다. 붉은 글씨로 크게 쓴 '치신소한(置身霄漢)'처럼, 여기부터는 내 몸이 하늘의 은하수에 닿을 만큼 속진과 멀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며 또 오른다.

a  당나라 현종 때 새긴 마애석각

당나라 현종 때 새긴 마애석각 ⓒ 조영님


다시 몇 분을 걸어서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 쓴 바위 앞에 아들을 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 바위야말로 태산 등반을 하였다는 보편적인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뒤이어 오는 사람들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아! 드디어 여기는 해발 1545미터,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이다. 여기가 태산의 주봉이다. 우리나라 산 정상은 대개 해발 몇 미터라고 쓰인 팻말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쳐야 산 등반의 마침표가 되는데, 여기는 정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야호를 외칠 곳도 적당하지 않다. 물론 요사이는 산에 사는 짐승들을 존중하기 위해 고함이나 괴성을 지르면 안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다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여기에 세워진 옥황묘 때문이 아닌가 싶다.

a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 소원을 담은 수많은 열쇠가 잠겨 있다.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 소원을 담은 수많은 열쇠가 잠겨 있다. ⓒ 조영님


자욱한 향화 속에 잠겨 있는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열쇠도 몇 년 전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중국인들은 소원을 담아 열쇠로 잠가 놓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열쇠 값이 장난이 아니다. 아들의 성공과 부를 위한 열쇠는 100원, 자손을 위하고, 복을 누리기 위한 열쇠는 60원, 좋은 인연과 평안을 위한 열쇠는 30원이다. 아들 녀석도 열쇠에 소원을 담아 달아놓고 싶다고 하였지만 못 들은 척 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열쇠는 한국인의 사유방식과 거리가 멀다. 열쇠는 구속과 제약의 상징이지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는 상징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찍이 태산에 올라서 태산의 장엄함을 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小天下)'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6천 개인지, 7천 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정상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면서 공자가 느꼈던 자부심과 의기를 나 역시 느껴 보려 가슴을 활짝 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빛은 더 없이 파란 바다 빛이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웅치천동(雄峙天東)',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라고 쓴 돌 비석 앞에 잠시 앉았다. 앉은 자리 탓일까, 문득 이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나름의 안목이 있어야 할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유치한 몽상도, 어쭙잖은 객기(客氣)도, 몽환적 담론도, 줏대 없이 부화뇌동하여 세상과의 동질감을 애써 찾으려하는 내 안의 소신함도 다 버리고 싶다는.

a  공자는 이곳 태산에 올라 세상이 작게 보인다고 하였다.

공자는 이곳 태산에 올라 세상이 작게 보인다고 하였다. ⓒ 조영님


이제 천천히 하산할 일만 남았다. 올라가는 일이 힘들지 내려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래도 다리가 좀 후들거렸다. 남천문까지 오니 오후 3시. 산 속에 해가 빨리 진다더니 지는 해에 스산한 바람까지 불어 중천문까지 걸어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중천문에 이르기도 전에 어둠에 갇힌 것만 같고, 아들도 자꾸만 케이블카를 타자고 조르는 바람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중천문에서 천외촌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이제 아들과 함께 태산에 올라 보리라는 평소의 바람을 이루었으니, 다음에 아들이 좀 더 자라면 그때는 필히 도보로 태산 정상에 올라 장엄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내려오리라 아들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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