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절벽에 숨이 탁 막히다

[타이완 여행 ②] 타이완 타이루꺼 협곡... 좁아진 계곡앞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등록 2007.11.28 13:59수정 2007.11.28 14:48
0
원고료로 응원
a 타이루꺼 협곡 좁아진 계곡아래 석회석 물이 흐른다.

타이루꺼 협곡 좁아진 계곡아래 석회석 물이 흐른다.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좁아진 계곡아래 석회석 물이 흐른다. ⓒ 김영명

타이베이 역에서 기차를 탄다. 탑승구가 지하로 들어가 있다. 화리엔(花蓮)에 갈 참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급인 자강호(自强號)에 오르니 객실 구조가 낯설지 않다. 발 받침대나 좌석이 눈에 많이 익다. 객실 앞면 위에 작은 금속 라벨이 붙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현대코리아 1997'이라고 적혀 있다. 타국에 와서 국산 제품을 보니 반갑고 가슴이 뿌듯하다. 값싼 국수주의적 감상인가.

 

a 화리엔 역 공공기관 건물마다 "UN에 가입하자"는 구호가 붙어있다.

화리엔 역 공공기관 건물마다 "UN에 가입하자"는 구호가 붙어있다. ⓒ 김영명

▲ 화리엔 역 공공기관 건물마다 "UN에 가입하자"는 구호가 붙어있다. ⓒ 김영명

2시간 50분 걸려 화리엔에 도착했다. 화리엔은 타이완의 중동부에 위치한 인구 40여 만의 중소도시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도 상품을 만들고 남은 대리석 조각들로 보도 판을 깔아 놓았다. 수백 곳의 상점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수공예품과 부엌용품, 가구, 그리고 건축자재들이 즐비하다.

대리석 채석지로 이름이 나 있는 도시지만, 또 원주민(아메이(阿美)족) 처녀들의 춤과 노래의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화리엔의 서쪽에는 타이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인 '타이루꺼(太魯閣)'라는 관광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 해당된다.

a 타이루꺼 협곡 수백만 년에 걸쳐 패인 계곡

타이루꺼 협곡 수백만 년에 걸쳐 패인 계곡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수백만 년에 걸쳐 패인 계곡 ⓒ 김영명

타이루꺼 협곡이라고 불리는 곳의 초입부터 산세가 심상찮다. 기대 이상의 광경에 마음이 설렌다. 타이완의 중앙산맥을 뚫어 만든 동서횡단도로(78km)의 시발지로 시작되는 타이루꺼 계곡은 애초에는 원주민인 타이야족(泰雅族)이 넘어다니던 옛길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a 타이루꺼 협곡 협곡 안에 있는 실폭포

타이루꺼 협곡 협곡 안에 있는 실폭포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협곡 안에 있는 실폭포 ⓒ 김영명

산 전체가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로 수백만 년 동안 흐르는 물에 깎여져 패인 계곡은 깊은 협곡을 이룬다. 바위를 뚫어 낸 길 아래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낭떠러지가 내리꽂히고, 위로는 고개를 아프도록 젖혀도 돌산 꼭대기에 못 미친다. 하늘은 좁고 기다란 네모로만 보인다. 곳곳에 높은 산꼭대기로부터 실타래같이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산신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a 타이루꺼 협곡 얼굴바위-눈,코,입이 선명하다.

타이루꺼 협곡 얼굴바위-눈,코,입이 선명하다.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얼굴바위-눈,코,입이 선명하다. ⓒ 김영명

수만 년이 흐르는 동안 깎여진 바위산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하여 사람얼굴 모양, 동물 모양 등으로 우리 앞에 막아선다. 바위마다 그려진 물결무늬는 추상화를 연상케 하고 독특한 여러 가지 바위색깔은 또 다른 채색화를 그리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히고, 갑자기 좁아진 계곡 앞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우리는 확 트인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끼듯 거대한 절벽과 절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는 압도당할 것 같은 긴장감에 색다른 희열이 온몸을 감아 돈다.

 

a 타이루꺼 협곡 위 아래 색깔이 다른 바위와 바위구멍은 제비집

타이루꺼 협곡 위 아래 색깔이 다른 바위와 바위구멍은 제비집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위 아래 색깔이 다른 바위와 바위구멍은 제비집 ⓒ 김영명

1956년부터 시작된 도로공사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협곡 옆의 돌산을 뚫어 길을 내자니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지금과 같은 굴착장비도 개발되지 않은 시기에, 또 자연경관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사용을 자제하면서, 거의 인력으로 바위산을 뚫는 공사는 맡겠다고 나서는 민간건설업자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장제스 정부는 젊은 군인들을 동원했단다.

a 타이루꺼 협곡 지우취똥 계곡

타이루꺼 협곡 지우취똥 계곡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지우취똥 계곡 ⓒ 김영명

공사 중 순직한 212명의 군인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 장춘사(長春祠)다. 길 왼쪽 절벽에 달랑 얹혀 있다. 위패를 모신 사당의 건립으로 죽은 넋이 위로가 되겠느냐마는 이런 희생이 있었기에 동서 간에 소통의 길이 열리고 또 우리 같은 관광객이 협곡의 절경에 황홀해 할 수가 있다.

a 타이루꺼 협곡 연자구 계곡

타이루꺼 협곡 연자구 계곡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연자구 계곡 ⓒ 김영명

20km나 이어지는 타이루꺼 협곡 중 자연적으로 뚫린 바위구멍마다 제비가 서식한다고 이름붙인 연자구(燕子口)에서 시작되는 1.5km 구역과 꼭 아홉 계곡이라서가 아니라 '九'는 굽이가 많다는 것을 의미로 이름 지어진 지우취똥(九曲洞)계곡의 1.9km는 타이루꺼 협곡 중에서도 백미에 속한다. 그래서 최근에 별도로 차도를 신설하고 예전 도로는 관광객이 걸어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인도로 이용되고 있다.

 

a 타이루꺼 협곡 장춘사 입구-실폭포

타이루꺼 협곡 장춘사 입구-실폭포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장춘사 입구-실폭포 ⓒ 김영명
a 타이루꺼 협곡 절벽 위에 높이 매달린 장춘사 본 건물

타이루꺼 협곡 절벽 위에 높이 매달린 장춘사 본 건물 ⓒ 김영명

▲ 타이루꺼 협곡 절벽 위에 높이 매달린 장춘사 본 건물 ⓒ 김영명

규모 면이나 희생자의 수로나 비교될 수는 없지만, 중국 대륙의 만리장성은 막음의 공사임에 비해 타이루꺼 도로공사는 열림의 공사다. 지금에 와서 만리장성은 관광용 외에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타이루꺼의 협곡도로는 동서교통의 핵심 역할을 한다. 막음의 질서보다 열림의 질서가 우리들에게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타이루꺼 협곡을 보면서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덧붙이는 글 지난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타이완을 여행한 제2신 기록입니다.
#타이완 #타이루꺼 #장춘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