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움과 불안에 대하여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16] 아조프라에서 레데실라 델 카미노까지

등록 2007.12.03 11:14수정 2007.12.0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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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3일 화요일,
순례 11일째, 26km.
오전 7시 출발, 오후 2시 30분 도착.


a 아조프라를 떠나며 새벽의 달

아조프라를 떠나며 새벽의 달 ⓒ JH




뒤척이지도 않고 잘 잤다. 식당에서 어제 먹고 남은 빵에 달걀을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방에 넣고 컵에 미수와 우유를 섞어 마시고 출발했다. 하늘에 걸린 달은 하현이었다. 혼자서 열심히 걸었다. 문득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음색이었다.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부끄러운 듯 구구구- 하는 목소리에 맞장구치며 나도 구구구-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혼자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걷는 가운데 만난 마을에서 처음으로 골프장을 보기도 하고, 감자공장에서 감자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방 하나(?)만한 나무상자에 감자들이 떨어지고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잠깐 옆으로 새서 하나 주워가고 싶었지만 공장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서 그냥 쳐다보고 말았다. 끼니마다 물리게 등장하는 감자들이 이런 곳에서 오는구나, 재미있었다.

오전 10시가 좀 넘어 '산토도밍고 데 라 칼자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했다. 걷기 전부터 ‘닭 두 마리 성당’으로 익히 들어왔던 곳이었다. 이틀쯤 전에 J와 Y언니, S씨가 만나서 묵어갔을 곳이었다. 작은 마을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다양한 볼거리들로 가득했다. 10시 반에 미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성당에 급히 들어갔다. 사제의 손에 들린 쪼개어진 성체를 바라보며 가슴 언저리가 먹먹했다. 혼자가 되니 마음도 가벼워져 쉬이 나부끼는지.

길 위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 이 길 위에 있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또 좋다. 근데 아무리 밀밭이 아름답다고 뛰어들면 사나운 장미덩굴 가시에 찔리는 거고, 하늘이 푸르다고 뛰어들 수도 없고, 새들이 예쁘다고 같이 날 수도 없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확실한 목적지를 가지고 걷는 길, 그 위에서 걸어가는 것이, 아주 자주 머물러버리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거나 더 재미있는 다른 길(!)로 가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혀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뱅글뱅글 헤매는 뿐이 아닌지, 아직 뚜렷하게 말로 안 나오는 것 보면 더 생각할 일이긴 하겠지만.



나의 인생이라는 것도, 그 25년이 무엇인가를 향해 걷는 길이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향했고, 그 길은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또 느끼게 해 주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이 길 위에서 찾고 싶은 것이야. 짧게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이 길을 걷고 있을까?


a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 닭 두 마리 성당의 첨탑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 닭 두 마리 성당의 첨탑 ⓒ JH


산토도밍고 데 라 칼자다의 성당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닭 두 마리가 성당 위 유리로 막힌 장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까치발로 서서 구경하고, 조용한 성당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이 마을에서 지체했다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이어나갔다.

사거리쯤 되는 곳에서 헤매다 길을 거꾸로 들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독일에서 온 F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와는 어제 같은 숙소에 묵었다. 마당 연못에 발을 담그고 글을 끼적이고 있던 꽤 늦은 시간에 지친 모습으로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던 이였다.

언뜻 보기에도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는 자신을 독일 남부 바덴바덴에서 온 무용가이자 연기자로 소개했다. 양손에 스틱을 쥐고 바람처럼 나를 앞질러가던 한 무리의 독일 사람들을 들어 ‘숨 막히는 이들’, ‘전형적인 독일사람’이라며 잔뜩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투정이 귀엽게 보였다.

“아니 엊그저껜가는 걷다가 참 좋길래, 바닥에 앉아서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쉬고 있었는데, 저기 저 남자가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나한테 그러더라고. 그러면 안 되는게 어디 있어. 카미노에서, 안 그래?”
“음…. 굉장히 엄격한 기준이 있나보지. 나도 곧잘 양말도 벗고 쉬었는데.”

“뭐, 좋은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 나는 좀 다르거든.”
“맞아. 나도 느꼈어. 너한테선 예술가의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아하하! 그래. 맞아. 예술가의 자유로움, 그거야!”

독일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을 하기도 하고, TV의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는 그는 역시나 표현력이 풍부했다. 말투부터 몸짓까지, 처음엔 약간 여성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와 함께 중국의 미래정세와 자본주의 경제, 제2세계인들의 영어구사와 자연과 환경 등 온 갖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문득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카미노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엄마는 울면서 가지 말라고 했었어.”
“그래? 우리 가족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었지.”


그렇네, 정말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이해가 안 된다고, 가지 말라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까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이 길 위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그리 찾고 있는 것일까.

도로 끝에 난 좁다란 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가며, 마치 어깨를 스칠 듯 매섭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들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F는 이 길이 맞는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을 재차 확인하고 있었고, 나 역시 트럭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거센 바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한 시간여를 도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그라뇽(Grañon)'이었다. 나는 도로를 따라 잔뜩 긴장해서 걸었던 탓에 정신이 없었다. 우선 F와 함께 성당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여기에서 멈출 것인지, 더 걸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 내내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지난 며칠간 40km를 넘는 강행군을 이어나가 오늘은 이곳에서 쉰다고 했다.

이제 겨우 오후 1시를 넘긴 시간,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머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왠지 조금 부담스러웠다.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나로서는 휘둘린다는 느낌이 강했는지, 한 시간만 더 걷고 싶었다. 우리는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행복’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와 작별을 하고 나는 와인의 땅 라 리오하를 지나 카미노의 세 번째 땅,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된 그 한 시간

a 라 리오하와 카스티야 레온의 경계에서 푸르른 와인밭을 지나 누런 황야로 접어드는 길

라 리오하와 카스티야 레온의 경계에서 푸르른 와인밭을 지나 누런 황야로 접어드는 길 ⓒ JH


그리고 그 한 시간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그라뇽에서 레데실라까지, 최후의 4km가 오늘 순례 여정의 극한이 될 줄이야, 정말 굉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그런 느낌의 길이었다. 새파란 하늘, 낮게 드리운 구름,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태양, 그림자마저도 자취를 감춘 곧게 난 길 양편으로 끝없는 황금밀밭, 그리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것은 폭풍이었다.

보통 한국에서 이런 바람은 태풍 전야나 여하튼 날씨가 아주 궂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인데, 여기에선 너무 맑고 또 햇빛은 쨍한데 정말 몸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어 무아지경. 모자를 푹 눌러쓰고도 고개를 바닥으로 가누지 않으면 바람에 휙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내 삶에, 이런 거친 바람 같은 힘이 부닥쳐 오는 것일까?

바람을 뚫고 겨우 도착한 마을 ‘레데실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는 시에스타에 빠져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적막감이 감돌고, 한쪽에는 부연 모래바람이 일었다. 적어도 그 순간, 내 눈에 이 마을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유폐지와 같았다. 참아왔던 발바닥의 물집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과연 숙소가 있긴 할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힌 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스럽게 순례자 숙소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집을 발견했다. 시에스타로 마을이 잠든 시간에도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의 분주함이 대문 바깥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담벼락에 기대선 자동 음료수 자판기는 지잉-하고 전류가 흐르는 소리를 내고,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마당 안에 세워진 자전거 몇 대와, 빨랫줄에 먼저 도착한 이들의 빨래가 줄줄이 널려 물방울이 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모습은 어느새 익숙해져 반가운 풍경이었다.

1층에서 수속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방에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짐을 풀고 쉬고 있었다. 걸을 때엔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물집의 통증이 심해져 샤워 내내 발바닥을 닿게 하지 않으려고 발의 바깥 부분으로 서 있었다. 빨랫거리를 들고 마당의 빨래터로 내려가는 계단은 난간을 붙들지 않고는 내려올 수 없었다. 마주치는 순례자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내 모습이 퍽 우스웠는지 그들도 다리를 가리키며 아픈 시늉을 한다.

순례자 숙소는 다리며 무릎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 나처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배회하고 누군가 진한 마사지 크림이라도 발랐다 치면 톡 쏘는 박하향이 떠도는 것이 마치 병원의 입원실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내게 순례자 숙소는 당장 하루하루 걸으며 생겨나는 몸의 상처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 품은 깊은 상처를 가진 이들의 마음병동, 그런 곳이었다.

정말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까?

빨래를 마치고 침대에 뛰어들어 노트를 꺼내 열심히 하루를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앞으로 시작되는 카스티야 레온 지역의 지도를 펼쳐들고 깊이 한숨을 쉬어본다. 정말 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까?

“카스티야 레온 지역은 ’메세타(Meseta)‘라고 해서 스페인에서도 유명한 황무지야. 고도 8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들판이지. 그래서 순례자들 중에서도 그 중간구간을 버스로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아. 지겨우니까 말야.”

나의 스페인 천사 C, 그리고 순례 가운데 만났던 몇몇 순례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연 오늘 처음으로 들어선 카스티야 레온 지방은 그 환영식을 톡톡하게 치러주었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버스를 타고 건너뛸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거짓말처럼 날씨가 변해 창 밖으로 긋기 시작한 빗방울처럼 불안은 엎드려 누운 침대 위로 점점 깊게 스며들었다. 그때 옆 침대에서 짐을 정리하던 순례자가 한마디 건넨다.

“와, 글씨 참 예쁘다.”

프랑스에서 온 M, 여타의 순례자들과는 다른 신비로운 푸른 빛깔이 은은한 조개를 가방에 매단 그녀는 내가 빼곡히 적어 내려가던 한국어가 퍽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겠냐고 묻는데 괜히 쑥스럽다. ‘걱정 마. 난 한국어를 몰라서 네 일기 내용을 알 수 없으니까.’ 그녀에게 내 일기장은 다른 세계의 방식으로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같은 것이겠지. 흔쾌히 승낙하니 핸드폰을 꺼내 초점을 맞춰보는데 영 신통치 않은 듯 난감해 한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속상하단다.

“그럼 내가 찍어서 메일로 보내줄게, 나한테 이메일 주소 알려줘. 그런데 나 귀국이 늦어서 아마 8월은 넘겨야 보내줄 수 있을 텐데, 괜찮아?”

나는 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 한 것들을 보내주기로 했다. 이때다 싶어 조개가 예쁜 것이 기억에 남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네 조개는 좀 특별한 것 같아. 어디서 산 거야?”
“이건 내가 사는 동네의 바닷가에서 직접 주워온 거야. 나랑 함께 걷기 위해서 순례를 떠나기 전부터 준비한 거지.”

“그렇구나! 정말 예쁘다. 내가 파란색을 좋아해서, 정말 신비스러운 것 같아.”
“응. 네 글씨도 그래.”


우리는 서로 웃으며 몇 마디를 나누며 웃었다. 나는 곧 일기장에 얼굴을 파묻고 방금 있었던 일을 끼적였고, M은 다 정리하지 못한 짐을 꾸렸다. 어느새 시에스타를 지나고 평소 같으면 마을구경을 했을 시간이지만 물집 잡힌 발이 걱정되어 차마 침대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저녁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례자는 항상 배가 고프다.

어느새 밥때가 되었다. 숙소는 기부제로 저녁을 제공하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순례자들을 위해 식탁에는 자리마다 포크며 나이프, 그릇 같은 집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디에 앉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M이 같이 앉자며 나를 부른다. 네 사람 자리의 식탁에 M과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걷는 또 다른 순례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조용히 듣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메뉴를 선택해 음식은 언제나처럼 풍성했고, 디저트로 나온 요거트 하나까지 싹 해치우고 나자 주인 아주머니는 식탁 위에 작은 바구니를 던지고 사라졌다. 친구들이 주머니를 뒤져 돈을 찾는 것을 보니 여기에 오늘 저녁값을 ‘알아서’ 내야 하나 보다.

접시에 담겨 나왔던 초라한 달걀오믈렛에 어이없어하던 누군가는 "나는 5유로 이상은 못 내"라며 지폐 한 장을 집어넣었고, 나는 그들의 흥정을 들으며 6유로를 주머니에 넣고 식당을 빠져나와 난간에 기대 2층 방으로 올라왔다.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여전히 환한 창 밖이 나에겐 이상한 밤이다. 길 위의 작은 마을은 이제 잠에서 깨어 활기를 띠고 있었지만 순례자들의 집은 내일을 위해 잠들 시간이다. M과 나는 내일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언제쯤 출발하는지를 두고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나보다 퍽 일찍 출발하고 또 오래 걷는다는 그들의 계획을 들으며 내일 함께 걸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로그로뇨에서 일행들과 헤어지고 홀로 걷기 3일째, 살며시 찾아오는 적적함과 불안에 싫증이 나려는 밤이었다. 불안한 고독과 미지근한 소속감 사이에서의 줄타기는 꿈에서도 계속되었다.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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