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사람, 코 고는 소리는 똑같더군요

지난 해 '한일 시민기자 친구 만들기'에서 느꼈던 점들

등록 2008.12.02 19:53수정 2008.12.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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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촛불, 바로 시민기자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
주변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촛불, 바로 시민기자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이승숙

지난 해 이맘때(2007년 11월 30일)에 있었던 '오마이뉴스 한일 시민기자 친구 만들기' 모임에 갔다가 크게 느낀 점이 있었다. 바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과 힘이었다. 그 날 모인 두 나라의 시민기자들은 10대 고등학생부터 60대 장년층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조합되어 있었다. 약 40여 명이 모였는데 20대와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이 두 부류는 극명하게 대조를 보이는 점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외국어 실력이었다. 40대 중에서도 외국어를 잘 하는 분이 몇 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국어 밖에 할 줄 모르는데 20대는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알고 있는 단어 몇 개로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의기투합하기도 하였다.

단어 몇 개로도 의기투합하는 젊은이들

첫 날 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자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일이었다. 세미나실에서는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두세 명 씩 서로 어깨를 바짝 맞대고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타오르는 열정 때문에 세미나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말없이 안주를 축내고 있는 사람들은 40대 장년들뿐이었다. 젊은 층들은 말이 되던 안 되든 열정적으로 떠드는데 나이가 한 축 든 이들은 뒤로 물러나서 빈 술잔만 채울 뿐이었다. 그 속에는 외국어를 잘 모르는 나도 끼어 있었다. 괜히 열쩍어진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뒷마당에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벌겋게 이글거리는 모닥불 가에도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살펴보니 전부 장년들이었다. 일본의 장년들과 한국의 장년들이 모닥불을 앞에 두고 더듬더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세미나실의 그 뜨거운 열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들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자주 보다가 혼자서 한국어를 익혔다는 '야마자키 유코' 씨. 하면 된다는 희망을 저에게 보여준 사람입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자주 보다가 혼자서 한국어를 익혔다는 '야마자키 유코' 씨. 하면 된다는 희망을 저에게 보여준 사람입니다.이승숙

젊은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젊음의 패기가 있었고 그리고 영어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주저함 같은 게 없어 보였다.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온 몸으로 말을 하다보면 통하는 데가 있는지 아주 왁자지껄 요란했다. 서로 통하는 데가 있으면 몇 마디의 단어로도 충분히 의사가 전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요즘 젊은이들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대에 속하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었다. 말이라는 게 서로를 이어주는 끈인데 그 끈이 없으니 가까워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 친구를 만들지를 못했다.


내게 용기를 준 그녀, 혼자서도 외국어 공부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조에는 한국어를 꽤 잘하는 일본 시민기자가 있었다. 어지간한 거는 다 의사소통이 잘 될 정도로 그녀는 한국어를 잘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 기자에게 궁금한 점이 있거나 말을 걸고 싶을 때는 항상 그녀를 앞세워서 말을 나눴다.

'야마자끼 유코'씨는 42세의 가정주부인데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특별히 가르쳐 준 선생님도 없이 그냥 혼자서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니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참이었다. 생소한 중국어를 배우자니 염려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서 학원이 있는 거도 아니다. 그리고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 거도 아니다. 그야말로 나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해도 공부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야마자끼씨를 보고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용기가 생겼다.

 흰 머리카락이 보이면 속이 상하는 거는 한국 아줌마나 일본 아줌마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흰 머리카락이 보이면 속이 상하는 거는 한국 아줌마나 일본 아줌마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명옥

코 고는 소리는 두 나라 똑 같네

'오마이뉴스 한일 기자 친구 만들기'에 참가해서 느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말이 통해야 서로를 알 수 있다. 눈인사만으로는 내 마음을 다 전할 수가 없고 또 상대의 마음 역시 알 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의 주부 기자들은 주부라는 그 점 하나로 서로를 스스럼없이 대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말이 서로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살림의 지혜들이 시공간을 초월하며 넘나들 수 있을 텐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아줌마들의 특성을 살려 상대 나라에 대해서 또 서로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느꼈을 텐데. 그러나 우리는 웃음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각자의 나라 말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나 둘 잠이 들었다.

모두 잠이 들자 비로소 하나의 통일된 언어가 들려왔다. 다들 힘들었던지 가늘게 코를 골았다. 코 고는 소리는 일본도 한국도 똑같았다.
#한일 시민기자 친구 만들기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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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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