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잃어버린 세계사를 찾아서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9] 이옥순 외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등록 2007.12.09 12:13수정 2007.12.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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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책표지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책표지 ⓒ 도서출판 삼인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책표지 ⓒ 도서출판 삼인

수능 지나고 졸업고사마저 끝나면 학교 폐휴지함에는 고3 아이들이 버린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 책 더미 속에 여러 종의 교과서도 묻혀 있다.

 

시험 잘 보려고 형광펜이나 빨간 볼펜으로 군데군데 밑줄 쫙 긋고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까지 한 교과서다. 그래도 쓸모가 사라진 뒤엔 미련 없이 버려지는 책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시험에 매달린 탓에 교과서 속 많은 내용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못한다. 그래도 교과서에서 배우고 익힌 일부 내용들은 우리들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만나 두 나라의 역사에 대해 대화를 한다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관점과 시각이 다른 교과서를 통해 형성된 의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잠시 옛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를 떠올려보자. 가물가물 기억 속에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어떤 것일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불교의 나라 인도, 영주와 농노가 살던 중세 유럽,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제국주의와 1, 2차 세계대전 정도다.

 

하지만 이들 내용들은 중국인이나 서구인의 관점이 반영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역사는 중국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유목민을 비롯한 다민족이 공존하던 역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중국 한족 중심의 역사가 중심이 된다.

 

중국인의 관점으로 서술된 교과서

 

춘추전국시대부터 쌓기 시작한 만리장성은 흉노를 비롯한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장성이라고 교과서는 설명한다. 이 서술은 사실과 다르다. 북방 유목민족을 정복하고 그곳을 통제하기 위해 쌓은 성이 만리장성이다.

 

지금도 만리장성 남북에는 풀이 무성한 초원지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유목민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유목민의 삶의 터전에 슬금슬금 기어들어가 말뚝을 박고 인위적 장성을 쌓은 사람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침략이란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목민족이 아니라 중국인 자신들이었다.

 

요, 금, 원, 청 등은 중국 한족을 지배했던 왕조였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들 정복 왕조를 서술하면서 힘으로는 중국을 정복해서 지배했지만 문화적으로는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고 서술한다. 이 또한 철저한 중국인의 관점일 뿐이다. 이 왕조들은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중국을 지배했다. 문화적으로 중국에 동화된 것도 물론 아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주변 민족을 오랑캐라 멸시했다. 한때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 여진족, 몽골족도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랑캐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중국 지배를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문화적 열등감 때문에 스스로 동화되어갔다고 해석한다. 그런 중국인들의 관점이 여과 없이 우리 세계사 교과서에 담겨 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주변 오랑캐이기는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도 발해도 한낱 중국의 변방 오랑캐의 역사이거나 지방 정권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 논리가 다름 아닌 동북공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계사 교과서는 중국인의 관점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 속에는 중국을 둘러싼 수많은 유목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생생한 역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슬람에 대한 서술의 문제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세계사 교과서에서 이슬람 국가들은 상당히 호전적으로 그려졌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코란을 들고 정복을 통해 이슬람교를 전파시켰다는 교과서 서술도 있었다.

 

이슬람을 호전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도 존재한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빈 라덴에 대한 인식도 그 하나다. 9·11을 둘러싼 수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의 교과서에 나타나는 이슬람에 대한 호전적 인식, 현재 진행형인 테러와 결부시킨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호전적으로 따진다면 십자군전쟁 시기의 기독교도들이 훨씬 더했다. 9·11 테러로 당한 미국인의 피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슬람 세계는 가공할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다행히 최근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슬람교가 호전적 방법이 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해 전파되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유럽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충돌에 대해서도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을 취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십자군전쟁에 대한 재평가, 팔레스타인 역사 분쟁의 뿌리 소개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아직도 잘못 서술된 부분이 많다. 하느님을 뜻하는 알라에 다시 신을 붙여 알라신으로 표현하는 문제, 남녀차별, 일부다처 등도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다. 아랍의 전통이 이슬람의 전통인 것처럼 소개되거나, 전쟁과 자연재해와 같은 특수 상황 속에서 공동체 전체를 유지하려던 목적으로 허용된 것이 마치 이슬람의 전통인 것처럼 잘못 소개된 것이다.

 

새로운 교과서를 위하여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한국의 역사가 중국이나 일본에 종속된 것으로 서술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분개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 교과서도 오류와 편견이 많다.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각 지역을 연구한 전문 학자 7명이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세계화’란 말이 신문이나 책자를 떠나 우리 생활 곁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외국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취업으로 들어온 노동자들도 있고, 국제결혼을 통해 뿌리 내리고 사는 여성들도 많다. 반대로 외국에서 뿌리를 내리는 한국인도 많고 해외여행 또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의 출간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서구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잘못된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책 출간이 갖는 의미를 저자들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무쪼록 이 작업이 더 나은 교과서 집필을 이끄는 자극이 되고 작은 지침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미래 세대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균형 감각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 곧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춧돌이 되기를 염원한다."(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이옥순 외 6인 / 도서출판 삼인 / 2007년 10월 / 19,800원

2007.12.09 12:13ⓒ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옥순 외 6인 / 도서출판 삼인 / 2007년 10월 / 19,800원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옥순.이희수 외 지음,
삼인, 2007


#세계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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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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