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온의 아침스페인 작은 마을 아침 미사의 풍경
JH
수녀님을 따라서 침대시트와 베개 커버를 벗기면 다른 수녀님께서 솔 같은 것으로 매트리스를 빗질하듯 청소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침대벌레를 위한 손질이었다. 작업이 끝나고 곧 좋은 향기가 나는 새 침대시트를 깔고 베개 커버를 씌웠다. 내가 하루 머물고 사라지는 숙소는 매일 새로운 순례자를 맞아들이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구나,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록 별로 한 게 없어 수녀님들을 귀찮게 한 것 같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는 순례자가 아닌 봉사자, 오스피탈레라(?)가 된 것 같았다. 나름대로 힘들여 새로 깐 침대시트를 매만지며, 오늘은 어떤 이가 이 침대에서 잠들게 될지 궁금했다.
쓰레기들이 담긴 검은 비닐을 들고 숙소 바깥으로 나오자 수녀님 한 분이 어느 정도 일을 마치시고 한숨 돌리고 계셨다. 짙은 피부색을 가진 바바라 수녀님은 인도 부모님을 둔 분이었다. 예멘에서 태어난 수녀님은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이태리어까지 하시는 분이었다. 어제 순례자 행사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통역을 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숙소 문가에서 30분을 바바라 수녀님과 수다를 떨었다.
유럽의 수도원 현황, 카미노의 본원적 의미, 수도성소를 품고 당신네 수도원에 입회했다 곧 떠나는 제3세계의 성소자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찾는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수녀님의 분주한 생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꺄르르 웃기도 하고 짐짓 심각한 체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이 곳 소식을 전하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안 그래도 방명록에 내 메일 주소를 적어 놓았다며, 한국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어제 순례자들로 가득했던 1층 거실은 세 사람의 수녀님과 세 사람의 수사님, 그리고 나와 브리기테만이 남아 있었다. 어제 스쳐가듯 보았던 갈색 수도복을 입은 수사님들은 알고 보니 이태리 시칠리에서 오신 프란치스코회의 수사님들이셨다. 요세페, 빈첸시오, 움베르코 수사님들은 오늘 버스를 타고 레온 전의 '사하군S(ahagun)'이라는 마을로 가신단다.
숙소 정리를 마친 우리들은 잠시 숨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10시 아침미사를 함께 하기 위해 동네의 성당으로 향했다. 넓은 실내에는 지긋한 나이의 할머니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수녀님의 기타연주와 맑은 목소리의 입당성가가 천정을 따라 온 실내에 퍼지고, 작고 고요하고 충만한 전례의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