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에 가까운 지지로 당선된 것에 대해 축하 말씀드립니다. 당선에 즈음하여, 각계 각층에서 대통령 당선자께 많은 요구와 바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선자께서 이러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밑거름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평화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지만 '평화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당선자께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경제살리기' 역시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공약(空約)으로 끝날 것이라는 점 역시 잘 아시리라 사료됩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당선자께서 한반도 분단 62년, 정전체제 54년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이명박 당선자나 당선자께서 몸담고 계신 한나라당에 대한 선입견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선자께서 대선 유세 때 내놓은 통일외교안보 정책 역시 '대전환의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는 데 부족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 재검토'에 매달려 실기하지 말아야
먼저 현 정부와의 '통큰 협력'을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곧 구성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현 정부의 공과를 평가하고 향후 5년간의 정책 방향을 설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한반도 평화문제입니다. 평화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가치이면서 다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2·13 합의와 10·3 합의를 통해 가속도가 붙었던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는 현재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북미간의 이견으로 교착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미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또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과거의 대결 국면으로 돌아간다면, 한반도에는 또 다시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물론 한국의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한국이 이를 중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합니다. 반대로 북미관계 개선이 탄력을 받을 때, 한미공조와 남북관계 개선에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수령은 한국의 정권 인수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당선자께서 '정책 재검토'라는 명목 하에 시간을 지체하고 기회를 유실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 정부로부터 남북관계와 6자회담에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받고 협상 전략을 협의하되, 차기 정부 출범 이전까지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격려하고 협력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당선자께서 강조해온 실용주의 정신과도 잘 부합할 것입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 신뢰부터 쌓아야
이명박 당선자께서는 "과거 정권이 북한에 대해 비판을 삼가고 북한의 비위를 일방적으로 맞추던 그런 것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은 바로 인권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남한이 북한 인권문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인권문제 제기가 남북한이 합의해온 '내정 불간섭 원칙'과 충돌할 수 있고, 북한 인권문제의 실질적인 개선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남북관계만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선의와 진정성을 갖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사이의 신뢰구축입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상대방의 체제를 부정하고 대북강경책의 구실로 삼고자 한다는 의구심만 증폭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당선자께서는 지금까지의 남북한 사이의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남북한의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할 때, 북한은 남한의 차기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신뢰가 구축되면, 당선자께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북한 인권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운명적 순간에 역사적 역할' 수행해야
끝으로 한가지만 더 당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마치 '전화위복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핵개발로 조성되었던 '한반도 위기'는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과 북한의 호응, 그리고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에 힘입어 '한반도 기회'로 바뀌고 있습니다.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은 서신을 주고받을 정도로 '동반자'가 되고 있고, 두 지도자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당자국 정상들이 만나 한국전쟁의 종결을 선언할 날도 멀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미래는 아직 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힘과 지혜를 모아 이뤄내야 할 희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명박 당선자가 계십니다. 운명적 순간에 역사적 역할을 해야 할 주인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역할을 위해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못지 않게 당선자께서 말씀하신 대북정책 역시 재검토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선택하면 10년 내 북한의 1인당 GDP를 3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은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북한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북경협과 교류협력을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포기에 따른 이익이 '불확실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현재'에도 있다는 점을 보여줄 때,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당선자께서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을 폐기하거나 크게 수정하기보다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운명적 순간에 해야 할 한국의 역할'에도 부합합니다. 이는 또한 경제발전과 국민통합 등 당선자께서 공약하신 다른 정책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당선자께서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동안 북미관계 개선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밀려나고 재정적 부담만 떠안게 될 것입니다.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평화프로세스에 불참했다가,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비용의 대부분을 떠 안은 김영삼 정부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대로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당선자께서 남북관계마저 후퇴시킨다면, 외국의 신용평가사가 말하는 '코리아 리스크'는 현실화되고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국내의 개혁·진보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고 남남갈등을 확대재생산시키면서 국민통합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당선자께서는 이미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강경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미 "임기 내 북핵 해결"을 선택하고 북한과 숨가뿐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남북화해협력을 거치면서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와 지지는 크게 높아졌습니다. 보수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께서는 하기에 따라 보수와 개혁·진보세력의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적어도 대북정책에서는 그렇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회와 조건을 잘 살린다면, 당선자께서는 한반도 평화, 경제발전, 국민통합, 그리고 평화배당금 창출을 통한 복지 증진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러한 절체절명의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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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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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도 북한과 화해하는데... 당선자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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