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군불을, 시할머니는 기저귀를...

시어머니가 해주신 잊지 못할 산후조리

등록 2007.12.26 12:53수정 2007.12.2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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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3년동안 보관했던 남편의 배냇저고리

53년동안 보관했던 남편의 배냇저고리 ⓒ 안부섭

53년동안 보관했던 남편의 배냇저고리 ⓒ 안부섭

 

남자 셋이 모이면 군대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여자 셋이 모이면 산후조리 이야기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힘든 일을 치러냈기 때문에 지난 일이지만 산후조리는 항상 기억에 남는다. 여자들은 해산의 고통을 겪고 난 후에는 다시는 아이를 더 낳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산후조리를 하고 아이가 예쁘게 커가는 걸 보면 그 고통을 잊기 마련이다. 

 

산후조리 응모기사를 읽고 나도 한 번 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겼다. 문득 장롱 속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남편과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를 꺼내보았다. 누렇게 빛이 바랜 남편의 배냇저고리를 보며 나의 산후조리 기억이 누렇게 빛이 바래지 않았음을 알았다. 나의 기억 속에서 시어머님께서 해주신 산후조리는 빛이 바래지 않는 생생한 일이다.

 

시어머니는 군불 담당, 시할머니는 기저귀 담당

 

시어머님께서는 손재주가 뛰어나셔서 손수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입히셨다고 한다. 정이 많으시고 손재주가 좋으셨던 어머님은 며느리의 산후조리도 최선을 다해서 해주셨다.
 
맏며느리인 나는 시어른들과 함께 살았는데 당연히 산후조리는 시댁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첫 손자를 63세에 보신 시아버님이 감격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해냈다는 자부심까지 느끼게 되었다.
 
첫 아이를 11월 3일날 낳았는데 군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던 나의 방은 그날부터 아랫목이 탈 정도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시할머님도 84세로 정정하셨을때인데 증손자의 기저귀 담당이셨다. 아기 때는 기저귀가 수도 없이 나오는데 즐겁게 세탁을 해주시고 차곡차곡 개켜서 나의 방에 넣어주시곤 하였다.
 
a  첫아이의 저고리

첫아이의 저고리 ⓒ 안부섭

첫아이의 저고리 ⓒ 안부섭
 
결혼해서 일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노심초사 하시던 어른들께서 기다림 끝에 보신 첫 손자의 사랑은 며느리에게도 이어졌다. 겨울이라 추운데도 하루에 다섯 번씩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젖이 잘 나오게 하는데는 돼지족발이 좋다고 하시며 돼지족발을 푹 고아 묵을 만드셔서 먹기 편하게 해주셨다.
 
산후조리할 때 딱딱한 음식은 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무엇이든 부드럽게 요리해 주셨다.산후조리할 때 먹었던 미역국 맛이 지금도 생각나 끓여 먹어 보는데, 그때의 시어머니 미역국맛이 아닌 걸 보면, 어머님 손맛이 많이 들어 있었기에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둘째 아이는 시어머니가 직접 받기도...
 
a  둘째 아이의 배냇저고리

둘째 아이의 배냇저고리 ⓒ 안부섭

둘째 아이의 배냇저고리 ⓒ 안부섭
 
첫아이때와 마찬가지로 둘째 아이때도 시어머님께서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그런데 산후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 아이는 어머님께서 손수 아이를 받아내시는 초미의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둘째 아이는 7월 27일,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낳았다. 초저녁에 약간의 진통이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 않아서 병원에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진통이 오는 바람에 병원에 갈 준비를 해놓고도 서두르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통이 심하게 찾아와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발전되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를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셔서 당황하지 않으셨다. 상황이 급박한 걸 아시고 집에서 낳게 해야한다고 준비를 서두르셨다. 온 집안 식구들이 긴장해서 분주히 움직여 준비를 마치고 아무탈 없이 둘째 아이를 어머님이 받아내셨다.
 
느긋한 진통으로 병원행을 미루다가 집에서 출산하게 되었지만 어머님의 순발력과 대담함으로 큰 일을 치러낸 것이다. 초저녁의 긴장 상황이 끝나고 밤 11시 50분에 딸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이때는 날씨가 워낙 더워서 산후조리 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어머님은 힘든 내색하지 않으시고, 땀띠가 돋을 정도로 정성을 다해 며느리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두 아이의 산후조리를 위해 애쓰신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원진다. 며느리를 위해 옷을 만드시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산후조리를 해주시던 어머님의 은혜에 제대로 보답도 못해드렸는데…. 71세의 연세에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함이 후회스럽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제대로 산후조리 하지 못한 친구들을 보면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애를쓴다. 여자에게 있어 산후조리는 평생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편하게 지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나의 시어머님께서 며느리 산후조리를 해주신 만큼 나도 며느리나 딸아이의 산후조리는 꼭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으로 산후조리를 해준다면 며느리나 딸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응모 기사 입니다

2007.12.26 12:53ⓒ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산후조리 응모 기사 입니다
#산후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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