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전투전적지'에서 얻은 교훈

평화 통일을 가르치는 산 교육장으로 만들자

등록 2008.01.20 10:28수정 2008.01.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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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협


나는 손바닥 위에 배지 하나를 보고 있다. '백마고지 참전 전우회'에서 만든 '백마고지 안보교육 참관' 기념품이다. 두 손을 모아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두 개의 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이것은 '백마고지 전투전적지'의 상징물이다. 백마고지 전투 기간도 표기하고 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952년 10월 15일까지, 열흘 간이다.

휴전을 앞두고, 남북이 서로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한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필사적으로 백마고지(395m) 쟁탈 공방전을 벌인 후 악전 고투 끝에 국군이 승리, 장렬하게 순국한 전몰 장병과 상이 용사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안보의지를 후대에 전하여, 안보의 산 교육장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백마고지 전투전적지'(이후에는 '백마전적지'라는 약칭을 씀)를 건립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1월 18일 매섭게 추운 날, 나는 경원선이 끊어진 신탄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10분쯤 가니, 철원 대마리 북쪽 0.5km쯤 거리 야트마한 동산에, 하늘 높이 솟은 두 개의 탑이 보였다. '백마전적지'다.

이 '백마전적지' 북방 2㎞쯤 지점에 395m의 백마고지가 있다. 여기가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는 처절한 포격전, 수류탄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총칼로 찌르는 백병전을 밤낮 열흘간 반복하고, 피아의 포탄을 근 30만 발 쏟아부었고, 피아의 전사상자가 1만5천명,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는 마의 격전장이다.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은 백마고지와 '백마전적지'가 같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전에도 두 번 이곳을 찾았지만  무서운 떨림과 아픈 마음에 '백마전적지'의 실상을 알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안정된 마음으로 전투의 실제를 알고,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탑신, 비석, 기념관, 사진, 유품, 시문, 전사자 명단, 생존자 명단, 기록문 등을 천천히 살피고, 분향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안내병에게 질문도 하고, 한국전쟁의 실체에 다가가려 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주로 9사단이 하였다. 지금은 5사단이 관할하고 있고, 두 명의 사병이 파견되어 안내역을 맡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입대하여 안내원의 교육을 받았다 한다. 한 사병은 한국어로 한국인을 안내하고, 다른 사병은 영어로 외국인을 안내한다 한다.

추운 날씨라 방문객이 없다. 나 한 사람에게 아주 친절하게 세세한 점까지 설명해 주었다. 12차례의 악전고투 끝에 국군이 승리하여 고지를 차지했다는 무용담, 육탄으로 산화한 3용사의 살신성인의 모습을 당시의 탄피를 녹여서 부조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위령탑 기단부에 있는 3423개의 운모석은 국군 전사자의 숫자를 뜻한다는 것까지.


그리고 5사단을 상승부대라 하고 자유의 종을 설치하는 종각을 만들었는데, 그 기단이 5층인 것은 5사단을 의미한다는 것, 평화를 기원하는 탑의 상층부에는 두 손을 모아 빌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 백마고지에서는 지금도 전사자들의 유해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 등 단편적이나 내가 모르는 정보들을 많이 알려 주었다.

그러나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사실로만 말하고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별 설명이 없는 것이다. 위령탑이나 전적지 비문이나 참전용사들의 기록문을 뜯어 보면, 1950년대의 격앙된 감정으로 쓴 모윤숙 여사의 시에 담긴 문제점은 말이 없다. 모윤숙 시인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내가 보기에 이 시는 이제는 박물관에나 전시해야 적합할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은 흘러 동족을 적대시라는 격앙된 마음도 가라앉고, 동족상쟁의 과거사를 객관적인 이성으로 판단하는 문귀가 보여서, 민족은 지혜로운 사고를 하고 평화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백마고지 참전 전우회' 김운재 회장은 '참전용사 기념의 말'에서 '…이 전투를 계기로 용맹을 세계에 떨치게는 되었으나 이같은 처절한 비극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에서…'라고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 안내병은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하는 역사적 근본 문제까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방(1945) 후, 남과 북에 두 개의 적대적인 정부를 세운 지도자들이, 민족의 갈 길을 오도한 과오를 뼈아프게 비판하고 반성해야 한다. 해방 전에 해외에서  또는 만주 벌판,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한 공적은 십분 이해하나, 적화 통일이나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자신의 뜻대로만 민족의 갈 길을 몰고 가다가, 반 세기가 넘게 분단, 혈전, 냉전에서 전민족을 얼마나 고통의 지옥에서 헤메이게 했는가? 외세가 아무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약소국을 이용한다도 해도, 세계사의 흐름에 밝고, 권력에 대한 자신의 과욕을 자제할 줄 아는 지도자들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20대 초반의 안내병으로는 역부족임을 안다. 대학에서 국사학을 전공하고, 민족사관이 뚜렷하고, 한국전쟁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뜨겁게 고민한 안내원이어야 한다. 중고교 국사 교사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여 안내원으로 채용했으면 좋겠다.

학교나 학원에서 국사를 암기과목이라고 하여, 점수만 잘 따면 실력으로 인정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국사 교육은 민족사의 처철한 역사 현장에서, 가슴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각성해야 한다. 평화 통일의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더 소중한 곳이 없을, 이 '백마고지 전투전적지'에서 우리는 다시는 폭력의 방법으로 통일을 꿈꾸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도록, 후손들을 단단히 가르쳐야 한다.

이 '백마전적지'에서 평화를 주제로 하는 학생 글짓기 대회도 열고, 전쟁에 희생된 영혼을 진혼하는 음악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평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일이다.

다음은 '백마전적지'에서 동쪽으로 1.5km 쯤에 있는 노동당사를 찾앗디. 콘크리트 골격 외벽만 흉물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이 건물은 해방(1945) 후 북한 정권이 5년간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 주민들의 생활을 관장 통제하던 권력의 중심지였다.

노동당사 북쪽에는 일제 치하에 해방 후 5년간 있었던 관공서, 학교, 은행, 얼음공장, 철원역 등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남쪽에는 상수도국, 교회, 시체 화장장, 경마용 말 훈련장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과아터와 시인이자 강원도 지사를 지낸 정철이 올랐다(관동별곡)는 '북관정'도 있었다. 향교는 지금도 남아 있다.

노동당사나 민통선 안에 있는 구 철원 시가지에는 안내원이 없다. 1950년대에 씌어져서 국민들에게 북한 정권에 대한 혐오감, 적대감만 부추기고, 화해, 상생, 협력, 평화의 정신에 어긋나는 '노도당사 안내문'이 보는 사람의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이 안내문은 명백하게 남북의 정상이 선언한 6·15 정신에 어긋나고, 평화 통일에 걸림돌이 된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 안내문은 역사 방물관에 보내거나 아예 폐기해야 한다.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고 새로운 객관적인 안내문을 설치할 일이다.

역지사지하자. 해방 전 5년간 남한의 치하였다가, 휴전 후 북한 치하로 들어 간 개성시청의 폐허지에, 우리 대한민국을 비방, 모욕·매도하는 문장으로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남한의 개성 관광 방문객이 이런 글을 읽어 본다면 평화 통일의 길은 잘 열릴 것인가?

마음이 무겁지만 노동당사 안내문의 뒷부분을 소개한다.

'…공산 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 송장이 되어 나올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 건물의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 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되었다.'

반 세기 전 휴전 당시의 증오심과 적대감은 서서히 여과되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고 민족이 하나되어, 세계에서 당당한 행복한 국민이 되어, 떳떳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 주자.
#백마고지 전투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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