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한 입 두 말하는 한나라당
야당 땐 독립, 정권 잡자 '대통령 직속'

UN 우려 서한에도 밀어붙이기... 인권위 "유무형 압력 있을 것" 우려

등록 2008.01.20 19:25수정 2008.01.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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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의지'가 '아집'으로까지 치닫게 되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언행도 쉽게 번복하게 된다.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와 방송통신위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대통령직인수위가 그렇다.

 

반대 여론은 국내 인권단체와 정치권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기구인 유엔(UN)에서조차 인권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조직개편 시도를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인수위측에 보냈다. 그러나 인수위는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20일 두 기관의 독립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자, 인수위는 "독립성 유지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며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박형준 의원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독립성은 업무수행상 독립성이지, 이를 소속상의 독립성으로 이해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앞서 한나라당도 지난 17일 의원총회에서 인수위가 마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의로 21일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국회에 제출된 한나라당의 국가인권위원회법안(이하 인권법)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오히려 인권위의 '소속상의 독립성'을 주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일 땐 인권위의 독립성를 강조했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권력 품으로'를 외치며 180도 입장을 바꾼 셈이다.

 

7년전 한나라당 "인권위,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운영"

 

지난 2001년 4월 30일, 3년여의 지리한 논란 끝에 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법사위를 통과한 인권법과 이 법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수정 동의안에 대해 기립 표결을 실시했다. 사실상 여당안인 법사위의 인권법은 찬성 137, 반대 133, 기권 3으로 가결됐고, 앞서 한나라당의 수정동의안은 찬성 136, 반대 137로 부결됐다. 

 

'3표차 가결'과 '1표차 부결'이 보여주듯 당시 여야는 이 법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당시 여야가 논란을 벌인 가장 큰 이유는 인권위원회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특검제 도입 여부였다.

 

야당측은 "인권시비가 이는 주요사안은 대개 권력기관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특검제 도입을 주장한 반면, 여당측에선 "인권위원회법에 특검제를 도입할 경우 검찰 등과 권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결국 여야의 법안이 각각 본회의에 올려졌고, 여당 안이 표결 끝에 채택됐지만 특검제를 제외하면 여야가 각각 제출한 법안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인권위원회의 법적 성격 관련해서 여야의 법안 모두 인권위를 국가기관으로 하되 그 소속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2001년 당시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인권법안을 입수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제 3조와 제 4조에서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한 업무와 인권침해를 조사·구제하기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하도록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위원회를 운영함"이라고 규정 돼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법안 제 6조 '위원의 임명' 조항을 설명하면서 "위원회가 독립 국가기구인 점을 감안하여 삼권분립의 이념에 충실하고 인적 독립성 및 다원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전제했다. 이 밖에도 한나라당은 법안 곳곳에서 인권위원의 신분보장과 재정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원장 및 위원은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하며..."(안 제12조).

 

"위원회의 경비는 독립하여 국가예산에 계상하여야 하며, 예산편성에는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도록 함."(안 제20조).

 

이 법안은 한나라당 소속 전체의원 133명의 서명을 받아 당론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특히 법안 발의자에는 현 원내대표인 안상수 의원,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장인 임태희 의원, 서울시장인 오세훈 의원 등이 포함 돼 있다.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인기 의원은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 "일부 기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나 권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권을 향해 던진 부메랑이 인권법이 되어 되돌아온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등 일부 부처가 인권위를 민간기구나 행정부 소속 기구로 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특히 "모든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실질적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여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a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위원인 곽승준 고대 교수(왼쪽)와 박형준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위원인 곽승준 고대 교수(왼쪽)와 박형준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위원인 곽승준 고대 교수(왼쪽)와 박형준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인수위 "소속이 아니라 업무 독립"-인권위 "소속되면 업무 수행 영향"

 

한나라당이 7년만에 '인권위의 독립기구' 입장을 번복한 것이나, 인수위가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 기구 재편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수위측은 인권위나 방송위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 3부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법적 지위의 애매성을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뿐, 이들 기관에 대통령이 향력을 행사하거나 규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박형준 의원은 20일 "(독립성 문제는) 조직의 법적 위상이 문제가 아니라 기능이 실질적으로 운영되느냐, 부당한 압력을 받을 소지가 있느냐에서 검토돼야 한다"면서 "그 점에 있어 두 기관 다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고, 합의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치적 균형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감사원의 경우 대통령 소속이긴 하지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인수위의 대통력 직속 기구 재편에 대해 거듭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명재 인권위 홍보협력팀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인권위의 독립기구와 관련) 헌법적인 위헌 논란에 대해서 논의를 거친 것"이라며 "과정은 얘기하지 않고, 삼권분립을 절대시해서 고정불변으로 얘기하면 안된다"고 인수위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인수위측 주장대로 인권위가 3부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삼권분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3부와 독립된 별도의 기구로 설립됐다는 것이 인권위의 입장이다.

 

박형준 의원이 '소속상의 독립성'보다 '업무수행상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이명재 팀장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지 모르나, 행정부 소속이 되면 소속과 존재가 업무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존재가 의식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재편되면서 행정부의 일원이 될 경우, 국가기관을 감시해야 할 인권위 내부에 '한 가족'이라는 동업자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권위도 감사원처럼 헌법기구의 지위 부여해야"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눈에 보이는 명백한 압력은 없겠지만, 유무형의 직간접적인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며 "인권위원이나 사무처 직원들 스스로가 그런 의식을 통해 자기 검열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부와 인권위 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타협을 하고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인수위와 한나라당이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 기구화를 추진하는 배경과 관련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인권위가 했던 일들이 어떤 논란을 일으켰고, 인권위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이 특히 어떤 사람들로부터 제기됐는지, 과거 흐름을 보면 상식적인 선에서 짐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권력(3부)과 거리를 두면서 정부의 주요 정책에 다수의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안,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을 두고 참여정부와 이견 차이를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인권위가 독립기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로 평가된다.

 

'사형제 폐지 불가', '불법 집단행동 엄단' 등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이러한 인권위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권위측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대안으로 인수위측이 제시한 감사원의 사례를 주목했다. 이명재 팀장은 "감사원은 헌법기구라는 위상을 가지고 상당한 독립성을 헌법적으로 보장받았다"며 "인권위도 그런(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행정부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개헌을 통해 헌법기구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부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2008.01.20 19:25ⓒ 2008 OhmyNews
#이명박 인수위 #국가인권위원회 #정부조직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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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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