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나 일반인들은 한센인들이 생활하는 마을은 들어갈 수 없다.
김준
수용, 강제노역 그리고 ... 소록도 국립병원은 1910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시립나요양원’있었다. 당시 광주, 부산, 대구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한센병요양원이 있었다.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피부와 말초신경을 침해하는 만성전염성 면역질환’이다.
지금은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전염성이 매우 낮고 치료가 가능한 병임이 밝혀졌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전염성이 높아 격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찾아낸 곳이 연중 날씨가 좋고 육지와 가깝고 물자 수송이 용이한 소록도였다.
1916년 이곳에 ‘자혜병원’을 세우고 99명을 격리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한센병 환자들은 거처할 곳이 없어 움막, 다리 밑에서 유랑, 걸식하며 생활했다. 일제는 1933년 소록도 전체에 모든 한센병 환자를 수용할 계획을 세우고, 1935년 '조선나예방령'을 근거로 전국 한센병 환자를 강제 모집하였다. 해방 후 이곳에 6254명이 수용되기도 했다.
일제는 소록도 병원장에게 환자를 감금할 권한 등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다. 당시 소록도 한센인들은 눈을 뜨면 바다에 나가 바지락을 캤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 송진을 땄다. 점심때는 벽돌을 굽고, 집에 와서는 가마니를 짰다. 자신이 찍은 벽돌로 감금실을 짓고, 해부와 강제정관수술을 할 검시실을 지었다.
1935년에는 이곳에 광주형무소 소록도지소를 두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병원에게 재판 없이 견책, 30일 이내의 근신, 7일 이내의 주부식의 1/2 감식, 30일 이내의 감금, 총독부허가를 얻어 60일 감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강제노역을 견디다 못해 작은 나무에 목숨을 걸고 거친 바다로 뛰어들기도 했다.
뭍으로 나가다 잡히면 감금실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 강제정관수술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권유린은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다. 1936년 부터 시작된 강제정관수술은 부부동거를 전제로 1970년대까지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