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독신숙소의 모습
김준
또 다른 소록도 '정착마을'
1960년대 강제 격리정책이 사라진 후 전국 87개 한센인 정착촌이 마련되었다. 한센병력자로 이루어진 정착마을, 주민들은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대부분 공동체생활을 한다. 우리나라 한센병 등록 환자는 1만6천여 명이며 이중 현재 앓고 있는 사람은 500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완치된 전염성이 전혀 없는 음성 환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육지생활은 순탄치 않다. 초기 정착촌과정에서 병력자의 아이들은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우리 마을 인근에 정착촌을 만들지 말라는 등 갈등도 이어졌다. 소록도 앞 오마도 간척사건이나 경남 삼천포의 비토리섬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정착마을은 한센병의 편견과 격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된 사업이었다. WHO를 비롯한 세계 한센병 전문가들은 환자들에게 일을 시킨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유준 박사에 의해서 추진된 정착마을 사업은 환자들의 경제적 재활, 심리적 재활, 정신적 재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절반은 성공했지만 한센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권리와 의무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재활’이 남아 있다. 이 경우 요양소나 별도의 격리시설이 아니라 학교, 교회, 여가공간, 장애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에서도 일반인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나균지수가 0이 되어 의사가 ‘완치되었습니다’라고 해도 이를 믿는 환자는 없다.
환자는 이미 신경손상으로 손이 갈고리로 변하고, 얼굴이 마비되고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한센인들을 보는 일반인들의 편견이 이들을 더욱 격리시킨다. 소록도 안에도 최근까지 환자자녀들만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한센병이 완치된 병력자는 보균자가 아니다. 다만 신체일부가 변형된 장애인일 뿐이다. 보균자의 경우도 리팜피신 1회 4알 복용으로 99.9% 나균전염성이 상실된다. 전염성이 거의 없는 치료가능한 병이다. 그래서 격리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종교적인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것은 오해와 편견 그리고 한센병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1992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도 그렇다. 당시 신문에는 “칠곡 나환자촌 건물 지하실에 실종 성서국교생 5명 암매장”기사가 보도되었다. 확인 결과 거짓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센인들이 받아야 했던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