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책탑누구 눈에는 비좁게 잔뜩 쌓인 종이뭉치로 보일 책탑. 누구 눈에는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보물덩어리가 가득가득 넘치는 책탑.
최종규
(1) 샛장수 “많이 했는가?” “없어요. 비가 와서.”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 앞에 샛장수 아저씨들 여럿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들 고물상과 파지간을 돌며 ‘버려진 책’을 오토바이 가득 실어 왔습니다. 〈뿌리서점〉 아저씨는 부지런히 이 ‘버려진 책’을 헤집으며 당신이 사들일 만한 책이 무엇일까 헤아립니다.
당신이 사들일 만한 책은 한쪽에 놓고, 당신으로서는 살 수 없어서 버려야겠다는 책은 다른 한쪽에 놓습니다.
이러는 동안 〈뿌리서점〉 책손은 아저씨 뒤에 서서 어깨 너머로 어떤 책을 고르고 안 고르는가를 살핍니다. 책손들 마음에 드는 책이 이때 보인다고 하더라도, 〈뿌리〉 아저씨가 샛장수한테 사들여서 귓등에 꽂아 놓은 연필로 책등 아래쪽에 슥슥 책값을 적어 놓을 때까지는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벌써 서른 몇 해 동안 지켜져 온 말없는 다짐입니다.
“(샛장수 아저씨가) 계속 오네. 또 오네. 저기. 마지막 아저씨여. 밥도 못 먹고 하네. 밥을 먹어야 사는데.”저 멀리 오토바이 소리 부르릉 나면서 다른 샛장수 아저씨가 〈뿌리서점〉을 찾아옵니다. 헌책방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쉴 틈이 없이 바쁘니 걱정이 됩니다. 책이 부지런히 들어와 주는 일은 좋지만, 밥때를 거르면, 아저씨 나이를 생각했을 때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뿌리〉 아저씨는 당신을 찾아온 샛장수 마지막 물건까지 다 살피고 나서야 비로소 집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드시는걸요.
(2) 쉬게 해 주는 책 .. 그때 이 일기장을 부둥켜안고 “형님은 갔으나 내가 그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형님의 이상이었던 세계 일주 여행을 함으로써 소원을 풀어 줄 양으로 세계 지도를 벽에 붙이고 공상에 잠기며 .. (8쪽)
<김찬삼-끝없는 여로>(어문각,1962)라는 책이 보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세계여행가 김찬삼’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첫 책이 이 <끝없는 여로>가 아니었을는지. 1962년 1월 10일에 첫 쇄를 찍은 이 책은 1965년 6월 10일에 16쇄를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