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18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배종호, 박선규, 신성범, 안형환 전 KBS 기자.
KBS
기자들의 정치 참여는 우리나라 언론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인들이 대선과 총선이라는 권력교체기마다 청와대 요직을 꿰차거나 유력정당의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우호적인 기사나 칼럼을 쓰던 언론사 기자들이 한 순간에 선거캠프의 참모로 변신하거나 공천 신청을 위해 입당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버렸다.
'권언유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인들의 성공 스토리 앞에 맥을 못 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우 17대 전·후반기 국회의장 자리를 동아일보 출신 의원들(김원기·임채정)이 도맡았고, MBC 앵커를 지낸 정동영씨는 통일부장관과 원내1당의 대선후보 자리에 올랐다.
현직기자들의 공천 신청 '붐'이 일고 있는 18대 총선은 어느 때보다 많은 기자 출신 의원들을 배출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가 8일 총선 예비후보자들과 각 정당별 지역구 공천신청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적어도 30여명의 현직 언론인들이 정당 공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 때만 해도 언론사 기자나 앵커·방송진행자로 죽 활동하다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사람은 8명(비례대표 포함)이었는데, 언론인 경력의 의원들을 모두 합치면 그 숫자는 28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기자 시절에는 대중의 정치 혐오증에 편승하거나 이를 부채질하는 기사를 쓰다가 막상 자신에게 기회만 생기면 기꺼이 '진흙탕'에 뛰어들 준비가 된 기자들이 부지기수인 셈이다.
18대 총선의 시작부터 불고 있는 기자들의 정치 열풍은 이번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언론인들이 국회에 진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총선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조선일보>와 SBS 그리고 KBS인데, 대부분의 기자들이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조선> 기자들의 한나라당 입성은 시기적으로 2007년과 2008년으로 분류된다.
서울 성북을과 중랑을에 각각 출사표를 던진 김효재 전 부국장과 진성호 전 사회부 차장은 지난해 이명박 경선캠프에 참여한 뒤 이 당선인의 후광을 업고 공천을 기대하는 케이스다.
박근혜 캠프의 공보특보를 맡았던 허용범 전 <조선> 워싱턴특파원은 지지 후보의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명박 당선인의 비서실 정무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경북 안동에서 공천을 벼르고 있지만, 3선 권오을 의원의 벽을 넘을 지는 미지수다.
최근까지 <조선>에 몸담고 있던 이진동·배한진씨는 각각 경기 안산 상록을과 용인갑에 터를 잡았다. 안산 상록을의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는 '손학규맨'으로 분류되는 김재목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거론되고 있다.
송승호(전 <월간조선> 취재팀장)씨는 3선의 임인배 의원이 버티는 경북 김천에서 공천을 노린다.
방송3사중 가장 보수적으로 분류되는 SBS에도 한나라당 공천희망자가 많다. 경기 여주·이천의 김문환 기자(통합신당)를 제외하고는 홍지만 앵커(대구 달서갑), 이훈근(경기 남양주을), 김우광 제작국장(고양 덕양을), 정군기 국제부장(고양 일산갑) 등이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SBS 출신의 프리랜서 방송인 유정현씨도 서울 동작갑의 한나라당 공천을 놓고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의 대주주 홍정욱씨와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한다.
대선 기간을 통틀어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에 가장 우호적인 신문·방송 매체였다는 평가를 각각 받는 <동아일보>와 SBS 출신의 언론인들이 공천 경합을 벌이는 곳도 적지 않다.
SBS 뉴욕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낸 엄광석(인천 중·동·옹진)씨는 2003~2005년 <동아> 편집국장을 지낸 이규민씨와 맞대결하게 된다.
<동아>의 4컷만화 <나대로 선생>으로 유명한 이홍우 화백과 SBS 정치·국제 CP를 지낸 허원제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이 맞붙는 부산진갑의 한나라당 공천희망자는 17명에 이른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양기대 전 <동아> 기자(경기 광명을)도 한나라당의 '정책통' 전재희 의원을 상대로 재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KBS는 일주일 사이에 데스크급 간부 2명을 포함해 3명의 기자들이 잇달아 사표를 내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해 정치권과 언론계를 놀라게 했다.
2003년 정연주 사장의 취임 이후 한나라당으로부터 편파방송이라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던 KBS이지만, 소속 기자들의 '한나라당 공천 러시'를 보면 그 동안의 비난이 지나치지 않았냐는 느낌이 들 정도다.
보도본부 외교안보데스크를 맡았던 안형환 기자와 2TV <8시 뉴스> 앵커를 지낸 박선규 기자,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신성범 기자가 서울 금천과 관악을, 경남 함양·거창·산청에 한나라당 공천을 나란히 신청한 상태다. 특히 박선규씨의 경우 같은 지역구에 MBN 앵커 출신의 박종진씨가 공천을 신청해 방송사 앵커들끼리 한나라당 공천을 다투게 됐다.
KBS 뉴욕특파원과 사회부 데스크를 지낸 배종호씨는 2007년 손학규 경선캠프의 대변인으로 발탁돼 통합신당 공천(전남 목포)을 준비해왔는데, 최근 이상열 의원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경쟁상대로 떠올라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KBS PD 출신의 최종건씨는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 이어 올해도 경기도 화성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도전하기로 했고, 박원훈 KBS 부산총국장은 부산 금정의 출마예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지지 후보가 갈렸던 <중앙일보>의 전직 부국장 2명도 충청권에서 표밭을 갈고 있다.
2006년 회사를 떠나 국민중심당 대변인으로 변신한 이규진씨가 대전 유성에서,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낸 김현일씨가 충북 증평·진천·음성·괴산에서 각각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 공천을 노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무색무취한 논조처럼 기자들의 '한나라당 쏠림' 현상이 비교적 덜한 편이다.
2002년 회사를 그만두고 각각 이회창·정몽준 캠프에 몸을 실었던 두 명의 정치부 기자, 홍희곤·홍윤오씨는 올해 총선에서는 서울 마포을과 부산 북·강서을에 나란히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홍희곤씨의 경우 2004년 총선 출마(서울 광진갑)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데, 박근혜 전 대표의 총애를 받는 허태열 의원의 벽을 넘는 것이 숙제다. <한국> 논설위원을 지낸 조명구씨는 고심 끝에 서울 영등포을(권영세 의원)에 공천을 신청했다.
<한국> 정치부장을 지낸 뒤 국방홍보원장·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승승장구했던 윤승용씨는 전북 익산을에 통합신당 공천을 신청했는데 "원광대가 로스쿨을 유치하는데 기여했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손학규 캠프에 합류했던 송두영 전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은 강기정 의원이 있는 광주 북갑에서 통합신당 공천을 신청해놓았다.
MBC 출신으로는 보도제작국장·강릉MBC 사장을 지낸 김영일(서울 은평갑)씨와 기자를 지낸 김영길(경남 마산을)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고, 베를린특파원을 지낸 신창섭 기자의 무소속 출마(강원 속초·고성·양양)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경선캠프 출신의 김해진(경향신문 정치부장)씨와 김영우(YTN 기자)씨도 각각 부산 사하갑과 경기 연천·포천에 한나라당 공천신청서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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