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사장의 못 말리는 경영 이야기

[문닫은 만화가게 주인도 못버린 만화들 ①] 만화 <헤븐> VS 영화 <카모메 식당>

등록 2008.02.16 21:07수정 2008.02.1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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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은 만화가게 주인도 못버린 만화들>은 한화 웹진 오픈아이(www.5pen-i.com) '싸리의 골방'에 연재했던 만화 이야기의 후속편입니다.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5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만화를 소개했는데, 그 때 다 못 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문을 닫은 지 1년 반이 지난 요즘도 주인 없는 빈 가게에는 만화책과 비디오가 살고 있습니다. 뉴타운 재개발로 곧 이주가 시작되면 이 많은 책과 영화들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막막하지만, 어쨌든 헐값에 넘기지 못한 소중한 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못말리는 여사장이 맘대로 운영하는 '세상의 끝', <헤븐?>

 

a  제멋대로지만, 나름대로 경영철학을 가진 여사장, 카나코의 <헤븐?>

제멋대로지만, 나름대로 경영철학을 가진 여사장, 카나코의 <헤븐?> ⓒ 정진영

제멋대로지만, 나름대로 경영철학을 가진 여사장, 카나코의 <헤븐?> ⓒ 정진영

프랑스 식당, 로윈디시(Loin d'ici). 우리말로 '세상의 끝'이라는 이 식당은 무덤가에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목단꽃이 절정을 이루며 핀다는 이유로 공동묘지 바로 옆에 가게를 얻은 어처구니 없는 여사장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위치이지만, 요즘처럼 일부러 먼 곳까지 맛있는 집을 찾아가서 먹는 게 유행처럼 번진 풍토에서는 목단이 피는 한 달간 '초대박'을 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사장은 발레 공연이 끝난 후에도 프랑스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사실 본인이 공연을 본 후에 먹고 싶었던 것) 연장 근무를 하게 합니다. 음식점 경영 측면에서 본다면 제대로 찍은 틈새시장이지요.

 

발레와 프랑스 요리! 공연 후에 느지막히 여유있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와인 한 잔을 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만화 <헤븐?>을 읽어서인지, 다른 손님들이나 제 동생들은 "1권부터 6권까지 엄청 웃기다"고 하는데, 저는 단 한 번도 웃은 대목이 없습니다.

 

손님한테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웨이터 이가 칸. 은행 간부 출신의 무자격 소믈리에, 취직하는 식당마다 망하는 주방장까지.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세상의 끝에서 여사장 카나코는 고군분투 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식당을 살리기 위해 일반적인 사장님들처럼 '빡세게' 종업원들을 지시하거나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걷지요.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가장 신선한 고기를 주문해 먹고,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손님보다 더 시끄럽게 까탈을 부리기도 합니다.

 

사장이 막 나가니, 직원들은 식당이 망할까봐 긴장하며 더 열심히 자기 일을 찾아서 하게 됩니다.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는 독특한 캐릭터와 유머로 인기를 끄는데, 제게 이 만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경영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만화를 보고 웃지 않는 저를 두고 동생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만화 <헤븐?>은 큰 회사든, 작은 구멍가게든 자기 손으로 뭔가를 일구는 사람들에게 사장의 심리적 여유와 모험심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a  핀란드 사람 둘과 일본인 셋이 먹을 주먹밥을 만드는 세 여자. 일본인의 소울푸드는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담백한 위안을 준다.

핀란드 사람 둘과 일본인 셋이 먹을 주먹밥을 만드는 세 여자. 일본인의 소울푸드는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담백한 위안을 준다. ⓒ 오기가미 나오코

핀란드 사람 둘과 일본인 셋이 먹을 주먹밥을 만드는 세 여자. 일본인의 소울푸드는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담백한 위안을 준다. ⓒ 오기가미 나오코

 

"왜 하필 주먹밥을 주메뉴로 정했어요?"

"왜나면 주먹밥이야 말로 일본인의 소울푸드이기 때문이죠. 일찍 어머니를 여윈 저는 가사일을 도맡아야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꼭 1년에 2번 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리고 주먹밥은 자기가 만든 것 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 훨씬 더 맛있다고 하셨어요. …비록 아주 크고 볼품은 없었지만 그건 정말 너무나 맛있었어요." - 영화 <카모메 식당>, 미도리와 사치에의 대화

 

뚱뚱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핀란드 헬싱키. 길게 늘어선 상가들 사이에 작은 식당이 새로 문을 엽니다. <카모메 식당>,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합니다. 어린 시절 뚱뚱한 고양이를 좋아했는데 고양이가 죽었을 때, 야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다는 주인공 사치에. 여자 혼자 몸으로 '외로운 늑대'들의 나라 핀란드에서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를 주 메뉴로 하는 식당을 운영합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특성이 있어서 이방인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초밥이나 스시가 아닌 주먹밥 집을 하겠다는 그녀를 일본인 여행객 미도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핀란드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으니 그들을 상대로 관광책자에 광고라도 내보라고 권하지만, 한 달 째 손님이라곤 일본 문화 마니아 한 명 뿐인 식당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a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외로움과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가장 편안해 보이는 나라 핀란드에 와서 확인한다.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외로움과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가장 편안해 보이는 나라 핀란드에 와서 확인한다. ⓒ 오기가미 나오코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외로움과 고통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가장 편안해 보이는 나라 핀란드에 와서 확인한다. ⓒ 오기가미 나오코

미도리는 세계지도를 펴 놓고, 눈 감고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무작정 날아왔다는 대책 없는 여행자. 식당 주인 사치에와 막상막하의 무대책 인간입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영화는 불친절합니다.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일본여자가 나옵니다.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리는 장면으로 등장하는 마사코, 그녀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핀란드의 우스꽝스러운 대회들을 보고 핀란드 행을 동경하게 됐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가는 것과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병든 부모의 기저귀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고통이 아니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쉽지 않은 일이지요.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마사코는 여유를 찾아 핀란드로 향합니다. 아내를 업고 달리는 대회나 기타 소리 흉내내기 대회,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대회 등 핀란드 사람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진지하게 임하는 게임들은 그녀에게 어떤 위안이 될 것 같았는가 봅니다.

 

영화는 그녀들의 이야기와 헬싱키 사람들의 삶을 절묘하게 묶어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인데, 카모메 식당의 전 주인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커피 분쇄기를 도둑처럼 몰래 가져가려다 들키는 장면과 함께 사람 사이에 통하는 무언가가 결국 사람들 사이를 연대하게 하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약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커피 루왁’이라고 주문을 외우며 끓여내는 핸드 드립 커피와 계피롤, 일본식 돈가스와 연어만 주문해 먹던 핀란드 사람들도 하나 둘씩 일본인의 '소울푸드' 주먹밥 오니기리를 먹기 시작하고, 파리만 날리던 식당이 만원을 이루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a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세 사람. 왼쪽부터 미도리, 사치에, 마사코. 일본인과 핀란드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세 사람. 왼쪽부터 미도리, 사치에, 마사코. 일본인과 핀란드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 ⓒ 오기가미 나오코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세 사람. 왼쪽부터 미도리, 사치에, 마사코. 일본인과 핀란드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 ⓒ 오기가미 나오코

 

사치에 사장님의 전략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사를 하는 것. 그리고 현지인의 입맛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대단한 사람처럼 확대포장 되지 않아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겨줍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잔잔한 내공으로 정면승부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만화 <헤븐?>의 카나코는 전략적인 관리자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사치에는 자기 손으로 밥을 벌어야하는 자영업자의 전형이고, 카나코는 시스템을 구축해 체인점을 여럿 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두 여사장에게 배우는 식당 경영 비법은 비단 음식점 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응용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08.02.16 21:07ⓒ 2008 OhmyNews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푸른숲, 2011


헤븐? Heaven 5

노리코 사사키 지음,
삼양출판사(만화), 2003


#헤븐 #만화 #카모메 식당 #만화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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