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패트릭 연설을 표절했다?

미국 민주당 당내경선 격전... 힐러리와 오바마 연설표절 시비

등록 2008.02.19 16:45수정 2008.02.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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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바마 18일 오하이오주 영타운 주립대학 연설

오바마 18일 오하이오주 영타운 주립대학 연설 ⓒ 오바마 선거본부

▲ 오바마 18일 오하이오주 영타운 주립대학 연설 ⓒ 오바마 선거본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오바마와 힐러리 양측은 서로에게 '다른 정치인들의 용어와 말을 '슬쩍해' 써먹는다'고 비난을 퍼붓고 나섰다. 이번에 힐러리측은 '슬쩍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표절'이라며 오바마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발단은 힐러리측이 유튜브 동영상에 지난 16일 오바마의 밀워키 연설과 지난 2006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나온 데발 패트릭의 2006년 10월 15일 연설을 올려놓은 데서 비롯됐다. 이들의 연설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 우선 연설문을 보자(유튜브 동영상 보기).  

 

오바마 : "'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겐 꿈이 있다'는 명언도 말이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우리는 이를 명백한 진리로 믿는다'는 것도 역시 말이며 스피치 아니겠습니까?"

 

패트릭 :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우리는 이를 명백한 진리로 믿는다'는 것은 말 아니겠습니까? '두려움 말고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도 말 아니겠습니까?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는 것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물어야 합니다'는 것도 바로 말 아니겠습니까?"

 

오바마와 패트릭은 정치적 '동지'

 

힐러리측 공세에 대해 오바마측은 당시 연설에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밝혔다. 오바마와 패트릭은 친구이며 정치적으로도 서로를 지원·지지하는 입장이고 문제의 연설 구절은 실제로 즉흥연설의 한 대목이었을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힐러리측은 다른 누군가의 말을 따다 쓰는 것은 원래 말한 이에게 과도하게 기댄 행위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공세를 이어갔다. 이 논쟁은 18일 11시(현지시각) 양측이 기자회견을 벌이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힐러리측 하워드 울프슨 대변인은 "서로 과연 동의 하에 그 말을 썼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며 "대중들은 오바마의 말이 패트릭이 한 말이라는 것도 알 턱이 없지만, 우리는 다른 이가 애써 한 말을 슬쩍하는 대통령을 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울프슨은 '폴리티코지'와의 별도 회견에서 "비로소 오바마가 패트릭의 과거 연설을 '표절'했다"고 처음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오바마측은 "힐러리가 숱하게 자신의 말을 슬쩍해 써먹었는데 정치적으로 전혀 문제삼지 않아 왔다"며 역공을 취했다.

 

유권자 기대감 높이는 연설구절

 

오바마측 선거대책위원인 데이빗 플러프는 기자회견에서 "역사상 정치지도자들이 말과 연설로 국민들을 감동시키며 영감을 불어넣은 적이 있었다"며 "힐러리측이 할 일 없이 표절시비를 제기한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이어 "힐러리측이 이번 대선과정에서 오바마가 한 말들을 숱하게 슬쩍 해다가 써먹어온 상황에서 거꾸로 오바마에게 표절시비를 제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바마측 언론비서인 빌버튼은 힐러리가 오바마의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뜨겁게 달궈 시작해봅시다' 등과 같은 구호들을 여러 차례 가져다가 썼다고 지적했다.

 

선거연설 구절 표절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4월에도 보스톤 '글로브지'는 오바마가 패트릭의 말을 그대로 사용했다며 지적하고 나섰었다. 이번 사건 관련 이 신문은  "장중한 연설 문귀들이란 것은 그것이 슬쩍한 것이든 아니면 최초의 독창적인 것이든 관계없이 모두 한 정치인을 질식시킬 정도로 기대감을 높여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스톤 글로브지의 피터 카넬로스는 다음과 같은 썼다.

 

"실제 쟁점이 된 사항이 아닌 경우, 희망의 정치에 있어서는 어떤 특별한 아젠다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없다. 2006년 패트릭이나 이번 오바마나 둘 다 웹사이트에 각종 이슈에 대한 자신들 입장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둘 다 민주당의 다른 인사들과 입장 차이가 거의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의 말 혹은 희망의 연설에선 이슈나 쟁점들이 상실되고 만다. 이슈나 쟁점이라고 하는 건 너무도 진부하며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측의 캐리 버도프 브라운 대변인은 18일 오하이오주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패트릭은 흔히 나(오바마)의 연설 구절들을 가져다 쓰곤 했다. 나도 패트릭의 연설 구절들을 가져다 쓰곤 했다. 힐러리 역시 내 것을 가졌다 쓰고 있다. 나는 이 문제가 오하이오 노동자들이 신경 쓸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 나는 패트릭을 신뢰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오바마와 패트릭, 서로 벤치마킹

 

2006년 당시 패트릭이 말의 힘을 강조하자 청중들은 엄청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오바마야말로 말의 힘에 대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바마 선거본부측은 패트릭을 모델로 삼아 대선준비를 해왔다.

 

오바마측은 패트릭이 매사츄세츠주지사 선거에서 거둔 성공을 세밀히 연구하였으며, 대선에서 패트릭이 사용한 주제, 메시지, 특정 연설 구절 등을 빌어다 쓰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지에 따르면 오바마와 패트릭 둘 다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 피드백 해주고 있다고. 이는 두 사람의 선거를 이끈 데이빗 악셀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패트릭은 오마바가 쓰는 'Yes We Can(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이라는 반복어귀를 거의 써먹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연설 귀절 등을 공유하는 것에 패트릭이 이의를 다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와 패트릭 둘 다 이에 대해선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오바마와 힐러리, "대수롭지 않다"

 

힐러리 선거본부측은 "힐러리가 남의 연설귀절을 인용없이 가져다 쓴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힐러리측 기자회견에 참석한 ABC 제이크 태퍼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힐러리측 하워드 울프슨 공보국장과 공화당 짐 맥거번에게, 오바마처럼 남의 연설 귀절을 가져다 쓴 일이 없다고 공언할 수 있는가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둘 다 그렇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울프슨 국장은 설령 힐러리가 남의 연설 귀절을 '슬쩍 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라는 투로 답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내내 학위논문 표절, 허위학위, 허위학력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책의 표절시비도 곧잘 불거진 바 있다. 선거과정에서 정당들이 서로 공약을 베낀다든가 하는 일은 있어도 연설문구에 대해 표절시비를 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 등을 고쳐서 써도, 그 누구도 그것을 표절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 그것을 계승으로 보며, 이에 대한 국민들 호응도 높은 편이다.

덧붙이는 글 | 문성호 기자는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입니다.

2008.02.19 16:4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문성호 기자는 한국자치경찰연구소 소장입니다.
#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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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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