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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등산가는 ‘그곳에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했다. 홀로 등산을 하는 사람에게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면 ‘산이 있는데, 산과 함께 하는데 왜 외로우냐’고 대답한다. 산은 그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커다란 생명체다. 산은 어머니의 품속 같이 우리를 감싸주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산에서는 고생이 고생스럽지 않고 아픔도 보람과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살이의 축소판이 그곳에 있다. 그래서 산은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야만 하는 그냥 좋은 친구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70%가 산이라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곳에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사계절이 있어 시시각각 자연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산을 자주 오르다보면 적막한 산중에서 홀로 명상에 잠기는 날이 있다. 그런 때 문득 ‘산에 나무가 없다면, 나무만 있고 새나 바람이 없다면, 이름 모를 저 야생화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를 생각해본다. 나무나 야생화들의 모습이 다르고, 새나 바람의 소리가 같지 않듯 마음이 함께 하면 산에 있는 것들이 모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겨울의 설화까지 산에는 늘 꽃이 피고 진다. 바람과 새들이 이웃하며 아름다운 시와 감미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나뭇가지와 곤충, 야생화와 풀잎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며 배려하는 삶을 배우게 한다. 공해로 찌든 도회지와 일터에서 지친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쉼터도 만들어 준다.
몇 년 전부터 어느 산이건 휴일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손님이 자주 찾아와 활기가 넘치는 집안과 같이 사람들이 산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등산인구가 늘어나며 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산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면 결국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게 분명하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이니 잘 보호해야 하고, 자연은 깨끗한 상태로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아는 대로 실천하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자연의 중요성을 피부로 절실하게 느껴본 일이 없어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산림재해를 줄이기 위한 산림청의 광고에 ‘산림재해, 피할 수는 없어도 줄일 수는 있습니다. 숲은 키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불과 며칠 전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을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번 숭례문의 화재 사건에서 보듯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한번 병들면 회복하기 어렵다. 병으로 고생해본 사람들은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에 건강부터 챙긴다. 아름다운 국토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잘 가꾸면서 보존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도 고성 산불 등으로 여러 번 큰 병을 앓았다. 등산객이 무심코 버린 담뱃불 하나가 땅덩어리를 벌거숭이로 만들면서 피멍들게 하는 일도 많다. 왜 그뿐이겠는가? 등산을 하다보면 높은 산에까지 쓰레기가 널려있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생을 하며 산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 때문에 시름시름 잔병을 앓으면서 산이 죽어가고 있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부인이나 남편이다. 그런데 늘 곁에 있다보니 남편이나 부인의 고마움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낸다. 산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마 그래서 일거다.
나는 매월 두 번씩 고장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산길과 물길을 걸으며 내가 살고 있는 청주 주변의 산줄기와 물줄기, 자연과 숲들을 직접 답사하고 산행을 통하여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마음을 키우고 있다. 나머지 휴일에도 아내와 전국의 산이나 관광지를 찾을 만큼 여행을 좋아한다.
등산을 자주하면서 종종 나쁜 것도 보게 되고, 우리나라의 등산문화에 대해 느끼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 고치는데 힘이 많이 들거나 엄청나게 큰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관심을 두면 될 일들이다. 그래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취사도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국보 제1호 숭례문을 화재로 잃은 것이나 낙산사 동종을 녹인 고성산불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등산을 할 때 일회용품을 가져가지 않으면 그만큼 산에서 쓰레기가 줄어들게 되어 있다.
셋째,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것은 물론 산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워오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산에 있는 쓰레기는 산을 좋아해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버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볼썽사나운 낡은 리본을 회수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낡은 리본들이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아름다운 산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다.
다섯째,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낡은 이정표를 정비해야 한다.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낡은 이정표가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안내하여 고생시키는 일도 종종 있다.
여섯째, 이정표의 양면에 글씨를 새겨 넣어 눈에 잘 보이게 해야 한다. 양면을 사용하지 않고 한쪽에만 글씨나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 보는데 불편한 이정표가 많다.
일곱째, 정상에 여러 개 세워져 있거나, 오자가 많은 표석을 정비해야 한다. 산의 정상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며 지자체마다 표석을 세웠거나 오자가 많아 기분 나쁘게 만드는 표석을 자주 본다.
여덟째,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반가워해야 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산행 즐겁게 하세요.’라고 서로 반갑게 인사하면 산행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정상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들이 모두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가 되는 등산이라야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 제멋대로 생긴 나무, 이름도 모르는 작은 꽃, 새의 청아한 울음소리,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땀을 식혀주는 바람 등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산이 곧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올바른 등산문화 별것 아니다.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같이 산행 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 수거에 앞장서고 낡은 리본을 회수하는 클린마운틴 운동을 벌이면서 작은 실천으로 큰 보람을 얻으면 된다. 아름다움과 부끄러움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2008년도에는 몸과 마음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푸르른 우리 산에서 살맛나는 인생살이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3.04 11:4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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