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도 아직 '봄의 생기'가 돌아 나올까

[북한강 이야기 282] 경칩은 '사랑의 날'

등록 2008.03.06 14:54수정 2008.03.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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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산동백이 화들짝 놀라 헷갈리네. 봄맞아?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산동백이 화들짝 놀라 헷갈리네. 봄맞아? ⓒ 윤희경


어제(3월 5일)는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경칩(驚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봄기운이 시작되고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꿈틀꿈틀 기지개를 켜는 날입니다. <농가월령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경칩 봄맞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옛 모양과 다름없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萌動-일어나기, 피어나기)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 빛 새로워라.
- 정학유 <농가월령가 2월령>

요새 며칠간 날씨가 따사롭고 온화하여 본격적인 봄이 오는가 했더니 오늘(6일)은 아침부터 함박눈이 쏟아지다가 지금은 가루 눈이 오기 시작합니다. 개구리 우는소리가 들리나 싶어 귀를 기울여보나 헤살 궂은 봄 날씨에 개구리가 입을 열다 화들짝 놀라 한참 헷갈리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앞산 멧비둘기 소리가 ‘구구구’ 봄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흰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듣는 비둘기 소리는 유별납니다. 좀 더 가까이 듣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눈 구경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함박눈 속에 맞이하는 봄 기운은 정말 싱그럽고 풋풋하기 그지없습니다.

a  오늘같은 날은 도롱뇽 구경하기 참 좋은 날..작년 오늘 찍은 것인데, 오늘은 눈이 내리고..아직 더 기다려야 될 듯.

오늘같은 날은 도롱뇽 구경하기 참 좋은 날..작년 오늘 찍은 것인데, 오늘은 눈이 내리고..아직 더 기다려야 될 듯. ⓒ 윤희경


경칩 때는 도롱뇽 알이나 고로쇠 물을 먹으면 위장이나 신경통에 좋다는데 그 귀한 도롱뇽 알을 어찌 먹을까 싶어 작년 이맘때 찍어놓은 이미지를 꺼내 보고 또 봅니다.

고로쇠 물은 돈만 내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며칠 전 산정호수에 사는 친척 한 분이 한 통을 보내와 아침저녁으로 맛보기를 합니다. 달착지근한 게 그대로 ‘봄물 맛’입니다.


이맘때면 봄 미나리의 살찐 맛도 겨우내 찌든 입속을 상큼하게 닦아낸다 하니 오늘 저녁 식단에 한 번 맛봄이 어떨까 싶습니다.

a  고추모를 우수를 전후하여 씨를 넣었다가 어제 가식(옮겨 심기)을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 시작입니다.

고추모를 우수를 전후하여 씨를 넣었다가 어제 가식(옮겨 심기)을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 시작입니다. ⓒ 윤희경


우리 민속신앙에 경칩 때 흙일을 하면 동티(토신이 재앙을 내림)가 없고, 흙벽이나 담장을 쌓으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흙손을 탈까 싶어 어제는 하루 종일 고추와 봄 배추 가식을 했습니다. 어린 것들을 옮겨 심으며 봄볕을 온종일 실컷 마셨더니 오늘까지 봄 냄새가 배어나 저릿한 기운이 몸을 감싸 돕니다.


a  채소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손수 키워서 먹는 게 장땡입니다.

채소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손수 키워서 먹는 게 장땡입니다. ⓒ 윤희경


2월 14일 ‘발렌타데이’가 연인의 날임은 누구나 다 압니다. 우리나라에도 ‘연인의 날’이 있습니다. 벌레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연인의 날입니다. 경칩이 2월의 절기이고 보면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요즘을 사랑의 날로 정한 조상들이 퍽이나 낭만적이며 흥미로운 일입니다.

a  앞이 숫컷, 뒤가 암컷, 은행알이 암수가 있는 줄 이 글을 쓰며 처음 알았습니다. 숫알이 귀하고 암알은 통통합니다. 자연은 참 신비롭습니다.

앞이 숫컷, 뒤가 암컷, 은행알이 암수가 있는 줄 이 글을 쓰며 처음 알았습니다. 숫알이 귀하고 암알은 통통합니다. 자연은 참 신비롭습니다. ⓒ 윤희경


은행나무는 암수(雌雄)가 서로 마주 보아야 사랑의 싹이 트고 열매가 달립니다. 옛 문헌 <사시찬요>엔 재미난 사랑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은행 알을 구해 두었다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나, 정이 뜸해 새로운 사랑을 엮고 싶은 부부들은 은행 알을 경칩 때 나눠 먹습니다.

은행껍데기가 세모면 수컷, 두모면 암컷이라 합니다. 눈도 오고 하여 은행바구니를 풀어헤쳐 놓고 암수를 고르노라니 수컷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어인 일인지 맨 암컷 세상입니다.

지금, 때아닌 눈도 펑펑 내리고 할 일도 없으니 오늘 저녁엔 세모난 은행 알들이나 골라내 잉걸불에다 톡톡 튀겨내 볼까 합니다. 내 안에도 아직 찌릿한 새봄의 생기가 돌아 나올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찾아오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찾아오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경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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