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진짜사나이'가 되어 만나자

논산훈련소에 아들을 보내고 오던 날

등록 2008.03.10 09:35수정 2008.03.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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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아도 넌 잘 알겠지. 너와 헤어져 있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작은 슬픔이라는 것을. 아무쪼록 건강하고 씩씩하게 훈련 잘 받고 너 말대로 진짜 사나이가 되어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뜨겁게 포옹하자.

오늘 ‘입소대성당’에서 아빠가 남겨 놓은 편지 보고 깜짝 놀랐지? 네가 훈련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발길을 옮기는데 ‘입소대성당’이 보여 그곳에 들렀단다. 수녀님이 ‘입소 첫 주 일요일은 천주교 신병들이 이곳 성당으로 미사 보러 온다’며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기라고 했단다. 그래서 남긴 글이다.

아빠는 입영 전날 밤 우리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케이크와 스물한 개 초, 샴페인을 준비하고 생일 축하노래에 가사를 바꿔 입영 축하 노래를 불렀던 것도 좋았다.

‘입영 축하합니다. 입영 축하합니다. 대~로에 입~영을 축하합니다. 짝짝짝.’

우리 가족처럼 입영 전야를 보내는 것도 흔하지 않을 게다. 훈련소로 가는 날 아침, 고3이어서 일찍 학교에 가는 네 동생 예진에게 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아빠는 그 모습도 참 의젓해보였단다.


  스탠드에서 입소자들이 연병장으로 나가고 있다.
스탠드에서 입소자들이 연병장으로 나가고 있다.이경모

6일 오후 1시 30분. ‘입소자 집합’이라는 본부석의 방송이 들렸다. 입소자 가족들이 있는 연병장 스탠드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너는 아빠에게 휴대폰을 주었고 할머니 고모 아빠와 함께 주먹 쥔 손을 맞닿으며 ‘대로 파이팅’ 하고 외쳤다. 주위에 훌쩍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너는 연병장으로 뛰어 갔다. 아마도 그날 입소자 가족 중에 제일 씩씩했을 게다.

 입소자들이 훈련소로 가기 전에 가족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입소자들이 훈련소로 가기 전에 가족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이경모

그런데 입소식 때 ‘부모님께 경례!’라는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경례할 때와 훈련소로 들어  가기 전에 가족들 앞으로 손을 흔들며 지나갈 때, 할머니와 고모의 씩씩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리고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단다.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마터면 아빠도 그 모습을 보며 약속을 어길 뻔 했다. 갑자기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할 엄마가 생각나서였다. 아들은 약속을 지켰겠지?


아들. 엄마는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너의 입대를 축하해주었을 것이다. 네가 훈련소 가는 것을 꼭 보겠다고 했는데 엄마의 자리에 엄마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네가 성인이 다되어 국방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하는 너를 대견스러워 할 것이다. 너도 그렇겠지만 아빠는 이런 짧은 헤어짐은 더 많아도 견뎌 낼 수 있다.

논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고모가 눈이 많이 내리는 날 훈련소에 있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목소리 한 번만 들으면 살겠는데 그렇지 못해 많이 울었다’고 하는 말을 너도 들었지?

아들, 실감나지 않은 얘기였다. 우리는 영영 들을 수 없는 엄마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니.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며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냐. 이별의 아픔에 가슴 시린데, 올 겨울 찬바람은 더욱 차갑게 우리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짧은 이별 앞에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했잖아.

네 동생 예진이가 너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직 엄마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네가 유별나게 챙겨주고 예뻐해서 그럴 거다. 학교 갔다 와서 습관적으로 너의 방문을 열어 보는 것을 할머니가 보셨단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 일 게다. 네가 알다시피 예진에게 강한 의지가 있잖아. 간호사관 학교에 진학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군가 '진짜사나이'를 부르고 있는 입소자
군가 '진짜사나이'를 부르고 있는 입소자이경모

반듯하게 줄도 제대로 서지 못한 채, 반동자세도 서툴렀지만 가족과 헤어짐을 견뎌내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입영가족들 앞에서 힘차게 불렀던 ‘진짜 사나이’ 군가가 귓가에 들린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아들. 아들이 입소하는 날 논산 날씨는 무척 추웠다. 마음들이 추워서 더 그랬을 거야. 경칩이 지났는데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 엄마와 우리 가족이 보고 싶을 때는 하늘을 보렴. 그러나 자주는 아니다. 그리고 훈련이 힘들 때도 있겠지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오늘 네가 있는 자리도 삶이며 너의 인내와 체력을 더욱 강하게 담금질하고 국가와 국민 가족을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진짜사나이’가 되어서 만나자. 아들 사랑한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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