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지앙 제1만하늘과 산과 물과 마을이 만나 일구어내는 세상 밖 풍경
최성수
얼마를 정신없이 창 밖만 보고 있었을까? 차가 멈춘다. 누지앙 제1만(怒江第一灣)이다. 옥빛 강물이 부드럽게 굽이져 흐르는 아래로 거북이 같은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강물은 땅을 감싸 안고, 땅은 강물에 안겨 느긋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다. 활 등처럼 휘어진 물굽이의 색깔도 눈부시지만, 거기 안겨 있는 땅도 눈이 시리게 곱다.
만에 안겨 있는 땅 뒤 쪽은 숲이고, 강물 쪽은 마을이다. 마을에는 보리인 듯, 푸른 풀들이 싱그럽다. 보리밭 옆으로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은 마른 밭조차 아름다운 것은, 거기 모든 것들이 강물과 조화롭게 어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도 풀도,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집도 모두 한 호흡으로 맞춘 듯 그려져 있는 누지앙 제1만은 보아도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풍경이다.
나는 강물과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에 서서 홀린 것처럼 오래 서 있다. 마치 이곳이 목적지인 것처럼, 아니 목적의 개념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그렇게 풍경은 나를 끌어들이고 있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이 칸통춘(坎桶村)이다. 아마도 티베트 말의 음차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자꾸 마을 이름의 한자를 풀이해 본다. 감(坎)은 구덩이라는 뜻이니, 높은 산 아래 구덩이처럼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일까? 아니, 감(坎)이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 혹은 나무 베는 소리를 뜻하기도 하니, 감통(坎桶)은 악기처럼 생긴 마을을 뜻하는 말이 아닐까? 늘 강물 소리를 악기 소리같이 들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로는 악기라는 해석이 가장 적당할 듯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고, 내 귓전에 넉넉한 누지앙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마을을 세상 밖 무릉도원(世外桃源)이라고 부른다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설 무렵에는 저 마을에 벚꽃이 곱게 피어난다고 한다. 그런 봄 어느 날, 세상의 모든 잡사들 훌훌 털어버리고 저 마을로 들어가 몇 날 며칠 봄꿈을 꾸고 싶다. 그것이 한바탕 헛된 꿈이라도 말이다. 삶의 덧없음, 그 끝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잠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움의 끝은 그리움이 아닐까? 나는 아름다운 누지앙 제1만의 풍경 속에 덧없음을 느끼고, 덧없음 속에서 그리움에 빠져든다. 그리움에 묻혀 그저 이렇게 머물러 있는 것도 충분히 좋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누지앙 제1만은 풍경의 극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