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너무나 준비 안된 선수들이었다"

'대운하' 탐사보도 두 PD의 뒷이야기... 민언련, '추천방송'에 PD수첩·추적60분 선정

등록 2008.03.27 14:47수정 2008.03.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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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방송 시상식김병기


"(경부운하는) 대선공약이었지만 설익은 계획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데, 너무 구체적이지 않았다. 대운하연구회에는 각 분과별로 많게는 300명, 적게는 100명 정도가 참여하는 것으로 나와있던데, 계획 자체가 너무 모호했다." - 이재정 KBS PD

"독일 운하를 취재하기 전에 경부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물동량과 배의 속도 등을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책 1권이 전부였다. 그들이 참여했던 토론회를 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말이 바뀌었다." -  임경식 MBC PD

KBS와 MBC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추적60분>과 <PD수첩>에서 대운하 관련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두 PD의 말이다.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을 여럿 만나봤지만, '실체 파악'이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임경식 PD는 "그들은 너무나 준비가 안 된 선수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MBC-KBS 간판 시사프로그램 "국민들 바보되지 않는 데 디딤돌 놓았다"

 임경식 PD
임경식 PD김병기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가 선정한 '2월의 추천방송' 시상식에서다. 지난 26일 저녁 7시부터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열린 이날 시상식은 간담회도 곁들여졌다.

신태섭 민언련 대표는 이날 MBC <PD수첩> '독일 운하를 가다'(2월 12일 방영)와 KBS <추적60분> '물길탐사, 경부운하 540km를 가다'(2월 13일 방영)편을 '추천방송'으로 선정하면서 "대운하의 문제점을 용기 있게 파헤쳐 주셔서 감사하다"며 "국민들이 바보가 되지 않는 데 중요한 디딤돌을 놓았다"고 격려했다.


이날 간담회는 2시간여에 걸쳐 시종일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우선 임경식 PD는 "미리 얘기한 것도 아닌데, 하루 만에 연이어 두 프로그램이 방영됐다"면서 "1부 해외편은 우리가 했고, 2부 국내편은 KBS에서 한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재정 PD는 "경쟁사이면서 동지인 <PD수첩>팀이 해외편을 깊이 있게 제작하는 바람에 우린 국내 부분에만 집중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이어 '이명박 운하'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렇게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나라당은 네덜란드의 DHV사(운하컨설팅 회사)가 우리나라의 운하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한 것처럼 소개됐는데, 직접 만나보니 거의 연구된 게 없었다. 결국 사업계획도 없이, 갑문 몇 개 설치할 것인지도 정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대규모 공사를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까지 했다." - 임경식 PD

"찬성하는 측과 고무보트를 타고 한강과 낙동강을 다녔는데, 운하 계획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이런 대안도 있다'는 식으로 계획을 바꿨다. 좋게 말하면 '진보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런 것이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했다." - 이재정 PD

탐사보도에서 목격한 '이명박 운하'의 거짓말은?

 이재정 PD
이재정 PD김병기

두 PD는 프로그램에서 못다한 얘기도 많다고 했다.

"독일에서 작심하고 찍은 게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자전거는 바지선보다 빨랐다. 겨우 찍은 컷이긴 한데, 30km가 넘는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찬성론자들의 말과 대비시키는 데 미흡했다.

덜어낸 부분도 많았다. 사실 우린 이명박 대통령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려 했다.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가령 운하 찬성론자들은 운하로 인한 내륙개발의 모델로 독일의 뒤스브르크 내항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항은 운하 때문에 발전한 게 아니었다. 또 그곳에서도 운하의 비중을 낮추고 열차 운송의 비중을 높일 계획이었다. 마인도나우 운하 인근의 주민들을 만나봤는데, 이명박 정부가 말하고 있는 관광 효과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운하 인근의 공단 사람들도 만났는 데 운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뺐다. 몇 명만 만나보고 일반화시킨다고 비판할지도 몰라서." - 임 PD

"건설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놀라울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가령 운하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은 69%였다. 그런데 4년 만에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사람이 76%였다. 건설비가 16조원 들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30-40조 이상 들 것이라는 사람도 15%에 달했다. 그럼에도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60%가 주변 개발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물류혁명과 관광효과 등과는 달랐던 것이다. 이 여론조사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게 아쉬웠다." - 이 PD

그렇다면 이번 탐사보도를 하면서 목격한 '이명박 운하'의 거짓말은 무엇일까?

임 PD는 "처음에 물류 효과를 얘기하면서 배의 속도를 24시간~30시간을 제시했는데 그건 완전히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이 밖에도 경제성과 물류 효과 등에서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다.

임 PD에게 '찬성론자들의 주장 중에 그래도 타당성이 있거나,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남북이 통일되고 중국까지 운하가 이어진다면 경제성, 뭐 그런 것을 다 제외하고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 정도다"라고 말해 간담회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건설업계에서는 4월 9일 총선만 기다린다"

이 PD는 "찬성론자들이 마르코폴로계획을 얘기하면서 대기 오염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나름대로 신선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홍수가 나면 강바닥을 파고 둑을 높이는 일을 반복해왔는데 그런 방식이 제대로 된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또 운하 논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식수원의 문제와 강의 오염문제가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PD는 또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에서는 제외시켰지만, 업계 쪽에서는 4월 9일 총선이 끝나고 속도를 낼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면서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 의사결정 과정, 즉 정부는 사업에 대해 충분히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국민들은 성숙된 시민의식을 발휘해 이를 토론하는 분위기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달의 추천방송'에 선정된 MBC <PD 수첩> '독일 운하를 가다'편의 책임CP 는 조능희, 연출은 임경식, 김보슬, 이승준 PD가 맡았다. KBS <추적60분> '물길탐사, 경부운하 540km를 가다'편의 책임CP는 구수환, 연출은 이재정, 류종훈 PD이다.
#경부운하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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