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체포 전담조' 대신 '등록금 반값 카드' 내밀어라!

"손 꼭 잡고 뛰어!" 그 시절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

등록 2008.03.28 14:57수정 2008.03.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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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주노동당,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원 및 대학생들이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앙대 정문 앞에서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원 및 대학생들이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앙대 정문 앞에서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민주노동당,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원 및 대학생들이 지난 27일 오전 서울 중앙대 정문 앞에서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중모야, 솔비(가명) 손 꼭 잡고 뛰어!"

 

아마도 대학 새내기 시절이 끝나가는 겨울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같이 나갔던 한 선배가 제 옆에 있던 여자 동기 손을 꼭 잡아주라고 했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납니다.

 

사실 워낙 이런저런 일이 많은 시대를 사셨던 탓인지 부모님께서는 늘 이런 말을 하셨기에 그 선배 말이 있기 전까지 그 집회에 참가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대학교 들어가면 데모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큰일 나."

 

그랬기에 집결 장소에 도착해 여기저기 다른 대학교 학생들이 각 학교를 나타내는 깃발을 들고 참여하는 그 분위기가 영 편치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잘 하지 못했어도, 선생님 말에 반항해 본 적 없던 순진한 저였기에 이러다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각 대학교에서 집회에 참가하기로 한 학생들이 모두 모이고 거리를 걸으며 우리들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간이 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선배가 '솔비 손 꼭 잡고 떨어지지 마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제게 내린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제 대학교 새내기여서 사회 돌아가는 일에 대해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분이 대통령으로 있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그런 당부까지 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10년 전 참가했던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 시퍼런 옷들에 주눅 들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등록금 항의 집회에 참가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배가 손을 꼭 잡고 같이 다니라고 했던 그 여자 동기를 그 당시 꽤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괜히 설렜습니다.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나왔다는 사실을 한순간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만 것입니다. 마치 첫 데이트를 하게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선배 말을 충실히 따르고자 제 옆에 있던 여자 동기 손을 꽉 잡아 쥐었습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는 순간 제 앞에 시퍼런 옷들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다란 강물처럼 파란 옷을 입은 이들이 제가 나서는 길에 저 앞까지 쭉 늘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을 때이니, 그들이 전경들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또 일부는 저처럼 대학생이라는 사실조차 쉽게 느껴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퍼렇게 옷을 입은 이들이 그렇게 쭉 늘어서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저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는지, 제 손을 잡고 있던 여자 동기 손에도 살짝 힘이 들어갔습니다. 하긴 저도 은근히 겁이 났는데, 그 친구라고 그런 느낌이 없었겠습니까?

 

어쨌든 그 친구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힘차게 한 걸음을 앞으로 뻗었습니다. 거리에 나서 걸으면서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때때로는 뛰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뛰는 순간 옆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뛰어!"

 

나중에 군대 가서야 자주 들은 소리이지만, 그때는 그 낮고 강렬한 남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물론 전경들에게 하는 소리이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니 괜히 제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죄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뛸 때마다 '착, 착, 착' 하며 절도 있게 박자를 맞추어 가며 들리는 푸른 옷 사나이들의 발소리까지 들리자 갑작스레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푸른 옷을 입은 인간 장벽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저 전경들이 옆에서 그렇게 뛰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드는데, 만약 그들이 직접 제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만 해도 전율이 흐릅니다. 아무튼 제가 처음으로 참가했던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는 다행히 그렇게 전경들과 열심히 걷고 뛴 것만으로 끝났습니다.

 

등록금 낮춰 달라고 나선 학생들, 무시무시한 '체포 전담조' 만나야 한다니...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10년 전 제가 했던 그 집회처럼 단순히 걷고 뛰는 것만으로 오늘 열린다는 대학생들이 하는 등록금 인상 항의 집회가 끝날런지 모르겠습니다. 10년 전에도 없었던 '체포 전담조'라는 것을 경찰에서 운영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제발 좀 낮추어 달라고 집회하는 학생들에게 '체포 전담조 투입'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그야말로 답답해집니다. 정말 등록금 좀 낮추어 달라고 나선 학생들이 10년 전 저처럼 푸른 옷만 봐도 주눅이 들텐데, 거기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체포 전담조라는 이들까지 만나야 한다니 집회 시작부터 겁부터 주려 드는 것은 아닌지 괜한 우려가 생깁니다.

 

a  한나라당 총선 온라인 광고 캡쳐.

한나라당 총선 온라인 광고 캡쳐. ⓒ 한나라당

한나라당 총선 온라인 광고 캡쳐. ⓒ 한나라당

묘하게도 이런 기사를 보는 도중 인터넷 배너 광고 창에 한나라당이 총선을 대비해 하는 광고에는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아빠, 저 학교 자퇴하고 취직할래요..."

 

모 통신 회사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이 광고는 곰 세 마리를 등장하여 딸이 아버지에게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라고 합니다. 이어 한나라당은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멘트를 내보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등록금 항의 집회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에게 '체포 전담조'를 투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단 말입니까?

 

예전에 어르신들이 '땡전 뉴스'라는 말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뉴스 땡 하면 전두환 대통령 관련 뉴스가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아들에게 '인이 기사'라는 말을 들려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인터넷만 연결하면 이명박 대통령 관련 기사를 포털 사이트 주요 배치면에서 늘 볼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한 후 '220대 톨게이트', '라면 값 100원 인상 문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대통령이 하는 말들이 기사화 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기사의 요점은 낭비를 줄이고, 일 열심히 하고, 서민들이 곹통 받지 않게 물가 안정하라 뭐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체포 전담조'가 아닌 '등록금 반값' 카드가 내놓아야

 

a  등록금 시위

등록금 시위 ⓒ 참여연대

등록금 시위 ⓒ 참여연대

오늘도 역시 관련 기사가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면허 제도를 간편하게 하라'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뭐 다 좋습니다. 서민들이 실생활에서 실제로 느끼는 문제들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민들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 어찌하여 등록금 인상에 관해서는 '체포 전담조'라는 카드를 내놓으신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등록금 반값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제 귀가 잘못되었던 것인가요?

 

그런데 등록금 반값은커녕, 등록금이 많아 못 견디겠다는 학생들이 집회 한다고 하니 '체포 전담조'를 투입하겠다고 하시니, 이 어찌 된 일입니까? 라면, 그까짓 거 안 먹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대학교 안 다닐 수 없습니다. 라면은 아무리 비싼 라면도 1000원에서 2000원입니다.

 

등록금은 라면값의 대체 몇 배입니까? 몇백 원짜리 라면 하나에도 벌벌 떠는 서민들이 그렇게 마음이 쓰이신다면 몇백만 원을 넘어 이제 천만 원까지 간 등록금에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이들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등록금 인상 항의 집회에 이명박 정부가 내놓아야 할 카드는 '체포 전담조'가 아닌 '등록금 반값' 카드가 아닐런지요?

2008.03.28 14:57ⓒ 2008 OhmyNews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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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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