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살(Massacre in Korea)1950년 한국전쟁을 소재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그린 것으로 로봇과 같은 병사들이 벌거벗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려 하자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폭력의 잔혹성을 표현한 것으로 모티브가 된 사건이 황해도 '신천리 학살'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파블로 피카소
최근 '제주 4·3 항쟁' 60주년과 관련해 '제주 4·3사건 연구소' 주최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다가 판화와 그림을 보게 됐다. 하나는 미국의 '보스턴 대학살'을 그린 판화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3·1 대학살'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보스턴 대학살과 제주 3·1 대학살은 사건 자체도 놀랄 만큼 유사하다.
두 개의 대학살, 너무 닮았는데미국인들에게 보스톤 학살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영국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1770년 초, 미국에는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있었고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보스톤도 영국의 식민지였다. 식민지 주민들과 영국 주둔군 사이 긴장은 이미 고조돼 있던 때였다. 1770년 3월 5일 늦은 오후 보스톤 시민 한 무리가 보스톤 세관을 경비하고 있던 경비병들 주변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이 고용한 시간제 경비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눈덩이에 맞자 경비병들이 늘어났고, 시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경비병들은 군중을 향해 사격을 개시, 5명의 미국 주민들이 사망했다. 이른바 보스턴 대학살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독립을 향한 주민들의 열망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됐다.
그로부터 177년이 흐른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는 '제주 대학살'이 벌어진다. 보스턴 대학살과 차이가 있다면 희생자가 5명이 아닌 6명이라는 점.
이날 미군정 하에서 제주 인민위원회 주최로 3·1절 독립운동 기념식이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열렸다. 기념식이 끝나고 귀가하던 군중과 기마 경찰관 사이에 돌발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기마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의 발굽에 한 어린 아이가 부상을 입은 것. 경찰이 그냥 지나치려 하자 이를 본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먼저 돌봐야 하지 않느냐며 고함을 지르며 항의했다. 기세에 눌린 경찰은 가까운 경찰서로 도주했고 군중은 쫓아가면서 더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경찰서를 지키던 경찰들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미군정이 고용한 공무원들이었다.
보스턴과 제주, 비슷한 사건이나 다른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