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대학살 vs 제주대학살

뒤돌아 보는 '제주 3·1 대학살'과 '제주 4·3 항쟁' ①

등록 2008.04.16 08:52수정 2008.04.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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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대학살(Boston Massacre) 1770년 3월 5일 보스턴에서 발생한 사건을 묘사한 폴 리비어(Paul Revere)의 판화.
보스톤 대학살(Boston Massacre)1770년 3월 5일 보스턴에서 발생한 사건을 묘사한 폴 리비어(Paul Revere)의 판화.폴 리비어

한국 대학살(Massacre in Korea) 1950년 한국전쟁을 소재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그린 것으로 로봇과 같은 병사들이 벌거벗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려 하자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폭력의 잔혹성을 표현한 것으로 모티브가 된 사건이 황해도 '신천리 학살'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한국 대학살(Massacre in Korea)1950년 한국전쟁을 소재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그린 것으로 로봇과 같은 병사들이 벌거벗은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려 하자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폭력의 잔혹성을 표현한 것으로 모티브가 된 사건이 황해도 '신천리 학살'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파블로 피카소


최근 '제주 4·3 항쟁' 60주년과 관련해 '제주 4·3사건 연구소' 주최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다가 판화와 그림을 보게 됐다. 하나는 미국의 '보스턴 대학살'을 그린 판화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3·1 대학살'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보스턴 대학살과 제주 3·1 대학살은 사건 자체도 놀랄 만큼 유사하다.

두 개의 대학살, 너무 닮았는데

미국인들에게 보스톤 학살은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영국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1770년 초, 미국에는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있었고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보스톤도 영국의 식민지였다. 식민지 주민들과 영국 주둔군 사이 긴장은 이미 고조돼 있던 때였다. 1770년 3월 5일 늦은 오후 보스톤 시민 한 무리가 보스톤 세관을 경비하고 있던 경비병들 주변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이 고용한 시간제 경비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눈덩이에 맞자 경비병들이 늘어났고, 시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경비병들은 군중을 향해 사격을 개시, 5명의 미국 주민들이 사망했다. 이른바 보스턴 대학살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독립을 향한 주민들의 열망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됐다.


그로부터 177년이 흐른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는 '제주 대학살'이 벌어진다. 보스턴 대학살과 차이가 있다면 희생자가 5명이 아닌 6명이라는 점.

이날 미군정 하에서 제주 인민위원회 주최로 3·1절 독립운동 기념식이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열렸다. 기념식이 끝나고 귀가하던 군중과 기마 경찰관 사이에 돌발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기마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의 발굽에 한 어린 아이가 부상을 입은 것. 경찰이 그냥 지나치려 하자 이를 본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먼저 돌봐야 하지 않느냐며 고함을 지르며 항의했다. 기세에 눌린 경찰은 가까운 경찰서로 도주했고 군중은 쫓아가면서 더 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경찰서를 지키던 경찰들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미군정이 고용한 공무원들이었다.

보스턴과 제주, 비슷한 사건이나 다른 결말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인들이 약 120만 명이나 죽었지만 미국의 언론은 미군 사망자만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에서 올 3월 현재 4000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미 재향군인인 케네디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에선 흑인, 스페인계, 소수민족이 무수히 희생된다"고 회상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인들이 약 120만 명이나 죽었지만 미국의 언론은 미군 사망자만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에서 올 3월 현재 4000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미 재향군인인 케네디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에선 흑인, 스페인계, 소수민족이 무수히 희생된다"고 회상했다. justforeignpolicy.org

두 사건은 처리과정도 닮았다.

보스턴 대학살에서 상부의 명령 없이 총질을 한 경비병들은 재판에서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제주 3·1 대학살에서 군중에게 총을 쏜 경찰들은 미군정에 의해 재판도 없이 '정당방위'(Self-defense)로 유야무야 넘기려 했다. 이는 3월 10일 제주도 내 모든 관공서·학교·사업체 등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미군정은 수천 명을 체포해 처벌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당시 미군정이 '제주 대학살'을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무지와 제주도 주민들에 대한 고압적 권위주의 또는 백인 우월주의에시 기인하였다고 본다. 또 제주도 사람들의 불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 정신을 과소평가했다.

(제주에서는 조선조 말기 천주교 신도들이 권력과 유착하고 횡포를 일삼는데 대항해 이른바 '이재수 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이재수 등 3명이 주모자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3인의 의인을 추념해 '삼의사'비를 세웠다. 제주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3·1 독립운동은 물론 '해녀 항쟁'을 일으켜 외세에 항거했다. 고려 말에는 몽고군의 침략을 받고 항거하다 최후를 맞이한 삼별초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아직도 '몽고놈의 자식'이라는 말을 가장 큰 욕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보스턴과 제주의 그 후는 너무도 다르다. 보스턴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목숨을 잃은 5명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순교자(martyr)'로 불린다. 반면 제주에서 3월 1일에 일어난 사건은 아무도 '제주 3·1 대학살'이라 부르지 못했다. 그리고 희생된 6명에 대해서도 누구도 '순교자'라고 이름붙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역사는 항상 강자의 손에 의해서 강자의 기억만을 중심으로 쓰여져 왔고 약자의 기억은 망각되기를 강요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역사는 뒤집어 봐야 할 경우가 너무도 많다.

만약 당시 미군정이 조상의 역사인 '미국 혁명과 독립 투쟁사'를 육사나 교육기관에서 배웠던들, 아니 기억하고만 있었던들 '제주 3·1 대학살'과 1948년의 '제주 4·3 항쟁'이 없었을 것이다. 3만명의 희생자도 없었고 '한국전쟁'이란 내란도 없었을지 모른다.

제주 4·3 평화 공원은 생생한 교육 현장되어야

지금 이 순간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다르지 않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라크를 전쟁 대상지로 선택했다. 9·11 테러 후 미 정보당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알카에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담 후세인을 골라잡았다. 전쟁의 명분이 된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정보는 전쟁과정에서 잘못된 것으로 들통났다. 하지만 부시는 잽싸게 전쟁의 목적을 '이라크의 민주화'로 바꿔치기 했다.

이라크 전쟁은 그 어떤 '민주정부'도 총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재연일 뿐이다. 지난 4월 3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미국 정부가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여론이 81%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도영 박사
이도영 박사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역사를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는 경고에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라도 '역사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고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제 막 문을 연 '제주 4·3 평화 공원'은 우리의 가장 고귀한,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치는 교육의 생생한 현장이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도영 기자는 제주 출신으로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부설 김대중 도서관 사료수집 연구교수 (2005년)로 근무했다. 1950년 8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예비검속과 뒤이은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그는 1999년 말 미 국립문서보존소에서 비밀해제된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관련 비밀문서와 사진을 발굴해 공개했다. 지금도 미국에 머물며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도영 기자는 제주 출신으로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부설 김대중 도서관 사료수집 연구교수 (2005년)로 근무했다. 1950년 8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예비검속과 뒤이은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그는 1999년 말 미 국립문서보존소에서 비밀해제된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관련 비밀문서와 사진을 발굴해 공개했다. 지금도 미국에 머물며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제주 3·1 대학살 #보스톤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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