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학산여고에서 교육관련 타운미팅을 마친 뒤 여고생들에 둘러싸여 환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나왔다.
'자율화'. 좋은 말이다. 한때는 민주주의 만세라는 말조차도 남 몰래 써야했던 과거를 지닌 우리 사회에서 자율화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좋은 것으로 만든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새로 시작하는 정부에서는 자율화가 다른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일어날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교육과학기술부는 "지침이 폐지되더라도 일선 시·도교육청이 협의를 거쳐 자율 규제를 할 것이기 때문에 우열반 편성 등의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가능성을 예로 들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만 극단적인 가능성이 먼저 떠오른다.
영·수 이동수업, 이제 12개 반 한 줄로 세우려나우리 학교는 아침 8시 10분에 1교시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아침을 챙겨먹을 수 있게 해서 건강을 돌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0교시를 없애라는 지침을 피해 보충수업이 아닌 정규수업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보충수업이 있고 밤 9시 50분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수학과 영어 시간은 수준별로 이동하여 수업을 하고 있다. 세 반을 묶어서 네 개 반으로 만들어서 이동 수업을 한다. 그 가운데 한 반은 비정규직 강사를 채용하여 수업을 맡기고 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우열은 드러나지만 아예 반을 다르게 만들어 놓으니, 맨 마지막 단계의 학생들은 '돌반'이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
그나마 우열반 편성을 하지 못한다는 지침 때문에 두 과목만 이동수업을 하고 있지만 이젠 열두 개 반을 한 줄로 세워 반편성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자율화와 수월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우리 동네는 어차피 고교 평준화도 되어 있지 않은데 못할 이유가 없다.
올 것이 온 것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다.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는 힘이 좋다. 앞으로의 다섯 해가 무척이나 길고 험난할 것 같다.
셈이 흐린 수학 선생도 망설이게 만드는 학교 자율화 계획수학 선생이지만 셈이 흐리다는 말을 듣고 사는 나는 조금은 장삿속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학원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주위에서 학원이 낫다고 부추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냥 학교에 남아 있어도 월급이 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어쩌면 보충수업이 늘어나 더 많이 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학교와 학원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도 학교가 학원처럼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엔 학원과 다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어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하고 꿈에 대해 이야길 나누어 볼 수도 있었다. 수업시간엔 문제를 풀어주고 풀게 하는 수학선생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세상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