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학교를 떠나 학원 차려야 하는 걸까

교육과학기술부가 15일 밝힌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보며

등록 2008.04.16 09:04수정 2008.04.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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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학산여고에서 교육관련 타운미팅을 마친 뒤 여고생들에 둘러싸여 환송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학산여고에서 교육관련 타운미팅을 마친 뒤 여고생들에 둘러싸여 환송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나왔다.

'자율화'. 좋은 말이다. 한때는 민주주의 만세라는 말조차도 남 몰래 써야했던 과거를 지닌 우리 사회에서 자율화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좋은 것으로 만든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새로 시작하는 정부에서는 자율화가 다른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일어날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교육과학기술부는 "지침이 폐지되더라도 일선 시·도교육청이 협의를 거쳐 자율 규제를 할 것이기 때문에 우열반 편성 등의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가능성을 예로 들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만 극단적인 가능성이 먼저 떠오른다.

영·수 이동수업, 이제 12개 반 한 줄로 세우려나

우리 학교는 아침 8시 10분에 1교시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아침을 챙겨먹을 수 있게 해서 건강을 돌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0교시를 없애라는 지침을 피해 보충수업이 아닌 정규수업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보충수업이 있고 밤 9시 50분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수학과 영어 시간은 수준별로 이동하여 수업을 하고 있다. 세 반을 묶어서 네 개 반으로 만들어서 이동 수업을 한다. 그 가운데 한 반은 비정규직 강사를 채용하여 수업을 맡기고 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우열은 드러나지만 아예 반을 다르게 만들어 놓으니, 맨 마지막 단계의 학생들은 '돌반'이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


그나마 우열반 편성을 하지 못한다는 지침 때문에 두 과목만 이동수업을 하고 있지만 이젠 열두 개 반을 한 줄로 세워 반편성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자율화와 수월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우리 동네는 어차피 고교 평준화도 되어 있지 않은데 못할 이유가 없다.

올 것이 온 것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다.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는 힘이 좋다. 앞으로의 다섯 해가 무척이나 길고 험난할 것 같다.

셈이 흐린 수학 선생도 망설이게 만드는 학교 자율화 계획

수학 선생이지만 셈이 흐리다는 말을 듣고 사는 나는 조금은 장삿속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학원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주위에서 학원이 낫다고 부추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냥 학교에 남아 있어도 월급이 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어쩌면 보충수업이 늘어나 더 많이 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학교와 학원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도 학교가 학원처럼 되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엔 학원과 다른 어떤 것이 있다고 믿어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하고 꿈에 대해 이야길 나누어 볼 수도 있었다. 수업시간엔 문제를 풀어주고 풀게 하는 수학선생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세상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a  강남의 학원가 모습.

강남의 학원가 모습. ⓒ 박상규


지금보다 더 성적에 목을 메는 교실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달이면 달마다 치르는 모의고사를 위한 시간도 모자라는 아이들에게 세상 이야기는 한가한 선생이나 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수학 점수를 올리는 방법만을 이야기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학원이 더 좋은 자리일 것이다. 그곳엔 돈을 낼 수 있는 아이들만 올 것이고 그래도 공부를 하려는 의욕을 가진 아이들만 앉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마흔 명이 아닌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밥 못 먹는 아이들을 걱정한다거나 위태로운 아이의 가정 일을 걱정할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수학 단과반이 일주일에 이틀 하면 20만원이라던데 10명짜리 3강좌면 600만 원이니 그럭 저럭 벌이는 되려나? 차라리 한두 명 놓고 과외를 집에서 하는 것이 나을까? 건물 임대료도 안들고 가르치기도 편하니까. 그나저나 아이들은 어떻게 구한다? 낮에는 수준별 수업 강사로 '있는 집' 애들이 많은 학교엘 나가면 간단하지 않을까?

셈이 흐린 수학 선생도 망설이게 만드는 학교 자율화 계획이 사교육을 줄여줄 것이라고 바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셈을 하고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박영호 기자는 고등학교 수학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영호 기자는 고등학교 수학교사입니다.
#학교자율화계획 #0교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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