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하면 여의도 윤중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벚나무는 남산에도 아주 많답니다. 무려 2100그루나 된다고 하니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벚꽃 길을 걷는 재미는 바람이 불 때마다 눈송이처럼 뿌려지는 꽃잎을 온 몸으로 맞는 겁니다.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재미를 남산 길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꽃잎이 뿌려진 길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기분은 아주 삼삼합니다.
14일, 정기적으로 도보여행을 하는 '인도행' 회원들을 따라 한강진역에서 남산 한옥마을까지 12㎞ 정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거리를 잰 것이 아니라 이날 걸은 거리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대략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짐작할 따름이지요.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남짓.
'인도행'은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줄인 말입니다. 이름 때문에 이 모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인도여행'을 가는 모임이라고 착각을 한다고 하네요.
이번 도보여행은 출발지가 한강진역입니다. 전철역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만나기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설명하기 쉽고, 찾기 쉽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오전 10시 10분에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햇살은 따뜻했습니다.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도보여행 코스는? |
한강진역에서 하얏트 호텔 앞을 거쳐 남산 야외식물원을 둘러보고,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벚꽃이 만개한 남산 북측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한옥마을로 내려오는 길. 거리는 8.3Km. 소요시간은 2시간 반 정도 예상. |
한강진역 1번 출구로 나와 뒤로 돌아 조금 걸어가면 오르막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하얏트 호텔이 보이네요. 벚나무는 이곳에도 있습니다. 꽃이 지면서 잎이 조금씩 돋아난 것이 보입니다. 담장에는 담쟁이 넝쿨이 늘어져 있습니다. 한여름이면 푸른 잎이 담장을 가득 채우겠지요.
남산은 입구부터 여기저기 피어난 꽃 덕분에 봄이 무르익어 터질 지경에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가뿐하게 걸음을 옮기다보니 남산 야외식물원 안내도가 나타납니다. 안내도 밑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팬지가 가득합니다.
야외 식물원에 왔으니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 나중에 다시 와서 찬찬히 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충 둘러봅니다. 돌을 쌓아 만든 돌탑이 있고, 꽃보다 잎이 더 많이 돋아난 개나리, 활짝 펴서 지친 것처럼 보이는 목련이 있습니다. 할미꽃이 다소곳이 고개 숙인 채 피어 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할미꽃에 얽힌 전설이 떠오릅니다. 전설이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으로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일행 중의 한 분이 돌탑에 다가가 돌을 하나 얹어 놓고 돌아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소원을 빌었나,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연못에서 견학 온 유치원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너무 귀엽고 예뻐 저절로 아이들의 뺨으로 손이 갑니다. 아이들이 방실거리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이 웃으니 덩달아 웃게 됩니다. 연못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니 약수터가 있습니다. 미리 물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곳에서 목을 축이면 됩니다.
남산 야외 식물원에서 만난 아이들
약수터에서 벗어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습니다. 흙길이 참으로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걷다가 일부러 자꾸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걷는 사람들의 뒤통수나 배낭만 보게 되거든요.
오솔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합니다. 이따금 상큼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기도 하지요. 산길을 걸으니 삼림욕이 저절로 되겠죠? 산림욕은 도보여행의 덤인 셈입니다.
어, 걷다보니 완만한 오르막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보다는 그 옆의 흙길을 따라 걷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오르막길이라서 그런지 조금씩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무렵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우와,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손에 생수병을 하나씩 들고 무리지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온 직장인인가, 싶어 시간을 보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네요.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것도 보입니다.
남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아마도 벚꽃 축제 기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벚꽃 축제는 9일부터 16일까지 입니다. 이 기간이 남산 벚꽃의 절정기인가 봅니다.
목멱산 봉수대 터 표지석이 보입니다. 아, 남산의 본래 이름이 목멱산이었지.
남산 서울 타워에 가까이 가니 공중에 남자가 매달려 있는 게 보입니다. 물론 인공 조형물입니다. 진짜 사람이 매달려 있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느라 난리가 났겠지요.
서울타워 앞에는 공중에 매달린 남자가 있다
그 남자 뒤로 남산 팔각정이 보이는데, 팔각정의 정면을 현수막 하나가 가로 막았네요. 현수막 덕분에 '와이셔츠를 입고 생수병을 든' 남자들의 정체가 한순간에 드러납니다. 대기업에서 단체로 남산으로 나들이를 나온 것입니다. 이들은 군데군데 돗자리를 깔고 모여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도시락을 타려고 서 있는 줄 때문에 착각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하네요. 공짜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줄 알고 줄을 서려고 했다는군요.
남산에 온 김에 봉수대 구경은 해야겠죠? 봉수대에는 옛날 복장을 한 군졸들이 서 있습니다. 관광객이 대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 옆에 서서 폼을 잡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된다고 하네요.
팔각정에서 잠시 휴식을 한 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합니다. 국립극장 방향입니다. 길 양 옆으로 벚나무가 즐비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무더기로 날리는데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바구니에 꽃잎을 가득 담았다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한 움큼씩 뿌리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날린 꽃잎은 길 위로 흩어지고, 그 꽃잎을 사뿐히 밟으면서 걸음을 옮깁니다. 꽃잎에 취하고, 꽃바람에 취해 걷는 건지 둥둥 떠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길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환상의 극치를 이루지 않을까요?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고, 남산 고유 소나무림 탐방로 입구도 보입니다. 석호정(청소년 국궁 체험관)도 지나갑니다. 멀리서 보니 누군가 활을 쏘고 있네요.
벚꽃 나무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소원이...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눈길이 갑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벚꽃나무에 소원쓰기'를 하는 중입니다. 소원을 붙인 쪽지들을 보니 아이들이 쓴 내용보다는 어른들이 쓴 것들이 더 많습니다.
'올해 연애 좀 해보자. 괜찮은 놈 없니?'
'5억만 생기게 해주세요.'
'살 빠져서 선남선녀 커플되게 해주세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소원도 다양합니다.
자, 이제 도보여행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듭니다. 한옥마을 가는 길입니다. 이런, 잠시 들르려 했더니 한옥마을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냥 지나쳐 충무로 역까지 내처 걸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한강진역에서 시작된 도보여행은 끝을 맺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거야 정해진 이치니까요.
이날 도보여행 길을 안내한 닉네임 산까치님이 예정된 길보다 더 많이 걸었다는 설명을 해주십니다. 예정된 코스를 변경하여 국립극장으로 가는 남산 동쪽 순환도로를 거쳐 북부 순환도로를 거쳤기 때문이랍니다. 걸은 거리는 12㎞정도, 걸린 시간은 휴식시간 포함해서 3시간 남짓.
벚꽃이 지면 봄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요. 이 봄이 사라지기 전에 남산 길을 걸으면서 꽃비를 맞아보시죠. 삭막했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윤기가 돌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걸은 길] 한강진역 - 하얏트 호텔 - 야외식물원 - 수복교 산책로 - 남산 서울타워 - 국립극장 - 북부 산책로 - 한옥 마을 - 충무로역
2008.04.16 17:5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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