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상식' 뒤집은 <동아>의 '박미석 사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동아>에 대한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까닭

등록 2008.04.28 12:53수정 2008.04.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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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표절 의혹에 이어 영종도 땅 투기 및 거짓해명 의혹으로 사표를 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비서관
논문표절 의혹에 이어 영종도 땅 투기 및 거짓해명 의혹으로 사표를 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비서관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4월 28일, 오늘 박미석 대통령 사회정책 수석 비서관의 사의 표명을 다룬 <동아일보> 사설을 읽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다.

<동아일보> 사설 내용이 혼란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의 오늘 사설 '박미석 수석, 내정에서 사의까지 77일'은 논리정연하고 매섭다. 그래서다. <동아일보> 사설을 읽는 것이 더 혼란스러운 이유는.

<동아>는 오늘 사설에서 박미석 수석의 내정에서 사의까지 77일이 처음부터 잘못된 인선이며, 인사였음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의 논문 표절 논란은 물론 그의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 논란까지 일었지만, 이를 그대로 넘긴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미석 수석의 땅투기 의혹과 농지법 위반, 자경확인서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더욱 신랄했다. 그가 제출한 자경확인서는 법적 효력도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먼 거리에 있는 영종도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부터 상식 밖"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지난 주말까지도 이같은 '상식밖의 주장'을 끝까지 믿고자 했다.

'조작 의혹 해명' 보도할 때는 언제고

<동아일보>는 26일 4면에 '박미석 수석 자경확인서 조작 의혹'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가 하루 전날 박 수석이 제출한 자경사실 확인서가 조작됐다고 보도한 뒤였다. 하지만  하루 늦은 <동아일보>의 이 '조작 의혹' 기사는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되레 조작의혹을 부인한 박미석 수석의 해명을 뒷받침해주는 기사였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박 수석 비서관 측이 자경사실 확인서를 재산 공개 직전 어떤 식으로든 받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경사실 확인서를 써준 운복동 통장 김모씨가 "(박수석 남편과 함께 영종도 땅을 매입한) 추씨 등이 실제로 벼농사를 지었음을 별도로 확인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기사를 썼다. 그런 다음에 "추씨 등이 실제로 농사를 지었는지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그런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서울에 사는 땅주인들'이 함께 일을 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또 다른 주민의 말을 인용 보도해 마치 이들 '땅주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것처럼 보도했다. 그 기사 내용을 보자.

운복동 주민 A씨는 "모심기와 벼베기를 하는 농번기에는 서울에 사는 땅 주인들과 함께 일을 한 뒤 식사하는 모습을 봤다. 자주는 아니지만 농사가 바쁠 때에는 직접 인천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땅 주인들이 농업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봄철에 못자리를 낼 때와 가을에 추수를 할 때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그런 다음 "인천 땅 관련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없다"는 박미석 수석의 반박과 해명을 인용 보도했다.

한 마디로 이 기사는 자경확인서 '조작 의혹' 기사가 아니라 '조작 의혹 해명' 기사였다.

문제는 이런 '해명기사' 치고는 너무 엉성하다는 데 있었다. <한겨레> 등에서는 이미 하루 전에 "모내기에서 벼베기 까지 모든 농사일을 다 내가 알아서 하고 있다"는 대리 경작 주민 양모씨의 '증언'을 보도한 바 있다.  "농지주인들은 1년에 5~6차례 내려와 한 번 둘러보고 갈 뿐"이라는 증언도 보도했다. 그같은 증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혔다.

 25일 오후 한 방송사 취재팀이 인천시 운북동에 위치한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 부부의 논을 둘러보고 있다.
25일 오후 한 방송사 취재팀이 인천시 운북동에 위치한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 부부의 논을 둘러보고 있다.손병관


확인 취재 안 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건 누구?

<동아일보>는 그럼에도 하루 늦게 '해명기사'를 실으면서도 이들 상반된 증언에 대한 검증을 외면했다. 적어도 <한겨레>가 제기한 자경사실 확인서 조작 의혹을 부인하고, 박 수석의 해명에 신뢰를 두고 보도하자면 적어도 이들 반대 증언자들의 증언이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한겨레>에 자경사실 확인서가 사실과 달리 조작된 것임을 증언한 현지 주민 '양모씨'에 대한 확인 취재도 하지 않았다(적어도 기사에서는 확인 취재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

게다가 '농사를 짓는다'는 개념 자체가 헷갈린다. <동아일보> 기사대로라면 "농사가 바쁠 때 직접 내려"와서 "(대리경작을 부탁한 마을주민들과) 함께 일 한 뒤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농사를 직접 짓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다. 오늘 명쾌한 <동아일보>의 사설이 헷갈리는 까닭은. 사설은 "박 수석의 집이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영종도까지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며 자동차를 타고 가 1353㎡(409평)의 땅에 농사를 지었다는 것부터 상식밖"이라고 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기사는 왜 그리 '상식밖의 주장'을 끝내 믿으려 그처럼 애를 썼을까?

<동아일보> 사설은 또 이렇게 썼다.

"청와대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전 검증은 고사하고 대신 농사를 지어준 주민이 '논주인은 농사일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청와대는 현장 확인조차 하지 않고 허위 사문서를 그대로 발표했다."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어떻게 되는가. 다른 신문들이 구체적인 증언자의 신분까지 공개하고 "박수석 남편 등 땅 주인들이 농사를 지은 적이 없"으며 "자경사실확인서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증언했음에도, 어떻게 현지에 가 확인까지 했는데도 '허위 사문서 주장'과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일까?

현지에 내려간 기자들이 취재를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데스크의 '시각'이 기자들의 '취재'와 '기사'를 왜곡했던 것일까? 그런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다.

한 때는 미디어 전문 매체에서 그런 속사정까지 알아보고 시시비비를 가려준 적도 있지만, 이제 그런 '수고'를 할 미디어 전문 매체나 기자는 없어 보인다. 왜냐면, 굳이 그런 속사정까지 굳이 알아볼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제는 서로가 많이들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많이 포기하고 있지만... 이건 너무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하루 전날 신문까지는 '농사를 지은 것 같다'고 보도하다가 그 다음 날 사설에서는 '농사를 지었다는 것부터 상식밖'이라고 하니, 독자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동아일보> 사설은 "박수석 내정부터 사의 표명 77일을 돌이켜 보면 이 정부의 인사 전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됐다"며 이 대통령과 청와대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면서 끝을 맺었다.

하지만 <동아일보> 사설의 이같은 지적은 바로 <동아일보>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어야 할 것 같다.

"박수석 땅투기 의혹관련 보도부터 '사설'이 나오기 까지 4일 동안의 동아일보 지면을 돌이켜 보면 <동아일보> 지면 전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동아일보> 기자들과 편집진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깊이 성찰하면서 다시는 이런 보도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기 바란다."
#동아일보 #박미석 #위기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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