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이 유혹할 때

[서평] 김준희의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등록 2008.05.16 10:56수정 2008.05.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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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표지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표지솔지미디어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표지 ⓒ 솔지미디어

정신이 번쩍 드는 시원한 것을 오물거리며 책을 집었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여우원숭이? 내겐 이슬람 문화나 토성의 미생물과 같이 생소한 게 사실이다.


예쁜 보라색 표지에 기품 있게 늘어 선 바오밥나무. 우측 상단의 날렵한 원숭이는 사는 게 신나 보이고 그 아래 카메라를 든 청년은 짐이 많아 좀 힘들어 보인다. 아기자기한 소녀의 다이어리 5월 3일 쯤에 있을 법한 그림이다. 그야말로 앙증맞다.

 

아프리카의 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받침이 없는 글자들의 조합은 쉬운 듯 느껴지지만 역시 서먹하다.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 한번 두번 발음을 하면 할수록 조금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그 나라는 대체 어떤 곳일까.


호감 가는 책표지 덕에 단숨에 훑어본 책의 사이사이에선 지구 반대쪽 푸른빛 바다와 나무 그리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때로 사진은 글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자신이 경험한 하루하루와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색다른 맛을 표현한 뒤에 덧붙인 사진에는 생생한 그곳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때로 낯선 곳이 필요하다. 그 낯선 곳이 내게는 더러 바다이기도 하고 더러는 풀냄새로 채워진 시골 길이기도 하다. 작가의 인생에서 한때 절실했던 그 낯선 곳. 난 오늘 그 절실함을 현실에서 끄집어내 꿈이라는 싱그러운 이름으로 세팅을 마친 그 곳에 함께 선 것만 같다. 


이 책은 오물거리던 얼음이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 각 기관을 통과할 때와 같은 알싸한 기대를 가지게 했다.


작가는 한 달 동안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며 가슴에 담아 온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 보여주며 그렇게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여우원숭이가 살고 있고 지금은 멸종된 코끼리 새가 살았었다는 정보뿐이 아니다.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아이들의 미소가 얼마나 순수한지 ‘살라마’를 외치며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그곳 사람들의 순박함을 따뜻한 가슴으로 공유하기 원한다. 


낯선 곳에 머물며 그 사람들의 삶에 접근해 같이 즐길 수 있는 것만큼 여행의 참 묘미가 또 있을까. 물론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막연하다. 여고시절부터 룩셈부르크에 가는 것을 꿈꾸지만 난 아직 여권도 만들지 않았다. 나에게 버려진 꿈은 가끔씩 이렇게 튀어나와 꿈틀거리다 마는 것을 반복한다.

 

작가는 대부분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채워지는 보통 사람의 보통의 일상, 그 중간에서 한번쯤 가방을 싸보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다.


검고 흰 낮은 구름에 뒤덮인 초원뿐인 한가로운 마을 풍경은 마치 하늘 아래의 첫 번째 땅인 것만 같다. 이상하게 설렌다. 사진 한 장에 말이다.


아직 그다지 많이 다치지 않은 자연. 아프리카의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인 만큼 자연그대로의 동식물들이 살아있는 그곳은 ‘자연주의자의 천국’이라고 한다. 그로인해 돈 있는 사람들의 훌륭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의 주요도시에는 공항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여정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정원을 훌쩍 넘긴 15인승 버스에서 포장도 안 된 길을 달리는 20시간을 버텨내기란 여간 지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말하고 있다.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비행기를 타라.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버스를 타야한다.”

 

덜컹거리는 비좁은 버스를 타고 스무 시간 가까이 달려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여행의 진정한 묘미다.


돈 있는 사람의 돈으로 치장한 여행으로 보이지 않아 내게는 오히려 친근하다.  여행은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단 하룻밤의 낭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빵으로 때우는 식사와 벌레가 함께 서식하는 호텔 그리고 눈뜬 새벽 한참을 걸어 가야하는 화장실.


작가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게 배고픔과 고단함을 잘 참아냈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게으른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여행은 저래야 하는 건데. 난 생각해 본다. 우리가 떠났던 여행은 때로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다시 찾고 싶은 그곳의 한 달을 아쉬워하는 작가의 마음은 글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 그때 거리 앞 작은 마을에 며칠이고 머물며 긴 시간을 보내리라. 나무의 그림자에 따라 하루를 돌다보면 바오밥나무도 나도 서서히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을까? “다음엔 오후 4시에 올 거야. 그럼 너는 3시부터 기뻐하겠지? ” 입을 열어 약속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어린왕자도 여우도 아무것도 아니다.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고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운 줄 알지만 그걸 잊기 위해 또 술잔을 드는 어른일 뿐.


전문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가의 삶을 살아온 사람도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술을 마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던 사람의 글이기에 얼마쯤 더 매혹 당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그와 같이 거짓말을 하고 그걸 잊기 위해 또 술잔을 드는 어른 일 뿐이기에.

예쁜 보라색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무심코 달력을 보았다. 오늘이 며칠이지?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지금 낯선 곳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내용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됐었습니다. 
*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저자 김준희 / 솔지미디어 / 2008년 4월 10일 / 10000원

2008.05.16 10:5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내용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됐었습니다. 
*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저자 김준희 / 솔지미디어 / 2008년 4월 10일 / 10000원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가 꿈을 키우는 섬, 마다가스카르

김준희 지음,
솔지미디어, 2008


#바오밥나무 #마다가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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