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전. 중국 심양에 있는 황궁 대정전. 청나라는 이곳에서 각종 기념행사와 출정식을 가졌다.
이정근
"세자는 내일 당장 황궁으로 들라."황제의 명을 남기고 용골대가 돌아갔다. 때 아닌 호출령을 받은 세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소현은 황궁으로 향했다. 세자관에서 황궁에 이르는 길목은 예전의 황궁거리가 아니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군사와 수레가 줄을 이었다. 서쪽 전선 어디에선가 대 결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황궁에 들어갔다. 궁궐 역시 평시와 달랐다. 수많은 군사가 대정전에 도열해 있고 장수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만월개를 만났다. 만월개는 후금시절부터 사신으로 조선을 드나들던 청나라 관리다.
"어젯밤에 황제의 교지가 계시어 놀랍고 두려워서 들어 왔습니다.""황제께서 오늘은 여러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리시느라 세자를 만날 겨를이 없습니다. 돌아가서 기다리시오."불러놓고서 돌아가란다. 완전 뭐 훈련시키는 격이다. 세자가 돌아 나오는데 용골대가 길을 막았다.
"너희나라 군대 초운(선발대)이 들어오면 묶어 보내려는 군대는 벌서 떠났고 2운(제2대)이 들어오면 함께 보내려는 군대도 지금 떠났다. 이제 너희 나라 군대는 필요 없다. 들어온다 해도 쫓아 보낼 것이다."
화가 난 청나라 장수 “조선군은 필요 없다, 돌아가라"길길이 뛰던 용골대가 말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자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황급히 상장군에게 사람을 보냈다. 조선군을 이끌고 온 이시영은 혼하 강변에 진을 치고 입송하지 않고 있었다. 부하 5~6명을 거느린 용골대가 조선군 진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군은 돌아가라."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출동시기에 입송하지 못한 것은 강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듣기 싫다. 돌아가라.""국왕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입송하라 명하셨는데 실행하지 못한 것은 소장의 죄입니다. 우리는 양쪽 모두에 죄를 지었으니 돌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국왕께 아뢰어 분부를 받은 후에 물러갈 수 있습니다."몸을 낮추라는 세자의 긴급지시가 약효를 발휘했다. 조선군이 '조선 국왕의 명이 있어야 움직이겠다' 하니 어떻게 할 것인가. 도리 없이 용골대가 돌아갔다. 이튿날 황제의 교지가 내려왔다.
"군대를 더 보내라."세자관 으로부터 명을 전달 받은 조정은 평안병사 임경업에게 출동하라 명했다. 120여척의 병선을 이끌고 조선을 떠난 임경업은 전선으로 가는 도중 40여척의 병선을 빼돌려 본국으로 돌아가라 명했다. 대릉하를 거쳐 개주에 도착한 임경업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명나라와 청나라의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충심이 불러온 역풍조선군의 전투 의지를 의심한 홍타이지는 조선 병선 3척을 차출하여 명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에 척후선으로 투입했다. 등주 앞바다에 침투한 임경업군은 정보수집은커녕 명나라 함대에 접근하여 조선군의 출동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청군의 동태를 알려 주었다. 이는 홍타이지가 밀파한 감시선에 포착되었다.
대노한 홍타이지는 임경업군대를 조선에 돌아가라 명하고 임경업의 반청행위와 강화조약의 불이행을 엄중히 질책했다. 당황한 조정은 2천명의 포수와 기병을 파견하는 것으로 무마했다. 명나라를 염두에 둔 조선 장수의 충심은 오히려 국가를 곤혹스럽게 했으며 훗날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용골대가 세자관을 찾아왔다.
"조선 국왕이 장가를 들었다 하니 그것이 사실이오?""네. 그렇습니다."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산후통으로 승하한 인열왕후를 보낸 인조는 중전 자리를 비워놓고 있었다. 곤위는 오래도록 비워두어서는 안되니 국모를 맞이하라고 대신들이 주청했으나 "계비는 예로부터 해독은 있으나 유익함은 없었다"라는 이유로 물리쳤다. 이는 사양이 아니라 임금을 치마폭에 감싼 숙원 조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