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첫 인터뷰, 최고의 순간에 광화문을 담아내다

[6·10 촛불문화제 참여·취재기 ②] 최초, 최고, 최악의 3중고 치룬 결과는?

등록 2008.06.11 10:22수정 2008.06.11 10:22
0
원고료로 응원
(이전기사에 이어서)
 
a 6·10촛불문화제 '이명박 OUT' 현수막이 걸려있다. 심각한 내용을 두고 시민은 갈 길 간다.

6·10촛불문화제 '이명박 OUT' 현수막이 걸려있다. 심각한 내용을 두고 시민은 갈 길 간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이명박 OUT' 현수막이 걸려있다. 심각한 내용을 두고 시민은 갈 길 간다. ⓒ 민종원

인파에 휩싸여 구석에 몰린 뒤, 차라리 인터뷰를 시도하다

 

연단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어이없게 인파에 휩싸여 오도가도 못했던 기자는 당황하던 마음을 추스르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첫 인터뷰였다. '현장'이란 걸 온 몸으로 기록한 것도 처음이고 인터뷰다운 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이다. 가족인터뷰는 빼고.

 

처음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했던 중년 남성 옆을 지나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정말 인터뷰를 시도했다. 대상은 30대 남성.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부랴부랴 준비했다. 인터뷰는 기자 위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몇몇 옆에서 눈을 마주치다 시도한 것이었고, 인터뷰에 응해준 시민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도 느꼈다. 간단한 인적사항만 확인하고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a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 민종원

 

- 30대라고 했는데요, 30대가 본 이명박 정부는 어떤 정부입니까? 본인이 느끼는 대로 얘기해주셔도 되고요.

"권위주의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 마디로 소통부재인 거죠. 국민과 함께 하는 걸 모른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죠, 이명박 정부는 정당한 방법에 의해 출발한 합법적인 정부입니다. 지지자도 적지 않은 터에, 이명박 정부에게서 (굳이) 장점을 찾자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음... 글쎄요. 장점이라면... 사실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기 전에 이미 이명박 정부는 실적 내기에 너무 목매였던 것 같아요. 국민을 아래로 보는 행동들. 인사방식, 국정운영 등등 모든 것에서요. 대통령으로서 보여야 할 모습에 충실하지도 못한데 독재정권이랄까 그런 흉내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청계천 같은 것도 다 실적내기 결과 아니겠어요?"

 

기자는 여기서 굳이 이명박 정부의 단점을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장점은, 그게 있다손 치더라도, 철저히 단점에 가려져있고 결코 환영받지 못할 이상한 장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이룬 최대 실적(!) 중 한 가지인 청계천에 대한 언급은 기자에겐 내심 새로웠다. '경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의 갈 길 바쁜 행보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실적에 매여) 일하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금 촛불문화제는 한 달을 훌쩍 넘기고도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리라 보세요? 촛불문화제 향후 과정을 전망해본다면?

"글쎄요. 전망이랄 것도 없이 날마다 변하는 상황에 늘 주목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늘 변하는 상황 때문에 오히려 거기에 더 집중을 하죠.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여러 시민의식과 행동들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지금으로선 거기에 집중하려고요."

 

그랬던가. 날마다 대한민국 시민의식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던가. 하긴, 촛불문화제는 갈수록 더 거세지면 거세지지 약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질서있고도 박력감있는 시위 문화는 간간이 벌어지는 '불상사'들을 미연에 막고 있었다. 대화와 타협의 미덕은 광화문 현장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사실, 날마다 변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현 상황이 그대로 물거품처럼 꺼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소박한 시민의 바람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로서 질문을 던진 나 역시 한 사람의 시민이었다. 그날 광화문은 시민으로 가득했다. 대한민국은 이날도 광화문에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일보, 암흑 속에 빠진 채 떡칠 당하다

 

시민들 취재에 바빠던 기자는,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밤 10시30분쯤 조선일보 앞을 지나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취재진들도 오는 모습을 보며 같이 걸음을 재촉했다. 조선일보 정문 앞에 가득 모인 사람들과 그들이 내뿜는 구호들은 모든 빛을 압도해버렸다.

 

a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문 앞에 모여 선 시민들.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문 앞에 모여 선 시민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문 앞에 모여 선 시민들. ⓒ 민종원
a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유리문을 가득 메운 비판 스티커들.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유리문을 가득 메운 비판 스티커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조선일보 유리문을 가득 메운 비판 스티커들. ⓒ 민종원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똥파리도 새다"

"조선일보 니가 신문이면 난 장동건이다"

"난 ㅎ○○본다"

 

'조선일보 폐간하라'는 한 남성의 선창에 시민들이 뜨겁게 동조하면서 조선일보 문 앞은 삽시간에 인파로 메워졌고 각종 인쇄물 스티커들이 정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날, 기자가 본 바로는, 조선일보가 계속 집중타를 맞았다. '조선일보 폐간하라'를 비롯해 '불꺼라'와 같은 구호들이 간간이 계속되었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던 저녁 때는, 거리 시민들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뭔가를 속삭이는 이들을 보기도 했다. 밤 10시 30분쯤에 시민 합창이 쩌렁쩌렁 울릴 때 조선일보는 이미 깊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은 이날 광화문 앞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막차를 타리라는 예감과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을 두 눈에 담다

 

다소 어색한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는 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근 두 달여 만에 나선 서울나들이에서 갑자기 거대한 사람 물결을 보았으니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찍고 또 찍었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수없이 찍히고(!)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명박 대통령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아니, 째려보며 각자 자기 방식으로 응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심심해졌다 싶은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이는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어떤 이는 조용히 연단 위 연사를 주목하며 재치있는 문구를 담은 종이를 흔들어댔다. 어떤 이는 적극 참여했고 또 어떤 이는 기자가 그랬듯이 담담히 현장을 기록하기에 바빴다. 한 쪽에선 즉석토론회가 열리기도 했고 또 다른 쪽에선 본 집회 전부터 간간이 거리시위가 펼쳐지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6·10촛불문화제는 기자가 인천 가는 막차를 타던 밤 11시 30분쯤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거리는 뜨거웠다.

 

또한, 거리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양쪽으로 놓인 촛불들을 통해 시민들은 대한민국과 정부를 향한 안타까운 심정과 간절한 바람을 끝없이 남기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광화문 인근은 결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기자 역시 집에서조차 거의 뜬 눈으로 '새 날'을 맞이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a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1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1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1 ⓒ 민종원
a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들2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들2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들2 ⓒ 민종원

'제2의 6월 항쟁'을 꿈꾸던 이들 바람은 어느 정도 채워진 듯했다. 다들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민 측 추산으로) 서울 60~70여 만명을 합하여 전국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였다고 하니 그 엄청난 수치만으로도 뭔가 되어도 되었다 싶었다. 그러나, 아직 시민은 왠지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해서, 밤새 떠든 시민들이 밥을 찾는 이유가 단지 배가 고파서만은 아닐 게다. 그랬다면 6월 10일 이후의 촛불문화제를 또 바라지는 않았을 게다.

 

a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이후 거리로 나선 시민들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이후 거리로 나선 시민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이후 거리로 나선 시민들 ⓒ 민종원
a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현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그리고 촛불들.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현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그리고 촛불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현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그리고 촛불들. ⓒ 민종원

단 하루에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들은 것 같은데도 아직 들어야 할 소리는 더 많다. 사실 기자는 6월 10일 단 하루 사이에 내 인생 최초의 정식 인터뷰를 하고 역시 내 인생 최고의 시민드라마를 보았다. 물론 내 인생 최악의 정부라는 말을 하는 게 썩 낯설지 않은 정부를 현장에서 다른 시민들을 통해서 재확인한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청와대는 쉴 새가 없고, 청와대의 무지함을 질타하고 또 그들의 무반응식 태도에 역정을 내는 시민들 마음 역시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솔직히 말해, 청와대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대한민국'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고 6월 11일 아침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이제 언제든 이명박 대통령을 깨울 준비를 하나보다.

 

a 6·10촛불문화제 전경버스에 달린 의미심장한 현수막. "곧 이명박 싣고 갈 버스입니다. 파손은 쫌... 민주경찰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6·10촛불문화제 전경버스에 달린 의미심장한 현수막. "곧 이명박 싣고 갈 버스입니다. 파손은 쫌... 민주경찰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 전경버스에 달린 의미심장한 현수막. "곧 이명박 싣고 갈 버스입니다. 파손은 쫌... 민주경찰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 민종원
2008.06.11 10:22ⓒ 2008 OhmyNews
#촛불문화제 #6월10일 #이명박정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