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 고구려 무덤 속에 있다 나온 기분"

[온고을 사람들 17] '고구려 여인 머리모양 재현전' 김모영씨

등록 2008.06.11 22:17수정 2008.06.1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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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5월에 전주에서 열렸던 '고구려 여인의 머리 전시회'

지난 5월에 전주에서 열렸던 '고구려 여인의 머리 전시회' ⓒ 김모영



a  이 전시회는 지난 5월 전주를 시작으로 청주, 제주 등 전국 순회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지난 5월 전주를 시작으로 청주, 제주 등 전국 순회전을 개최한다. ⓒ 김모영


"고구려 고분의 벽화를 토대로 해서 재현을 했어요. 가장 대표적인 고분이 안악3호분 벽화예요. 이유는 고구려 생활풍속을 볼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귀족부터 일반 서민들까지. 고구려 벽화 토대로 여기에 미용장(美容匠)인 저희의 상상력을 더하죠.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아닌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고증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요. 


예를 들어 우씨왕후는 형사취수혼(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고구려의 풍습)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에요. 그렇다면 그 권세도 강했을 것이고 성격도 매우 적극적이고 여걸다웠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무척 화려하고 대담한 형식의 머리모양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우씨왕후의 머리를 재현해보았어요."

고구려 머리모양 전시회에 앞서 고구려 여인들의 머리모양에 대해 간단히 묻자 김모영 원장은 고구려 역사와 인물, 사건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한다. 잠깐, 국사시간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 원래 학창시절 역사공부를 잘했느냐고 김 원장에게 묻자,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열공'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역사를 모르지 않고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전주에서 열린 단오제. 이날 행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고구려여인의 머리모양을 재현한 전시회였다. 고구려 여인의 머리모양 전시회는 단오제가 열리기 달포전, 이미 전주시민들에게 한번 선보인 적이 있었다. (5월 15일~19일/ 전주우진문화공간).

a  김모영원장이 미용장을 딴 것도 옛 여인들의 머리를 좀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김모영원장이 미용장을 딴 것도 옛 여인들의 머리를 좀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 안소민


'고구려 여인 머리모양 전시회'라는 제목의 전시회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주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이색적인 전시회는 전주를 시작으로 이달에는 청주, 제주, 부산 순으로 전국 순회전시에 들어갔다.

한국미용장중앙회에서 주최한 이번 전시회의 첫 순서가 전주가 되었던 까닭은 바로 이 전시회에 남다른 애정과 심혈을 기울인 김모영 원장(전주현대미용아카데미)이 바로 전주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난 9일, 현대미용 아카데미 사무실에서 김 원장을 만나보았다.


'고구려 여인 머리모양 전시회'.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자리는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 머리 모양을 재현한 것이었다.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를 통해 보았던 고구려벽화는 시험에 자주 등장했던 ‘검은 물방울 무늬’(?)가 있던 복식만 어렴풋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을뿐 딱히 '머리모양'이라고 부를만한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 더욱 관심이 쏠린 것인지도 모른다.

무스, 드라이기도 없는데 머리는 어떻게 올렸을까


그러나 솔직히 고구려여인의 머리모양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궁금했던 것은 '왜?'였다. 언제나 모든 인터뷰의 출발은 이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이번엔 더욱 그랬다.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 길이 가시밭길임이 너무나 뻔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모영 원장은 대답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예전부터 우리 옛 여인들의 머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시어머니께서 굉장히 머리가 길었는데 그 긴 머리를 쪽비녀 하나만을 사용해 간편하게 쪽짓는 것이었어요. 그걸 보며 내심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한마디로 신기했죠. 지금이야 무스, 젤도 바르고 드라이도 사용하고, 온갖 실핀을 사용해 올림머리를 만들지만 그런 것이 없던 옛날에는 어떡했을까 싶어요. 그런 것 없이도 우리 옛 여인들은 정말 지혜롭고 간편하게 머리를 꾸몄거든요. 그런점이 참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존경스럽기도 했죠."

그 후로 텔레비전 속 사극 드라마나 사극 영화만 나오면 여주인공들의 머리모습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보아도 우리 옛 여인들의 머리모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답답했다. 무엇보다 고대학문의 범위에 머리모양에 관해 전문적으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과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머리모양은 복식사의 한 부류에 속해있을 뿐 독자적인 학문체계가 없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왜 머리모양에 대한 체계적인 학문결과가 없는지 그게 불만이었죠.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역사와 전통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고 단출해요. 머리모양이 겨우 6가지로 분류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명칭마저도 연원이나 정의가 명확하지 않더군요. 예를 들어 '푼기명머리'(구레나룻처럼 머리를 남겨놓는 형태)는 이름이 왜 푼기명 머리인지 언제부터 어떻게 쓰인 것인지 정확하지 않은 거예요. 우리 머리의 뿌리 찾기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비록 그것이 아주 멀고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도서관·박물관·고서점을 샅샅이 뒤지다

역시 그 길은 만만치 않았다. 고구려 머리모양 재현반을 작년 12월 꾸렸다. 총 44명이 모였다. 김 원장은 모임에서 총무를 맡았다. 그 뒤로부터 우리 옛 머리 뿌리찾기 작업을 향한 길고 험난한 길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1주일에 두 번씩 스터디를 하기 시작. 모든 회원이 열심이었지만 김 원장의 의욕은 정말 남달랐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상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 뿐만 아니라 한번 서울에 갈 때마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 첫차를 타고 올라가서 막차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공교롭게도 때는 한겨울이어서 해도 짧았다.

a  4개월간의 발품과 노력끝에 만들어낸 고구려 고분벽화 자료집

4개월간의 발품과 노력끝에 만들어낸 고구려 고분벽화 자료집 ⓒ 안소민


스터디에 할애하는 시간은 한두 시간 정도였지만 남은 시간에는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했다. 서울 용산도서관, 국립중앙민속관, 역사박물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로에 있는 헌서점, 헌책방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중국 서적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화문서적'은 단골이 될 정도였다.

"한마디로 무덤속에서 산 기분이에요.(웃음) 하루종일 고분벽화를 본뒤 밖에 나오면 꼭 무덤에서 나온 기분이었죠. 4개월을 무덤 속에서 살았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참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었어요."

김 원장이 이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딪친 가장 큰 난관은 '한자'였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던 김 원장은 어지간한 한자는 쓰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소 한자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문서에서 맞닥뜨린 한자는 정말 '대략 난감'이었다.

그때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는데 그때처럼 어학의 절실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고한다. 더구나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에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그런데 삼국 중에서 왜 하필 고구려인가? 그리고 전문가가 본 고구려 여인의 머리모양은 어떨까?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른 시기의 벽화와 비교해볼 때 고구려 벽화의 수도 많이 남아있고 일반 서민들의 생활풍습을 가장 다양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고구려 여인의 머리모양의 특색이라면... 간소하고 소박하다고 할까요. 물론 귀족층은 화려했지만요. 아마도 잦은 북방침입과 전쟁에 늘 대비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도 있었겠죠. 화장법도 아주 간단했어요."

처음에는 약간의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해야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는 김모영씨.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잦은 전쟁으로 간소, 소박했던 고구려 여인의 머리

"저는 가체가 조선시대부터 생긴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문헌에 보니 이미 고구려 여성들이 가체를 하고 있었어요. 신분이 높고 권력이 셀수록 가체모양도 화려하고 컸죠. 그리고 머리모양의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요. 요즘 헤어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헤어스타일은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수수하고 단순할 정도예요. 아마 우리 조상들이 했던 머리모양을 응용하면 더욱 멋지고 획기적인 헤어스타일을 창조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a  자료집 내부

자료집 내부 ⓒ 김모영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옛사람들이 가체를 만들때 머리를 감는 뼈대의 소재가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여러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만들긴 했지만 당시 실제로 고구려 여인들이 머리에 이고(?)다니던 가체의 소재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 머리모양을 단단히 잡아줌과 동시에 목에 그다지 많은 무리를 주지 않는 소재여야한다. 김 원장이 요즘 머리를 싸매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요즘 머리모양의 유행이라든지 미용문화가 대부분 일본이나 서구에서 수입해오는 것이 많잖아요. 그런걸 볼 때마다 참 안타까워요. 과거, 우리가 일본에게 가르쳐준 문화를 이제는 역수입하고 있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미용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고유의 머리모양을 어떻게 하면 요즘 신세대 젊은 문화와 접목시켜 발전시킬 것인가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예요."

덧붙이는 글 | 선샤인뉴스에도 게재합니다(http://www.sun4in.com)


덧붙이는 글 선샤인뉴스에도 게재합니다(http://www.sun4in.com)
#고구려여인의 머리 #김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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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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