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 결과 "아항, 조선일보 왜 나쁜가 이제야 알겠다"

등록 2008.07.01 21:53수정 2008.07.0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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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월 28일자 조선일보. 국민이 경찰을 '인민재판'했다는 1면 톱기사이다.

6월 28일자 조선일보. 국민이 경찰을 '인민재판'했다는 1면 톱기사이다. ⓒ 강기희


6월 28일(토) 오후 강원도 강릉의 한 식당에서 곰탕을 주문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풀리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생애 마지막으로 먹게 될 '곰탕'이기도 했다. 곰탕이 나오길 기다리며 손님용으로 비치한 신문을 가지고 왔다.

10년 만에 본 <조선일보> "역시 조선일보야~"

식당에서 준비한 신문은 이른 바 대표적 보수 신문인 '조중동'과 <강원일보>. 보수층이 두터운 강릉 지역의 정서를 감안한다면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왜 하필이면 많은 이들이 문제 있다고 하는 조중동일까'하는 의구심은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 사람들 영업을 잘하잖아요."

그게 이유였다. 기사가 좋아서 보는 게 아니라 영업을 잘해서 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세 개의 신문 중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선일보>를 펼쳤다. 신문을 펼치며 생각해 보니 <조선일보>를 본 것이 10년도 훨씬 넘은 듯 싶었다.

어쩌다가도 만날 일이 없었던 <조선일보>는 1면의 머릿기사부터 섬뜩했다. 기사 제목은 <'인민재판' 당한 경찰관>이었다. 1면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있는 이 기사는 전날 27일 새벽 광화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사화했다.

기사의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코리아나 호텔에서 시위대가 호텔 기물을 파손하고 있으니 남대문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출동을 요청했고, 강력계 형사 4명이 현장으로 출동해 보니 50대 남성(실제론 40대)이 호텔을 '공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저녁 9시였고 그 남성은 이후 <동아일보>까지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 남성을 미행한 지 4시간이 흐른 새벽 1시가 넘어 남성을 검거하려고 하는데, 시위대가 경찰을 붙잡더니 "왜 시민을 납치하느냐"며 '인민재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a 무법천지? "잡아 죽여"라고 쓴 조선일보 6월 28일자.

무법천지? "잡아 죽여"라고 쓴 조선일보 6월 28일자. ⓒ 강기희


기사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인민재판을 한 듯 보이지는 않지만 <조선일보> 기자는 "오 경위는 왜 기세등등한 시위대의 한 복판에서 '인민재판장'의 죄인처럼 수모를 당했을까'라며 기사를 써내려갔다.


국민을 '빨갱이'로 몰고 가는 조선일보 "그럼 조선일보는 퍼랭이?"

작은 기사쯤으로 처리되어도 좋을 법한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려 놓았다.

기사를 읽은 나는 무릎을 치며 "흠, 역시 조선일보야"라고 했다. 시위대에게 빨간색을 덧씌우기 위해 '인민재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조선일보>다웠다.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이라면 촛불 든 국민을 향해 '이것들 전부 빨갱이 아냐?"라고 판단할 수 있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으며 3류 정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이쯤되면 <조선일보>의 기사는 성공한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들은 <조선일보>에서 적시한 내용 그대로를 믿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도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는 연령대가 있음을 감안하면 그 피해는 더 크다. 기사를 비교하면서 정론인지 왜곡보도인를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그런 이들에겐 27일 밤 광화문에 있었던 촛불들이 다 '빨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그 기사를 1면 톱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자가 끄집어낸 '인민재판'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었던지 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설'에서도 한 번 더 다루었다.

<조선일보>는 <경찰 간부, 시위대에게 붙잡혀 '인민재판' 당하다>라는 사설을 통해 '공무 수행 중이던 경찰 간부가 폭력 시위대에게 붙들려 1시간 넘게 '인민재판'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질서가 있는 나라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라며 집회 참가자들을 붉은 완장 찬 '빨갱이'로 확인 사살을 했다.

a 주변 상가까지 걱정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로 광화문 일대의 상가들 매출이 격감했다고 보도했다. 끄집어 낼 건 다 끄집어 내는 조선일보 정신!

주변 상가까지 걱정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로 광화문 일대의 상가들 매출이 격감했다고 보도했다. 끄집어 낼 건 다 끄집어 내는 조선일보 정신! ⓒ 강기희


국민편에 선 방송에게 시비 거는 조선일보 "너나 잘해~"

28일 자 <조선일보>는 '인민재판'에 관한 기사만 실은 게 아니라 무려 8면에 걸쳐 <무법천지 광화문> 특집을 보도했다. 이날 자의 <조선일보>만 보면 '빨갱이들이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극적인 용어들도 많이 등장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KBS>와 <MBC>의 방송 보도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시위대의 폭력은 덮어주고 경찰의 과잉진압 모습만 집중적으로 보도한다'며 공정보도를 촉구했다. 신문은 한발 더 나가 방송보도와 일부 신문(한겨레, 경향신문)들이 '반정부 시위를 선동한다'며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조선일보>가 촛불 든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 듯 싶은데, 이들은 국민건강권을 되찾자는 촛불을 향해 '폭력시위대'나 '반미세력' 혹은 '빨갱이'로 매도하고 있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식탁에 올려진 곰탕을 먹다 말고 욱, 하며 토할 뻔했다. 곰탕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기사들이 내 속을 뒤틀게 했던 것이다.

a 국민의 편에 서는 것도 시비거리. 방송사들이 국민의 편에 서서 방송을 하는데도 시비를 거는 조선일보.

국민의 편에 서는 것도 시비거리. 방송사들이 국민의 편에 서서 방송을 하는데도 시비를 거는 조선일보. ⓒ 강기희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일보 "말 바꾸기의 선수들이 만났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이 있다며 노무현 정부를 공격한 전력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입을 싹 씻었다. 입만 씻고 가만히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산 쇠고기가 무슨 문제냐며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지 노릇을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이틀 동안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헤드라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입에 옮기기도 했다. 즉, <조선일보>가 양산한 왜곡기사가 여당 원대대표의 입을 통해 기정사실화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선택적 취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촛불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보통의 국민과는 극점을 달리고 있다.

새벽 시간, 경찰이 시민을 불법 연행하는 장면은 그들에게 왜 보이지 않으며, 횡단보도를 가로 막고 있는 경찰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말하는 시민을 향해 "저거 연행해!"하는 경찰 간부의 말은 왜 들리지 않는지 의문이다. 또한 다른 것은 그렇게 잘 알면서 촛불 소녀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젊은이를 강제로 연행하는 것은 왜 몰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일보>를 2주 보면 불안 증세를 보이고, 한 달을 보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3개월 보면 치료약도 없는 바보가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실감나는지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돈 1500원을 투자해 <조선일보>를 3일치나 보았더니 벌써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이 흐려지는 것 같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정신이 더 이상 패닉 상태에 빠지기 전에 어서 이 신문들을 불쏘시개 삼아 군불이나 지펴야 겠다.  

a 조중동 구독거부 선언. 시민들이 '나는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우롱하는 조중동을 평생 구독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구독거부 선언을 했다.

조중동 구독거부 선언. 시민들이 '나는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우롱하는 조중동을 평생 구독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구독거부 선언을 했다. ⓒ 강기희

#조선일보 #찌라시 #구독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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