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동화 선생
이정환
그 맛은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그래서 '돈을 쓰거나 벌거나 모으는 재미'를 제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만화가 김동화(58·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선생은 "남의 길과 자꾸 비교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머털도사' 이두호 선생과의 교감부터 소개한다.
"이두호 선생님이 홍익대를 졸업했는데요. 4년 학비로 그때 합정동 근처 땅을 사놨으면 최소한 수천억원이 되지 않았겠냐고, 과연 그만큼 가치를 이제까지 생산해냈는지 모르겠다며 웃으시더군요. 돈 벌려고 했으면 다른 일을 했어야 한다는, 남의 길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죠. 그렇죠? 만화 그려서 이건희 회장만큼 돈 벌 수 있겠어요?자꾸 비교하니까 내가 늘 부족해 보이는 겁니다. 100억 가진 사람이 200억 가진 사람 앞에서 주눅 든다. 이게 말이 되냐구. 죽는 순간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죠. 다른 사람은 얼마짜리 관에 들어가는데 하면서…. 숫자놀이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하는 숫자가 얼마냐죠. 그 이상 숫자는 짐만 되니까 말입니다."허름한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각자 나눠야 할 짐은 분명 따로 있다. 그 이상 '숫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기업가다. 선생 말처럼, 만화가에게 필요한 고민은 '돈을 그리지 않고 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좋은 작품', 명작도 그래서 탄생하게 된다.
"소위 명작이라는 것, 백년이 지났는데도 왜 읽히겠습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굶으면 배고파지는 것은 똑같듯이, 지금도 변치 않는 사고나 사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죠. 돈을 초월하는 좋은 작품을 내놓겠다는 마음이 작가들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심지죠. 그런데 어떤 순간 배고프다 해서 비겁해지고, 또는 배부르다고 오만해지고 하면 심지가 없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밥만큼 세월을 초월한 '명작'이 또 있을까. 음식을 만드는 이와 만화가는 서로 통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모두 세상에 '양식'을 내놓는 사람들, 김동화 선생도 "오래된 맛집"을 예로 들며 만화가의 '손맛'을 강조했다. 찌그러진 냄비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다소 불편하고 허름해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 그런 집들 많이 있잖아요. 맛이 있기 때문이겠죠. 작품에도 맛이 있습니다. 작가마다 '손맛'은 다릅니다. 작가에게 '손맛'은 사상이자,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장맛이 나는 메주처럼, '손맛' 역시 사물에 대한 해석이 겹겹이 쌓여야 합니다. 누구 이야기면 그건 이론일 뿐이죠. 사상이 아닙니다.그런데 요즘 트랜드가 어떻게 간다고 그걸(손맛) 바꾼다? 말이 안 되죠. 물론 '찌그러진 냄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찌그러진 냄비'라서 그 맛이 나는 건 아니니까요. 손맛을 그대로 갖고 가되, 표현이나 스타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저 내 맛이 좋다고, 버려도 되는 '구닥다리'를 고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민들레' 외치던 이상무 선배 잊을 수 없어"좋은 '양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3요소가 다 나왔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 '심지'가 첫 번째요. 누구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사상, '손맛'이 그 다음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작가의 표현이나 스타일이 담길 '냄비' 또한 꼭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선생은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바로 작가 자신의 '맛', 인간미다.
"금방 목욕하고 나와 아주 말끔한데도 왠지 껄끄럽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참 꼬질꼬질하고 못생겼는데도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단 말이죠. 같은 돈을 주고 물건을 샀는데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거 바가지 쓰지 않았나 의심부터 생기게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작가 자신이 어떤 맛, 어떤 인간미의 소유자인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