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4월 3일자 17면."만우절 오보, 사과드립니다."
중앙일보
국내에 활동 중인 외국언론 종사자들이 이를 보고 어떻게 평가했을까. 아마 '오만과 게으름, 편견에 찌든 대한민국 신문'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중앙>은 사진 외에도 기사에서 오보소동으로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4월 영국 <가디언>의 만우절 기사를 사실로 받아써 망신스러운 해프닝을 연출했다.
<중앙>은 4월 3일 전날 영국 <가디언>의 '만우절 장난기사'를 사실로 잘못 알고 보도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 신문은 2일 17면에 "브루니, 영국인 좀 세련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세계적인 모델 출신인 카를라 브루니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영국 정부의 위촉을 받아 영국 사람에게 패션과 음식을 가르치는 문화대사로 나선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앙>은 바로 다음날 '만우절 오보,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를 통해 "본지 4월 2일자 17면에 보도한 '브루니, 영국인 좀 세련되게 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는 오보였다"며 "이 기사는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 인터넷판이 1일 보도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며 오보를 낸 경위를 해명했다.
<중앙>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최근 남편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영국을 국빈 방문한 카를라 브루니 여사를 영국인의 패션 자문역으로 추대한다'는 요지의 기사였다"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가디언이 권위지인 데다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영국-프랑스 관계, 브루니 여사가 영국에선 지인이 많은 유명인사라는 점 등을 감안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하게 됐다"고 전했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데 있다. 그래서 팩트는 매우 중요하다.
인력난, 기사마감 허덕이는 신문들 연출·조작 위험 '노출' 특히 포토저널리즘은 사각형의 프레임으로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극적인 단면만을 선택하여 부각시키기 때문에 팩트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사진기자들이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감시간만 되면 신문사 편집국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 바로 사진부서다. 때론 사진부 기자들과 편집부 기자들이 사진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데, 그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진 한 컷으로도 독자들은 감동과 충격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사소통도구로서의 포토저널리즘은 보도에서 내용의 일부가 되며 문자와 함께 보도 매체의 사회적 가치와 동일한 준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기능적인 면에서 볼 때 사진은 기사보다도 더 실감나고 강력한 호소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통해 어떤 주제가 쉽게 구체화되고 영상으로 전달받기에 무엇보다도 독자가 쉽게 내용을 이해한다. 특히 현장을 증언하는 생생하고 거짓 없는 기록으로 대중에게 더 강한 현실감을 던져준다. 사진은 이성에 의해 자극 받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진의 연출과 조작 파문은 끊임없이 발생하곤 한다.
지금과 같이 많은 누리꾼들의 감시 그물망이 없었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간혹 인력난에 허덕이는 일부 지역신문들 중에는 마감에 쫓겨 사진을 연출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위험성은 늘 상존해 있다.
경칩을 앞두고 겨울잠에 취해있는 개구리들을 잡아 모아, 막 깨어난 것처럼 연출하는가 하면, 산중에 핀 개나리꽃들을 꺾어다 도심 아파트 주변에 걸어놓고 '도심에도 봄이 찾아왔다'는 사진 기사들을 많이 보아왔다. 급한 마감시간 때문이라는 게 주된 핑계지만, 사각형 프레임에 갇힌 포토저널리즘의 함정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방송들도 '거짓 이미지' 팩트로 대체하다 창피 당하기도
비단 신문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거짓 조작방송도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방송사가 실제 사례를 토대로 한 방송을 연출해 문제가 된 것은 그동안 적지 않게 밝혀져 충격을 줬다.
1999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에 출연한 한 여성 출연자는 학력을 속인 것이 시청자들에 의해 들통 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한 2002년 1월 26일 MBC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의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당시 제작진은 너구리 포획장면을 놓치자 그물망에 걸린 너구리 1마리를 풀어놓고 잡는 장면을 다시 촬영한 후 방송해 방송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1998년 KBS 1TV 자연 다큐멘터리 <일요스페셜- 수달> 편에서도 자연산 수달이 아닌 보호 상태의 수달을 촬영한 것이 탄로나 물의를 빚었다.
이처럼 거짓·조작을 한 데에는 제작진의 안이한 제작관행과 일부 출연자의 도덕불감증 그리고 방송사의 허술한 검증 시스템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이 이처럼 거짓 이미지를 팩트로 대체함에 따라 정작 중요한 팩트는 날이 갈수록 뭔가 촌스럽고 기만적인 것이 돼가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정보폭발이 가속화 될수록 의사사건(pseudo-event)이라는 개념의 가차기 돋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연한 것이 아닌 계획적인 사건을 말한다.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언론의 연출·조작은 일종의 '의사사건'이자 언론의 '자기 합리화'로 볼 수 있다.
부어스틴은 이러한 형태를 빗대어 '철학적 페니실린'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 국내 언론계의 잦은 조작·연출 사건은 의사사건, 즉 철학적 페니실린의 과다사용으로 볼 수 있다. 처방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미지 사고'의 범람은 수용자들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칫 수용자를 거짓 이미지에 의한 의사사건 중독증에 걸리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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