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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덥다. 여름이다. 바다나 강으로, 산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넘쳐난다. 여름 휴가를 맞아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느닷없이 생뚱맞게도 대한민국 국도변에서 여름 고구마 장사를 하였다. 그럼 얘기를 해보자. 얘기는 여름 휴가로부터 시작 된다. 지난 7월 30일 여름 휴가를 떠났다. 그것도 밤 11시였다. 그날 종영한 <태양의 여자’를 시청한 뒤 아내와 함께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전남 강진군의 처가.
처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장모님과 처, 이렇게 셋이서 해남의 '송호리해수욕장'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벌써 여러 번 떠났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전남 강진을 향해 떠났고, 다시 강진에서 땅끝마을을 향해 떠난 것이다. 여름은 떠남의 계절인가 보다.
마음도 몸도 가볍게 길을 떠난다. 그야말로 룰루랄라가 따로 없다. 아무런 부담 없이 훌쩍 떠나면 그만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유로움. 이게 사람이 사는 맛 아니겠나 싶다.
오늘은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거쳐 남창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해남으로 바로 가기로 하였다. 셋이서 하는 여행이라 서로 맘을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엿장수 맘대로처럼 운전수 맘대로 길을 접어들어도 괜찮겠지만, 경험상으로 보아 여행 때는 서로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좋았던 것.
내가 운전대를 잡고 오전 12시쯤 '송호리해수욕장'을 향해 출발. 강진을 벗어나자 길은 옛길 그대로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도 길을 닦고 있었는데 하다말다를 반복하는지 옛길을 달린다. 새 길은 군데군데 연결되다가 말고, 말다가 연결되기를 반복한다.
짙푸른 산림. 잘 자란 나무들이 산들거리는 바람에 춤을 춘다. 들판에서 익어가는 벼는 녹색 물결이다. 대풍을 예고하는 듯 넘실대는 들판의 모습이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산에는 잣나무를 비롯해 솔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등이 빽빽하게 자라 땅은 한뼘도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를 가도 녹색 자체다.
쭉쭉 내리뻗은 국도를 차는 내달린다. 쌩쌩 달린다. 그것도 왕복 4차선이라 거칠 것이 없다. 앞차가 느릿느릿 거북이 주행이면 추월하면 그만이다.
참고로 산림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먼저 물 함양기능으로써 산림의 총저수량은 190억톤이란다. 이는 소양강댐 10개의 건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토사유출방지기능이다. 산에 나무가 무성하면 토사가 유출되지 않아 농경지를 보호한다.
세 번째는 토사붕괴방지기능이다. 나무뿌리가 산지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네 번째는 대기정화기능이다. 산소공급량은 3천억톤이 넘는다. 이는 연간 약 1억명이 호흡할 수 있는 양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효과가 더 있다.
마지막으로 야생동물보호기능이다. 야생 조류를 보호하고, 야생동물들은 방재 효과에 만점이다.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이리라.
앞으로의 산림 전망으로는 교토의정서에서 인정한 탄소배출 흡수원으로서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될 전망이다.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산림내 생물다양성 확보,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등산, 휴양 등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가 크게 증가될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10년에는 산림의 가치가 약 10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을 쓰는 목적은 고구마 장사인데 갑자기 산림 얘기를 한 것은 그만큼 남도여행에서도 이제는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 산림이어서다.
해남 시내를 지나 송호리해수욕장을 향해 내달린다.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다 보니 앞에 고구마 판매 안내 간판이 보인다. 국도변 안전지대에 첫 번째로 나타난 고구마 판매대다. 아무런 건물도 없이 다리 난간에 그늘막 하나만 설치한 뒤 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사실인즉슨 집사람이 고구마를 원해서였다.
휴가를 전남 강진으로 간다니까 동료 한 명이 해남 밤고구마를 한 포대 주문하더라는 것. 자잘한 고구마 한 포대를 구입하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벌써 2대의 자가용이 늘어서 있어 다음에 차를 댔다. 앞차가 떠나고 앞으로 나가자 차에서 내려 주인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는 장모님과 집사람.
다시 차로 돌아온 아내가,
"우리에게 잠깐만 고구마를 팔아 달라고 하네?"
"뭔 얘기여. 시방."
"아줌마가 고구마가 떨어졌다고 밭에 가서 싣고 온다며 30분만 봐 달래."
"그려 그것도 경험이것다."
나에게 다가온 아줌마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애들이 오면 밭에가서 고구마를 싣고 오는데 오늘은 애들이 학원에서 늦는 갑네요. 미안헌디요."
뜨거운 대낮 그것도 대로상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고 일면식도 없는 아줌마가 대뜸 우리에게 고구마 장사를 제안했던 것이다. 그것도 시간은 딱 30분. 보상으로는 고구마 한 포대를 준다고 했다. 고구마 장사도 해보고 고구마도 벌고 일석이조의 효과다.
"오케이."
우리 일행을 믿어주는 아줌마도 고마웠지만, 난생 처음 길거리에서 고구마 장사를 하게 되었다는 셀럼이 더 컸으리라. 내가 "안돼" 했으면 그만이었을 터.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에다 지금은 낮 1시가 넘어선 금싸라기 같은 귀중한 시간이다. 송호리해수욕장을 찾아서 간다 하더라도 물에 들어가 있을 시간은 어림잡아도 서너 시간이 전부였기에. 그래도 우리는 망설임 없이 아줌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파는 고구마는 세 종류. 10키로짜리는 2만5천원, 5키로는 1만3천원, 짜찌래기로 담은 한 포대는 1만8천원, 총 5포대였다. 그런데 길목이 좋아서인지 차량은 계속 밀려들었다. 먼저 다마스가 '끼익' 하면서 브레이크를 잡더니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이 고구마 얼마에요."
"큰 것은 2만5천원이고요, 작은 것은 1만3천원, 땅바닥에 것은 1만8천원입니다."
"근처 해남에서 왔는디요. 큰 것을 2만원에 주세요."
"워메, 사실은요.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못하것는디라."
"너무 비싸요."
처음 찾아온 손님은 비싸다는 말을 남긴 채 차를 몰고 쌩하니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떠난다. 허탈했다. 모처럼의 장사 경험이었는데 비싸다면서 떠나니 마음까지 허전했다. 다음엔 승용차 2대가 선다.
"고구마 얼마에요."
"이것은 2만5천원, 작은 것은 1만3천원입니다."
"큰 것으로 주세요."
"고맙습니다."
얼른 10키로짜리를 들고 차량으로 이동해 실어주었다. 그리 무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비스 차원에서다. 아무것도 아닌 배려에 남자는 입이 쩍 벌어진다. 당연히 손님 대접을 받았다는 표정이다.
뒤에서 다가온 2명의 아줌마는 2포대 밖에 없는 고구마를 고를 것도 없이 하나씩 가져간다. 고를 수도 없는데다 고구마도 이젠 없다. 그런데 차량은 계속 밀려든다. 장사라는 것이 이런 재미에 하는가 보다.
고구마 판매소로는 처음 있는 곳이라 차량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던 것이다. 30여분이 지나자 드디어 고구마를 싣고 득달같이 나타나신 주인 아줌마. 차량 서너 대가 있는 것을 보고는 손놀림이 바쁘다. 이마와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번들번들. 쉴틈이 없다. 돈을 계산할 겨를도 없다. 여기저기에서 고구마 값을 물어보는 통에 우리도 덩달아서 답변을 하느라 금세 북새통이 된다. 그런데 승용차에서 내린 한 아줌마가 다가와,
"아줌아, 2키로만 주세요."
"그렇게는 안 판디요."
"그래도 먹어보고 맛있으면 더 사게 2키로만 주세요."
손님인 아줌마도 아주 집요하게 나온다. 겨우 2키로를 사면서 고구마 몇 개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손님의 손에 들린 고구마를 주인 아줌마는 기어코 빼앗아 도로 내려놓는다.
"좀 많이 주어야지. 먹어보고 더 살 것인데요. 인심이 너무 사납네."
쫑알쫑알 대면서 악다구니를 한다. 전형적인 도시 아줌마다. 그 통에도 장모님은 두어 개를 얼른 집어서 봉투에 넣어준다.
“아, 생각을 해보세요. 농사짓는 분들의 땀방울을…."
주인 아줌마는 가만히 있는데 내가 더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곧 주인 아줌마를 도우려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도착했다. 그런데도 아직은 사람의 손길이 무척 필요했다. 농번기에는 부뚜막의 부지깽이도 쓸모가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갈 길도 바빴지만 농사를 짓는 분들의 이 어려움을 알기에 일을 계속 거들었다.
"이젠 얼릉 가세요. 시간이 없을 것인디."
주인 아줌마는 고마움 반, 미안한 마음 반으로 우리들에게 고맙다며 이제는 떠나도 되겠다며 말을 하신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주소를 노트에 적어놓고 갈 것을 여러 번 권했단다. 다음에 한가하면 고구마를 한 포대 보내주시겠다는 뜻이란다. 아내는 그 동한 판매한 금액을 금고 밑에 놓은 채 주소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러고도 나는 봉고에 싣고 온 고구마 포대 약 30여개를 땅바닥으로 내렸다. 그 사이에도 승용차는 계속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했다. 참으로 순식간에 맛본 손맛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장사를 맡긴 아주머니도 통이 컸지만, 그것보다는 내겐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다.
약 1시간을 도와준 보상으로는 요소비료 포대에 담은 고구마 2포대. 큰 수확이었다. 당시엔 경황이 없어 사진도 찍지를 못한 게 아쉽다.
모처럼 남도 여행을 하시는 전국의 여행객 여러분, 도로변 등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는 "농사 짓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 한 마디만 합시다. 그러면 농사짓는 아줌마의 손이 구입하시는 분의 봉투에 여러 번 들어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농산물을 많이 애용했으면 합니다.
2008.08.05 08:4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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