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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에 이어)
어머니가 여자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분 덕분에 평소의 내 무지가 얼마나 두텁고 깊은지를
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문(또 하나의 문화)’강좌도 들은 적이 있고 <노둣돌>이라는 여성전문지도 읽었으며 <허(her)>라는 여성지도 한 때 구독하면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나름대로 갖춰 왔다고 자부했는데 여전히 나는 남자였고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고약하다는 ‘한국남자’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삶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어머니가 아무리 늙고 병 드셨어도 여자’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어머니를 대하는 내 생활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떠올리고 그런 상
황과 맞닥뜨렸을 때 다시 자각의 깊이를 더 해 가야 비로소 삶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집에 손님들이 오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어무이. 오늘 손님들이 오신대요. 먼 데서 오시는데 아주아주 좋은사람들이에요.”
낯선 사람이 우리집에 올 때는 미리 좋게 말씀을 몇 차례 드려서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친
밀감을 가지게 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계나 배척이 심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대꾸를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분명 어머니는 “뭐 하러 오는
데?”라든가 “손님 오시믄 뭐 대접학꼬?”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찌랄하고. 백찌 할 일이 없으니까 밥 얻어 쳐 먹을락꼬 오는기지”라고 말씀하시
기도 한다.
하지만 내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어머니 말씀이 하도 의외여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또 그래라! 사람들 있는데서 또 오줌 누고 오라고 그래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상하며 기다리던 몇 가지 대꾸만 생각하고 있다가 얼른 어머니 말귀를 못 알아들은 내가
다시 물어보자 어머니는 한껏 눈만 흘기고는 입을 닫으셨다.
사람들과 마루에서 전을 부쳐 먹든가 소일거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도 시간이 된 듯하여 어머니께 “오줌 눌 때 된 것 같은데요. 어머니 오줌 좀 누고 오세요”라고 말을 하면 대꾸도 않고 째려보시곤 하던 기억이 나면서 ‘어머니는 여자다’고 하신 분 말씀이 떠올랐다.
그분은 언젠가 내가 카페에 올린 어머니 사진 중에 자다가 막 일어 난 빗질도 않은 상태의
쑥대머리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남자도 그렇지만 어떻게 여자가족 사진을 올리면
서 쑥대머리 상태로 올릴 수 있냐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 사진을 본다면 기분이 어떨지 생
각해 봤냐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란 나는 더 조심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내가 여성으로 산다는 것과 여
성을 배려 한다는 것에는 넘어서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
오줌에 젖은 어머니 속옷을 남의 눈에 띄는 마루 기둥 옆에 쌓아 놓는다거나 어쩔 수 없이
사용 한 종이기저귀를 쓰레기봉투에 넣기 전에 급한 대로 나뭇간 구석에 먼저 처박아 둔다든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머니가 늙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여성성도 제거 된 것처럼 여긴 것도 그렇거니와 어머니의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을 지켜드리지 못한 일상속의 일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손님들 보는데서 또 오줌 누러 가라고 하거라”는 호통을 듣고 거듭 반성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사람들 많이 있는데서 ‘우리 어머니는 오줌을 못 가리는 사람이다. 똥오줌을 누여 드
려야 한다’고 공언을 한 꼴이니 그 말을 듣는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싶었다.
그래서 거울도 사다 드리고 머리핀도 은장 무늬가 새겨진 고급으로 사다 드리기도 했다. 머리띠도 색깔별로 사다놓고 이것저것 골라 쓰시게 했다. 빗도 여러 종류를 사다 드리고 손님들이 오면서 혹 뭐 필요한 거 없냐는 전화를 해 오면 어머니 손지갑이나 손수건, 그리고 모자 등 몸 치장품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껏해야 천원 안쪽 하는 물건들이고 고급 머리핀이 하나에 2천원이었다. 이즈음 나는 뜻밖의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51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8.05 18:1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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