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우린 일면식도 없군요. 세상에, '우리'라는 말이 이토록 어색하고 깔끄러울 수 있다니요. 사는 동네가 비슷해 쓰레기 버리다 마주칠 일도 없고, 제가 워낙 학벌이 민망한 관계로 동문모임에서 만날 일도 없고, 생활 수준이 같아서 오다가다 지하철 안에서 부딪힐 일마저 말복날 개털만큼도 없으니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그러고 보면 우린 다른 별에 사는 것만큼이나 머나먼 종들이 아닐는지요.
저도 결혼이란 걸 했다면 아마 지금쯤은 둘째 아들 정도가 그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 테고 아마 국방부 장관 명의로 보내온 편지에 감읍하여 내 아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귀하의 권위는 천지신명급으로 우러러지고 있을 겁니다.
아마 그런 상황에서 제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이 불온도서로 찍혔다면 제 손으로 그 책들을 수거하여 손수 분서를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겠지요. 제 신념이나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넘어 제 아들이 군대에서 당할 고통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미 스물 몇 살의 무렵부터 그런 일을 충분히 당해 온 전 그래서 가족을 만드는 종류라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의사와 상관없이 기존에 만들어진 가족들이 저 때문에 받아 온 고통만으로도 전 괴로웠습니다.
경찰이나 안기부에서 늙고 병든 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쓰러져 입원하신 병원에까지 경찰들이 지켜서고 어린 조카들 학교까지 따라오고…. 독하기로 저명한 사람도 가족들을 그런 식으로 앞세우면 흔들립디다.
얘가 날도 더운데 무슨 씨나락을 이렇게 맥락도 없이 까고 있나 싶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소금꽃나무>라는 책을 들어보셨나요(읽어보셨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아무래도 욕심일 듯합니다)?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도서에 떡 하니 껴있는 걸 저도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기분이 묘합디다. 영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불온도서 한 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알기에 황송스럽기도 했다가 좀 복잡하긴 했습니다만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책 나오고 연말에 문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야, 이거 이러다가 체제내화 하는 거 아냐. 그 짱짱하던 선배들이,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어떻게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지를 적잖이 지켜본 저로선 당연한 긴장이었지요.
귀하들이 분실 당했다고 길길이 뛰는 10년, 아군들마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 확인하게 된 게 이제나마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구요.
8년째 민주화운동 보상심사중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도 비판적 지지를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버글버글했습니다. 이인제씨가 노동부장관이 되고서는 해고자들 복직시켜준다고 신청하라고 해서 도장을 새로 파기도 했구요. 몇 날 며칠을 복직에 대한 기대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무렵이었나. 대대적인 사면복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면복권의 꿈을 이루게 되질 않았겠습니까. 신문 한 면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뒤덮일 정도로 그야말로 대대적이었고 그게 그물이었다면 그야말로 일망타진이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이 없는 거예요. 처음엔 착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랬지요. 너만 빠졌을 리가 없다. 확인해봐라. 주변에서 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때는 진짜 세상이 천지개벽이라도 한 줄 알았으니까.
검찰청에 전화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착오 아니랍디다. 어찌 쪽팔리고 민망하던지. 물론 속으로만 그랬고 겉으로는 일망타진의 그물을 표표히 빠져나온 행세를 한동안 하고 다니는 걸로 그 씁쓸한 배제를 즐겼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의 일입니다. 자식들을 군대에서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잃거나 감옥에서, 혹은 학교에서, 더러는 저수지에서 퉁퉁 불은 자식을 건져 낸 부모님들이 수 백일을 싸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 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감옥갔다 온 것도 보상해주고 해고자들은 복직도 시켜주고.
긴가민가했지만 다들 신청이라도 해보자는 분위기라 저도 신청했습니다. 그게 2000년도의 일이고 같이 신청한 사람들은 대부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만 전 아직도 심사중입니다. 만 8년째. 아마 조만간 그 법률도 사라지겠지요.
노무현 정권 때의 일입니다. 귀하들이 잃어버렸다고 방방 뛰는 그 정권 때도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길거리로 쫓겨났고 다리 난간으로 올라갔고 크레인에도 올라가고 그리고 죽어갔습니다.
오다가다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한진중공업에선 김주익이라는 노조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 홀로 129일을 매달려있다 그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고. 2주일 만에 지회장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도크 바닥에 몸을 던져 지회장이 홀로 가는 머나먼 길을 동행했습니다. 그 일로 한진중공업에는 86년도에 해고된 동료들까지 복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빠졌구요.
'반자본주의' 혹은 '반체제' 도서로 분류해야
저는 새로 개업한 동네 슈퍼에서 행운권 추첨을 할 때도 밀가루 한 봉다리나마 걸려 본 적이 명실상부하게 없습니다. 사소하나마 복되고 영광된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말입니다. 종당 우리가 누려야 할 세상이 이런 모습이다 싶게 완연히 평화롭고 자유로운 데다가 발랄함이 불꽃놀이 같던 촛불집회의 현장에서마저 때때로 적적함을 감출 수가 없었으니 전 정말 이상한 피를 타고난 걸까요.
1000일을 넘게 싸운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관을 죽부인처럼 옆에 끼고 50일을 넘는 단식을 이어가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1000일을 향해 거침없이 육박하는 KTX 승무원들, 이미 400일을 넘어선 이랜드 노동자들, 코스콤 노동자들. 죽는 거 말곤 다 해본 그들의 얘기를, 이미 86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얘기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 집회가 전 왠지 쓸쓸하더란 말입니다.
태생이 원래 그러려니 하기에 불온도서의 저자라는 난생 처음의 직함도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웬 씨나락을 이리 길게 까먹냐구요? 날도 더운데.
제 불만은 한 가지입니다. <소금꽃나무>가 반정부 반미로 분류된 걸 납득할 수가 없어서요. 283페이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반미는커녕 미국을 언급이라도 한 부분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 그렇다면 반정부라는 말씀인데.
그 책은 이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귀하들이 그렇게 같잖아 하고 시답잖아 하는 노무현정부 때 나온 책이란 말씀이올시다. 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시나요? 아니라면 적의 적은 동지란 말씀이시온지?
전 그 점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사와 외람되나마 한 가지 정중히 부탁을 드리옵건대 반자본주의 코너로 옮겨주시던가 반체제 코너를 신설해서 그쪽으로 분류를 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어차피 꼴리시는 대로 하실 일이오나 가급적이면 그쪽이 피차간에 덜 우사일 듯하여 한마디 씨부려봤습니다.
<소금꽃나무>가 어떤 책인지 아나요?
오늘 아침에 한진중공업엘 다녀왔습니다. 노조에 볼일이 있어 잠시 다녀오는 길에 몇 명의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바람처럼 스치는 찰나에도 그들에게서 훅 끼쳐오는 쉰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소금꽃나무는 그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등짝에 소금꽃이 수백 번 피고 지도록 집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그렇게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살게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귀하들이 지금 한 개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눈이 벌건 황금의 열매들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으나 지금은 구조조정으로 쫓겨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하루하루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국방부장관으로서 사병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지당한 일이올시다.
제겐 올해 환갑이 되는 큰언니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주제로 제 한 몸 건사하고 거기다 새끼들 넷을 먹여살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한나절만 같이 살아봐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 신산스런 삶을, 나도 팔 달고 나왔으면 언젠간 흔들어볼 날이 올 거라는 근거 희박한 낙관 하나로 사는 사람입니다. 위로 쪼로니 딸 셋을 두고 막내가 아들인데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이 언니도 아들 군대 보내놓고는 웁디다.
지금 생각하니 우울증이다 싶은 수심이 꽤 깊었습니다. 장마통에 군대 막사가 비에 쓸려 장병들이 실종됐다는 뉴스를 귀도 밝지, 저 바깥에서 듣고는 비누거품을 뚝뚝 흘린 채로 방으로 뛰어 들어와 넋을 놓고 앉았질 않나. 누군가 탈영했단 소식이 뉴스에 들리면 그이의 신상이 밝혀질 때까지 밤새 화닥거리질 않나.
군대 간 청년들이 지나가면 굳이 불러서 휴가 나왔냐. 언제 입대했냐. 부대가 어디냐. 때리진 않디. 밥은 잘 주디. 딴데 가지 말구 집으로 곧장 가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붙잡고 헌병처럼 미주알고주알 캐묻질 않나.
수해복구에 나선 장병들의 얘기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면 "남이 구이헌 아들덜을 데리가선 왜 저 쌩고상을 시킨댜~ 집이서 저만침 일을 허만은 쌀이 만석은 나오것다" 탄식이 늘어지곤 했었습니다.
그 마음들을 헤아려주십시오. 그리고 군대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부모님들. 부디 그분들의 한을 풀어 주십시오.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그게 국방부 장관으로서 귀하께서 진정을 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국방부가 진짜 지켜야 할 것?
인정하실지 모르겠으나 지금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행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학대는 원조가 모두 '메이드 인 군대'입니다. 논리적으로 인간을 설득할 수 없을 때 폭력이 동원되는 법입니다.
이성적으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없을 때 완력이 지배하게 되는 법입니다. 군대가 자존심을 빼앗기고 인격을 짓밟히고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통제되는 조직이 아니길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천금같은 아들들인 이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군번과 서열의 힘이 아니라 빛나는 지성과 안목으로 청춘을 갈고 닦을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도 세금내고 새끼 낳아 키우고 사는 땅에서 가급적이면 인간의 꼴을 갖추고 살게 하는 일에 때로는 피도 흘리고 눈물도 쏟아가며 기신기신 이만큼이나마 온 게 법이고 제도였고 역사였습니다.
그 나날의 과정들이 속절없이 고무줄 튕기듯 되돌아가는 걸 보면서 10년 민주정부를 참칭했던 자들이 귀하들에 비하면 얼마나 대책없는 인종들인지 한심하기가 짝이 없는 요즈음입니다. 마치 지들이 잘나서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 마냥 천년만년이나 누릴 것처럼 기고만장에 안하무인으로 그들이 권력을 낭비하는 동안 귀하들께선 절치부심 권토중래를 치밀히 도모해온 결과들을 우린 지금 눈 번연히 뜨고 목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책을 내고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것 중에 또 하나는 그게 사실이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는 확인들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한 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그게 사실이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봐라. 마치 그런 일로 제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제 애써 제가 그런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다들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게 될 테니까. 이미 많은 것들이 득의양양하게 권토를 중래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제 경험에 의한 통박으로는 이제 조만간 불온도서 명명 다음에는 명예훼손이든 국가보안법이든 쌔고 널린 이현령비현령들이 누군가의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척하니 걸리겠지요. 그리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총알이 박힌 자살자가 되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바다에서 혹은 저수지에서 퉁퉁 불은 시신이 되어 허리춤에 돌멩이를 매달고 떠오를 일만 남았나요. 두둥실~~
국방부가 지켜야 하는 게 권력과 그들의 기득권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이고 안전이라면 그런 불행한 일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귀하들과 일면식도 없이 사는 게 어쩌면 천복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귀하께서 맡은 구역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주시면 그게 만인의 천복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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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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