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에서 엄마의 고향인 필리핀 보홀섬 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 결국 경옥이는 코피를 쏟았다. 누워서 엄마 암비의 간호를 받고 있는 경옥이.
김당
직항편을 이용해 필리핀 세부(Cebu)까지 간 다음에 세부의 힐튼 리조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21일 배를 타고 보홀섬의 투비곤까지 가서 항구에서 버스 정거장으로 이동해, 다시 차편을 이용해 고향 우바이(Ubay)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세부 공항에는 하나뿐인 남동생 잔잔 암비와 잔잔의 친구가 마중나와 있었다. 짐이 워낙 많다보니 짐을 들고 가기 위해 우바이에서 세부 공항으로 마중온 것이다. 경옥이와 동생들은 사진으로 봐온 외삼촌과 세부 공항에서 상봉했다.
비행기를 타보는 것이 처음인 세 자매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연신 신나했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산골소녀 경옥이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를 해 코피를 흘렸고, 우바이로 가는 지프니 차 안에서도 다시 코피를 흘려 암비를 걱정스럽게 했다. 다행히 동생 경미와 엄마 등에 매달린 막내 경은이는 쌩쌩하게 마냥 좋아했다.
한 살 터울인 경미는 언니보다 키도 크고 '나홀로 입학생'인 경옥이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내년에 경미가 입학하면 자매는 1, 2학년 통합반 수업을 받게 되니 그때가 되면 실제로 '같은 반 친구'가 되는 셈이다. 같은 동네에 친구가 1명 있어 경미는 다행히 '나홀로 입학생'은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꿈에 그리던 고향에 온 탓일까? 인천에서만 해도 별로 말이 없었던 암비는 연신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암비가 투비곤에서 우바이로 가는 지프니 차안에서 망고, 바나나, 코코넛 나무를 가르쳐주자 경미는 "와, 바나나 많다"라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암비는 지프니가 우바이읍에 도착하자 점심을 먹고 집에 가자고 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오히려 긴장한 탓일까? 암비는 점심을 다 먹자 곧장 집에 갈 생각을 안하고 식당에 설치된 가라오케 마이크를 잡고 발라드 팝송을 몇 곡 불렀다. 암비는 공항에서 봤을 때와 달리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집이 가까워지자 암비는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며 "엄마가 4년 전에 심장병으로 쓰러졌다"면서 "남편이 보내드린 보성 녹차를 마시며 조금 나아졌다는데 걱정이 크다"고 울먹였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를 보자 암비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8년 만에 엄마 만난 암비 "우리 엄마, 아파서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