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본 '필리핀 외갓집'... "와, 바나나 많다"

[소원우체통 지원사업] 산골소녀 경옥의 엄마 고향 찾아가기

등록 2008.08.24 11:29수정 2008.08.29 11:01
0
원고료로 응원
a

전남 구례 연곡분교 '나 홀로 입학생' 문경옥(맨 왼쪽)양이 21일 두 동생과 함께 엄마의 고향인 필리핀 보홀섬을 방문했다. 오른쪽은 누나와 외조카들을 마중 나온 경옥이의 외삼촌 잔잔. ⓒ 김당


[기사보강 : 24일 오후 1시 31분]

여행이 아니라 마치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는 사람 같았다.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처음 만난 문경옥(구례 토지초교 연곡분교 1년) 학생의 엄마 리자 비 암비(Liza B. Ambe)씨의 트렁크는 무려 5개나 되었다. 트렁크 4개만으로 경옥이의 두 동생(경미, 경은)을 포함해 4인 가족이 부칠 수 있는 용량(80kg)을 초과하자 1개는 들고 타야 했다.

한국보다 훨씬 더 '더운 나라'로 가는 데도 경옥이(8)는 물론 경미(7)와 경은이(3)도 진이나 긴팔 옷을 입고 왔다. 왠 짐은 그렇게 많고, 아이들은 또 이 삼복더위에 왠 긴 옷? 그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남편 문성호(49)씨는 묻지도 않았는데 "모두 입고 가서 친정 식구들한테 주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짐이 왜 이렇게 많냐고 묻자 암비는 웃기만 하고 이번에도 문씨가 끼어들어 "나도 모르겠어요. 전부 다 친정 식구들에게 갖다 줄 것인데, 며칠 전부터 뭔가를 잔뜩 담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문씨는 "나도 고물을 수집하지만 (아내가) 버리는 것을 못 봤다"고 푸념했다.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 트렁크에는 친정집과 동생, 외삼촌 등 고향의 친척들에게 줄 옷가지와 대용량 샴푸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고물상을 하는 남편 문씨가 팔려고 수집해 놓은 중고품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버리는 중고품이지만 필리핀 고향에서는 새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엄마의 고향 필리핀 보홀섬으로 가는 먼 길


a

경옥이네 네 가족이 필리핀에 갖고 간 짐. 80kg이 넘는 이 짐에는 암비의 가족들에게 줄 것들이 많다. ⓒ 김당


필리핀 세부 지역 보홀섬 출신의 암비는 99년 11월 피아골 자락의 지리산 토박이인 농촌 총각 문성호(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씨와 결혼했다. 암비는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 등 1남3녀 중 둘째인데 본인도 딸만 셋을 낳았다. 남편 문씨는 폐타이어 수집을 주로 하는 고물상이 주업이고, 암비는 인근 농공단지 등에서 일한다.

결혼 이듬해인 2000년에 혼자서만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을 뿐 어려운 살림 때문에 엄두도 못내다가 이번에 8년 만에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암비에게 고향 방문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암비는 작년에 구례군에서 지원하는 다문화가정 고향 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가야 한다'는 조건이 걸림돌이었다. 혹시라도 아내 혼자 보냈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괜히 인심 쓰고 뒷감당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무사안일'의 발상이었다.

결국 암비 가족은 '부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가지 못했다. 일자리 때문에 남편이 함께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비는 지난해 막내 경은이의 여권까지 만들어 놓고도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이번에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기획한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페인의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에 선택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이번에도 생업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는 문씨는 '취재진이 동행한다'고 하자 "그렇지 않아도 (아내와) 아이들만 보내는 줄 알고 걱정이 컸다"면서 "취재진이 함께 간다니 한 시름 놨다"고 반색을 했다.

문씨는 이어 "경옥이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나온 뒤에 SBS 방송에도 나와 마을에서 유명인이 되었다"며 "집에 컴퓨터가 없으니 이번에 취재한 것도 프린트(기사)와 방송 테이프를 만들어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부탁했다. 그리고 문씨는 보름간의 먼 길을 떠나는 세 딸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엄마 고향 첫 방문... 경옥이는 코피를 쏟고

a

전남 구례에서 엄마의 고향인 필리핀 보홀섬 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 결국 경옥이는 코피를 쏟았다. 누워서 엄마 암비의 간호를 받고 있는 경옥이. ⓒ 김당


직항편을 이용해 필리핀 세부(Cebu)까지 간 다음에 세부의 힐튼 리조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21일 배를 타고 보홀섬의 투비곤까지 가서 항구에서 버스 정거장으로 이동해, 다시 차편을 이용해 고향 우바이(Ubay)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세부 공항에는 하나뿐인 남동생 잔잔 암비와 잔잔의 친구가 마중나와 있었다. 짐이 워낙 많다보니 짐을 들고 가기 위해 우바이에서 세부 공항으로 마중온 것이다. 경옥이와 동생들은 사진으로 봐온 외삼촌과 세부 공항에서 상봉했다.

비행기를 타보는 것이 처음인 세 자매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연신 신나했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산골소녀 경옥이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를 해 코피를 흘렸고, 우바이로 가는 지프니 차 안에서도 다시 코피를 흘려 암비를 걱정스럽게 했다. 다행히 동생 경미와 엄마 등에 매달린 막내 경은이는 쌩쌩하게 마냥 좋아했다.

한 살 터울인 경미는 언니보다 키도 크고 '나홀로 입학생'인 경옥이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내년에 경미가 입학하면 자매는 1, 2학년 통합반 수업을 받게 되니 그때가 되면 실제로 '같은 반 친구'가 되는 셈이다. 같은 동네에 친구가 1명 있어 경미는 다행히 '나홀로 입학생'은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꿈에 그리던 고향에 온 탓일까? 인천에서만 해도 별로 말이 없었던 암비는 연신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암비가 투비곤에서 우바이로 가는 지프니 차안에서 망고, 바나나, 코코넛 나무를 가르쳐주자 경미는 "와, 바나나 많다"라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암비는 지프니가 우바이읍에 도착하자 점심을 먹고 집에 가자고 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니면 오히려 긴장한 탓일까? 암비는 점심을 다 먹자 곧장 집에 갈 생각을 안하고 식당에 설치된 가라오케 마이크를 잡고 발라드 팝송을 몇 곡 불렀다. 암비는 공항에서 봤을 때와 달리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집이 가까워지자 암비는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며 "엄마가 4년 전에 심장병으로 쓰러졌다"면서 "남편이 보내드린 보성 녹차를 마시며 조금 나아졌다는데 걱정이 크다"고 울먹였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를 보자 암비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8년 만에 엄마 만난 암비 "우리 엄마, 아파서 어떻게 해"

a

경옥이의 엄마 암비가 8년만에 엄마를 만나를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당


암비의 엄마는 심장병으로 쓰러지면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걷질 못했다. 암비는 계속 울면서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며 한국말로 "우리 엄마, 아파서 어떻게 해"라고 되뇌었다. 엄마가 울자 경옥이와 동생들도 외할머니를 보고 덩달아 울었다.

그러자 이내 이웃 사람들과 암비의 여동생과 작은아버지 등 친척들이 모여 들어 소리내어 우는 암비를 지켜봤다. 암비의 작은 아버지는 울먹이는 암비를 진정시키느라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미국으로 시집간 사촌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고 세 아이들 또한 엄마를 따라서 울었다.

한국으로 시집간 암비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동네 주민들이 암비의 친정집으로 모여들자 온동네 개들도 컹컹 짖으며 암비네 집으로 모였다.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섞여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집 근처에 풀어놓은 소 두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경옥이는 이곳 우바이의 외가에서 보름간 머물게 된다. 지난 2월 입학식을 앞두고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연재물의 첫 주인공이 된 경옥이는 당시 장래의 희망과 소원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도 되고 싶어요, 어른도 되고 싶고요. 짝꿍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에 가보고도 싶어요."

그 가운데 마지막 소원 하나가 이뤄진 것이다.

암비는 우바이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집에서 소도 키우고 돼지도 한 마리 키운다"면서 "집에 가면 동네 사람들과 취재진을 위해 돼지를 한 마리 잡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돼지를 잡겠다는 암비를 뒤로 하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그곳에서 잠을 잘 형편도 안 되었고 암비 집에서 키우는 돼지는 잡기에는 너무 어렸다.

우리는 우바이에서 투비곤을 거쳐 세부시로 돌아오는 길에 보홀 지역의 많은 초등학교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학교는 어디에 가든 눈에 띄는 가장 좋은 장소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마을에서 가장 좋은 시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연곡분교의 마지막 잎새인 경옥이가 다니는 학교가 폐교될 경우, 남들은 필리핀으로 영어 조기유학도 보내는데 차라리 외갓집에서 다니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친구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고, 알게 모르게 겪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 대한 차별도 없기 때문이다.

a

8년 만에 고향을 찾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암비와 경옥이 자매. ⓒ 김당



#나홀로 입학생 #처음가본 필리핀외갓집 와 바나나많다 #경옥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