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일까, YTN이 던지는 돌발질문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누구도 대신 답해 줄 수 없는 이 시대의 숙명

등록 2008.09.03 18:36수정 2008.09.0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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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돌발영상을 모아 놓은 <YTN> 홈페이지.

돌발영상을 모아 놓은 홈페이지. ⓒ 박상규

돌발영상을 모아 놓은 홈페이지. ⓒ 박상규

다시 실존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실존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신 답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오롯이 나의 문제입니다. 친구도 선후배도 가족도 노조도 대신 답해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지식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공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방식이고 밥줄인 사람들은 그 누구 하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물음입니다.

 

YTN <돌발영상> 임장혁 기자는 묻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떠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돌발영상팀장이던 그는 지난 1일 사회부로 인사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돌발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저히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는 사장이 낸 발령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자리를 뜨면 <돌발영상>이 불방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원활한 업무 인수 인계를 위해서는 최소 4개월은 걸리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대책 없이 회사는 발령부터 냈습니다. 돌발영상이 뻔히 불방될 줄 알면서도 그랬다는 점이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임장혁은 묻는다 "펑크나도 인사 따라야 합니까"

 

a  임장혁 YTN 돌발영상팀 기자

임장혁 YTN 돌발영상팀 기자 ⓒ 전관석

임장혁 YTN 돌발영상팀 기자 ⓒ 전관석

누가 뭐라 해도 그에게 <돌발영상>은 그의 생명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는 묻습니다. 

 

"돌발영상이 당장 펑크가 나는 마당에, 저는 구씨의 인사지침에 따라 사회1부로 조용히 가있어야 하는 게 맞습니까?"

 

그는 또 묻습니다. 구본홍 사장에게 공정방송 약속만 확고히 받아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선후배들한테 던지는 물음입니다.

 

"부팀장 인사는 실국 자율에 맡긴다고 한 다음날 부팀장 인사를 단행하고, YTN 조직의 안정과 건강성을 위한다면서 정치·경제 등 주요 취재부서를 겨냥한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고, <돌발영상>과 <별의별뉴스> 등의 특화코너를 키우겠다면서 <돌발영상> 불방을 강요하는 구씨의 지금 행태는 이미 공정방송을 크게 침해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인사에게 받은 약속이 언제까지나 지켜질 것이라 믿어야 합니까?"

 

그는 또 묻습니다. "정권과 싸우자는 이야기냐"며 "무모한 비현실적 투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며 현실론을 앞세우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럼, 이대로 살아도 되느냐"고 말입니다. "인사 전횡과 그 후 YTN에서 무슨 일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대로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해도 되느냐"고 말입니다.

 

동료·후배들에게 물었지만 이 또한 결국은 임장혁 기자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일 것입니다.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한 응답도 고스란히 YTN 사람 개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 답을 줄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대신 선택하거나 결단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임 기자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싸우기로 했습니다. 그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롯이 그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오늘을 사는 지식노동자들은 그 어떤 식으로든 "너는 누구냐"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실존적인 물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KBS 기자들도 PD들도, MBC 기자들도 PD들도, 언론재단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실존의 질문에 직면한 이 땅의 언론쟁이들

 

a  '언론장악 저지·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제로 제77차 촛불집회가 7월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언론노조,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연맹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언론장악 저지·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제로 제77차 촛불집회가 7월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언론노조,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연맹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언론장악 저지·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제로 제77차 촛불집회가 7월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언론노조,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연맹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특히 언론재단의 풍경이 그렇습니다. 언론재단 노조는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진들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임원진의 무능과 무책임을 그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밥줄 때문이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세상 모두 알고 있는 일입니다. 재단의 주요 밥줄인 정부광고 대행권을 빼앗겠다는 정부의 압박에 대책 없이 손든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밥줄, 중요합니다. 이것처럼 중요한 게 또 무엇이겠습니까. 노조의 존립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언론과 저널리즘의 진흥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곳의 사람들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밥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굳이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밥줄이 정말 생명과도 같다면 그들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달라고 강권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일인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의 밥줄이 소중하면 타인의 밥줄도 소중합니다. 사원들의 밥줄이 소중하면, 임원진들의 밥줄도 소중합니다. 임원진도 인간이고, 언론재단 사람들도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물어야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밥줄이 끊긴다는 것은 극심한 공포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만큼 두렵고 진저리 처지는 공포는 없습니다. 어찌해도 뿌리칠 수 없는 두려움입니다. 밥줄은 생명입니다. 밥줄을 끊는 것은 '사회적 살해'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나의 밥줄을 위해 타인의 밥줄을 끊겠다는 것은 '인간적 살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밥줄은 그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그래서입니다. 물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인간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할 것이냐고 물어야 합니다. 그 결정은 동료가 선후배가 노조가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가혹한 시절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2008.09.03 18:36ⓒ 2008 OhmyNews
#YTN #임장혁 #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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