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라 돌려"거미가 거미줄에 걸려든 벌이 도망가지 못하게 마구 돌리고 있다.
강기희
아름다운 가리왕산 자락이 훤히 보이는 창문 밖에 왕거미가 집을 지었습니다. 실을 뽑아 이리저리 오가며 며칠 걸려 지은 집입니다. 건축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척척 잘도 짓습니다. 다 짓고난 거미집은 예술작품보다 아름답습니다.
거미줄에 걸린 왕벌 걸리다많은 거미줄이 모여 집이 되는 거미집. 그렇게 지어진 집은 강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 보였습니다. 거미가 창문 밖에 집을 지은 이유는 다름 아닌 먹이를 쉽게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밤이면 환하게 불을 켜두는 방이라 날벌래들이 많이 날아 드는 길목인 곳입니다.
끈적이 역할을 하는 거미줄에 걸리면 누구든 살아남지 못합니다. 오래 전 매미를 잡을 때 거미줄을 이용해 잡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살아있는 거미줄에서 도망치기란 우물 속의 미꾸라지가 밖으로 나오는 것 같이 어려운 일입니다.
어제 아침 나절 거미줄에 벌 한마리가 걸려 들었습니다. 꿀벌인데요. 사람을 쏘는 땡삐나 바드레벌은 아닙니다. 왕벌이 거미줄에 걸리자 거미줄 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거미는 왕벌이 도망치지 않게 재빨리 집을 수리했습니다. 꼼짝없이 걸려든 벌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 보려 하지만 거미줄이 다리를 놓아 주지 않습니다.
집 수리를 끝낸 거미가 벌에게 다가옵니다. 위기를 느낀 벌의 날갯짓이 더욱 강해집니다. 거미는 그런 벌을 잠시 지켜보더니 앞 다리 두 개를 이용해 벌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미는 마치 서커스를 하듯 큰 벌을 마구 돌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의 다리는 거미줄에 더욱 감기고 날개를 퍼득일 시간도 없었습니다.
벌을 한참 돌리던 거미는 이제 완전한 먹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던지 멀찌감치 떨어지더니 자신의 거미줄에 기대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거미는 해먹에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