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숙소에서 나와 강당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대화가 정겹습니다. 강당으로 가는 길은 ‘사랑의마을’의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거닐 수 있는 정겨운 길목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며, 각종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어르신들이 별로 이용하지 않다보니, 복도를 걷는 것 외에 별다른 운동거리가 없는 어르신들로선 이 길이 운동하는 길이며 낭만을 기대해도 되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이들이 하늘에 소망을 갖게 하는 길이며,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될지 기대해도 좋은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체부자유 어르신들이기에 이 길이 고행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항상 숙소에서 강당으로 가는 길은 시끄럽습니다. 채 20m가 될까 말까한 거리지만 보행기에 의지하거나 휠체어에 의지해 남의 도움 없이는 앞으로 갈 수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긴 여행길입니다.
인생길은 고난으로 점철됐다고 했나요? 인생길은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고 했나요?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고행길이라 했나요? 정말 이 짧은 길이 남의 손을 빌리거나 보행기를 의지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길이 분명합니다.
보행기 끄는 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두런두런 어르신들이 낭만과 기대를 담아 담소하는 말소리는 이내 시끄러운 보행기 소리에 묻히고 말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요. 온갖 시끄러운 세상사에 갇혀 더 고단한 인생길. 어르신들이 그런 길을 오신 것이죠.
고된 인생길 싹 펴준 무대
‘예영어린이집’ 어린 꼬마들이 무대로 올라서니 금방 어르신들의 눈망울이 어린아이들의 그것보다 더 똘망똘망해집니다. 아이들은 예의 순전한 몸짓으로 ‘정열의 꽃’이란 무용을 해댑니다. 손놀림 몸놀림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르신들, 그들의 모습이 더 구경꺼리입니다.
“정열의 꽃 피었다. 가슴에 내 가슴에 정열의 꽃 피었다. 가슴에 내 가슴속에 피었다. 그대 사랑 참이슬로 뿌리를 내리고, 밤 풀벌레 소리로 그대 이름 외우며 달과 별을 헤이면서 사랑을 만들고 세상 속에 빛을 모아 정열의 꽃 피웠죠. …”(김수희의 ‘정열의 꽃’)
좀은 이 가사와 우리 어르신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그 마음이야 진정 정열의 꽃을 피우기 원하지 않을까요. 이어진 ‘환상의 커플’에서는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귀여워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시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십니다. 우리 어르신들도 저리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요.
이어 ‘조치원문화원’의 김한예 선생님이 부른 ‘정선아리랑’의 구성짐에는 어르신들의 넋이 나간 듯하였습니다. 조금은 늘어지는 분위기를 즐긴 어르신들을 위해 다음으로는 ‘창부타령’으로 흥을 돋우시는군요. 역시 탁월한 가락배열입니다.
“하늘과 같이 높은 사랑 하해와 같이도 깊은 사랑 칠년대한 가뭄 날에 빗발같이도 반긴 사랑 당명황에 양귀비요 이도령에 춘향이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하루만 못 봐도 못 살겠네 리리리~~ 리리리리 릿리리 리리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어쩜 저리도 흥겨울까’ 생각하려는 찰라, 무대로 홍 할아버지가 뛰어 올라가시는군요. 흥에 겨워 못 견디겠다는 뜻이죠. 어울렁 더울렁 가락 짓는 이와 가락 듣는 이의 춤사위는 모든 어르신들의 자리를 들썩이고야 말았습니다. 몇 분의 어르신들이 어울려 어깨춤을 추고야 ‘창부타령’은 끝이 났으니까요.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쏘냐?
초대 손님만 무대에 서란 법 있습니까. 그래서 직원들과 어르신들도 무대에 섰습니다. ‘사랑의마을’ 직원들의 특별무대는 솔직히 말하라면 양념은커녕 분위기 확 깨는 무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어르신들 접대한다고 무대 위로 겁 없이 뛰어든 이들이니까요.
그래도 어르신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동정점수라고 하는 걸, 직원들은 알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정점수를 한없이 퍼붓던 어르신들이 이번엔 질세라 자신들이 무대로 올라갑니다. 그러더니 글쎄 ‘잘했군 잘했어’를 부르시는군요.
“영감 (왜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 보신 할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왜 그래요)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나 (보았죠) 어쨌나 (친정집 오라버니 장가들 밑천으로 주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 (하춘화의 ‘잘했군 잘했어’)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왜 웃기느냐고요? 거야 다 외톨이들인데 그런 노랠 불러대니 그렇죠. 하여튼 재미는 있습니다. 직원들 순서보다는 좀 났군요. 주인들이 깬 분위기를 일거에 뒤엎으려는지 이번에는 ‘조치원문화원’ 사물놀이팀이 무대에 오릅니다.
역시 무대체질입니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지만 힘차게 리듬을 따라 쳐대는 징, 꽹과리, 북, 장구소리가 강당을 꽉 채우는군요. 우리 어르신들 또래는 아니지만 거의 따라오는 연세들인 거 같은데 그 정열이 20대 못지않습니다.
땀을 흠뻑 적시며 쳐대는 신명놀이에 ‘사랑의마을’ 식구들은 너무 흥겨운 한때였습니다. ‘조치원문화원’과 ‘예영어린이집’은 ‘사랑의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리 와 즐거움을 나눠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번 추석이 아픔인 이 없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사랑의마을’은 벌써 추석 분위기입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 번진 만면의 미소를 읽으며 그들이 인생길에서 얻은 주름들이 확 펴질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한가위 맞이 행사가 잠깐이라도 그리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랑의마을’ 한가위 잔치를 위해 수고해 주신 ‘예영어린이집’, ‘조치원문화원’은 물론, 찬조해주신 ‘예우회’, ‘깁밥나라 조치원점’, ‘기룡리 노인회’, ‘서면사무소’, ‘연서감리교회’에 감사드립니다.
무대잔치가 끝나고 ‘사랑의마을’에서 마련한 한 아름의 선물잔치가 이어졌습니다. 선물을 들고 웃음 띤 얼굴로 숙소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보는 이들의 마음이 더욱 흐뭇합니다.
외로운 이들에게 더욱 외로움을 타게 할 수도 있는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망각이 이번 추석에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가까운 이웃 중에 다가올 추석이 즐거움이 아니라 아픔인 이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김학현은 연기군 서면 노인요양원 '사랑의마을' 안에 있는 '안디옥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2008.09.11 13:3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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