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에는 정이 넘친다

[베트남 메콩강 여행기] 아무도 찾지 않는 메콩강에 갔어요 (4)

등록 2008.09.28 14:10수정 2008.09.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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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사람은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밖이 어수선하다. 방문도 없는 침상에서 자는 우리 옆으로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다. 아침잠이 많은 나와 집사람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아랑곳없이 딱딱한 침상 위에서 어기적거린다.

소란이 심해지고 밖이 점점 밝아온다. 일어나 보니 대야에 생선이 담겨 있다. 미리 이야기해 놓았는지 아침 일찍 생선을 오토바이에 싣고 온 것이다. 아마도 생선 장사와 흥정하느라 새벽부터 떠들썩했나 보다.


이런 오지에 오면 제일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변소 사용하는 일이다. 소변이야 베트남 사람이 흔히 하는 것처럼 적당히 구석진 곳을 찾아 해결한다고 해도 대변은 그렇지 못하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이 화장실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비닐포대로 적당하게 둘러막은 곳에서 상반신을 내 놓은 채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 하루만 참기로 한다.

 메콩강에 사는 주민이 흔히 사용하는 변소. 옛날 한국에서 처럼 변소는 푸대접을 받는다.
메콩강에 사는 주민이 흔히 사용하는 변소. 옛날 한국에서 처럼 변소는 푸대접을 받는다. 이강진

식사 시간이다. 또다시 푸짐한 음식과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 시골의 인정은 음식에서 나온다. 조금 전에 가지고 온 생선으로 요리한 음식이 아침상에 놓여 있다. 메콩강에서 잡은 물고기가 틀림없다. 생선국에는 각종 채소가 들어 있다. 베트남 사람이 즐겨 먹는 박하잎도 있다. 한국 사람 중에는 박하잎을 못 먹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느끼한 맛을 없애주는 박하의 향이 좋다. 특이한 것은 바나나도 국에 들어 있다. ‘바나나 생선국이라고 해야 하나?’ 국에서 바나나를 건져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

소화도 시킬 겸 어제 둘러보지 못했던 건너편 길로 산책한다. 그저 평범한 또 다른 시골길이다. 농가 옆 물이 괸 곳에서는 오리가 한가히 노닐고 있다. 연꽃도 피어 있다. 눈을 멀리 돌리니 높은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평야가 펼쳐진다. 넓은 들에는 벼가 자란다. 베트남이 쌀 수출국임을 떠올리게 하는 시골의 모습이다.

천천히 오던 길을 돌아오는데 큰아들이 나를 보고 손짓한다. 따라가 보니 주인집 아줌마와 딸이 보트에서 손짓한다. 우리를 위해 이웃집에서 빌린 보트다. 보트가 너무 작아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보트에 오른 우리에게 큰아들이 어디서 따 왔는지 넓적한 연꽃잎을 건넨다. 따가운 햇볕을 막는데 제격이다. 아내에게는 연꽃도 건네 준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노를 젓던 주인아줌마는 집 근처에서 내리고 큰아들이 익숙한 솜씨로 보트를 젓는다.


연꽃잎으로 해를 가린 우리는 메콩강 지류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큰 보트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가 탄 조그만 배는 위험스럽게 기우뚱거린다. 강변에서 따주는 이름 모를 열매를 맛보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본다.

보트에서 내려 집으로 와 보니 주인아줌마는 바나나를 따서 손질하고 있다. 무엇인가 주어서 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골의 인심을 다시 떠올린다. 바나나를 잔뜩 비닐포대에 담아 준다. 정성이 고맙다.


 연꽃잎은 모자를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연꽃잎은 모자를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이강진

 바나나를 따서 가져가기 쉽게 손질하는 주인 아줍마. 도시에서 보기 힘든 정을 나눈다.
바나나를 따서 가져가기 쉽게 손질하는 주인 아줍마. 도시에서 보기 힘든 정을 나눈다. 이강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도로가 아닌 강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금 넓은 강으로 나와 짐을 내려놓는다. 조금 기다리니 멀리서 보트가 온다. 주인아줌마의 손짓을 본 보트는 강가에 대충 세우고 우리를 태운다. 정류장도 없는 시골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워 타던 것과 똑같다. 손을 흔들어 우리는 고마움을 표시한다. 우리와 함께 호찌민으로 가는 큰아들도 어머니가 싸 준 보따리를 둘러메고 어머니에게 손을 흔든다.

우리가 탄 배는 제법 크다. 배 안에는 열 명 정도의 승객이 있다. 승객은 분초를 다투며 사는 사람보다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든 사람이 대부분이다. 같은 동양사람이지만 외국인 티가 나는 우리를 모두 쳐다본다. 이런 외진 곳에서 외국사람 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배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물침대가 있다. 승객 몇몇은 천장에 걸려 있는 그물침대에 누워 배의 흔들림을 즐긴다. 그물 침대에 누워 있던 서너 살 되는 여자아이가 외국인을 처음 보았는지 나를 보고 무척 까분다. 내가 눈짓을 주기만 하면 그물침대 속에 몸을 숨기고, 내가 다른 곳을 보면 바꼼히 얼굴을 내민다. 나는 앉아 중심 잡기도 어려운 그물침대에서 온갖 재롱을 다 떨며 나와 숨바꼭질을 한다. 티없이 맑은 표정이다. 사진을 찍었다. 자신이 찍힌 모습을 보여주니 무척이나 수줍어한다.

 배에는 그물침대가 있어 승객은 한가로이 침대에서 여행을 즐긴다
배에는 그물침대가 있어 승객은 한가로이 침대에서 여행을 즐긴다이강진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나를 쳐다보며 여행 내내 장난치던 꼬마 아가씨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나를 쳐다보며 여행 내내 장난치던 꼬마 아가씨이강진

배를 타고 3시간 그리고 버스로 2시간을 가야 호찌민시에 도착하는 긴 여행이다. 그러나 메콩강에 펼쳐지는 이국의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천천히 배로 가는 것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보다 한결 여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은 천천히 하는 것이 더 좋다는 나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뱃길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즐기고자 떠나는 것이 여행 아닌가?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이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어느 소설에서 주인공이 읊조리던 ‘영원한 현재’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의 목적지 호찌민시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메콩강은 베트남의 젖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콩강은 베트남의 젖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강진

 시골에서는 메콩강을 중심으로 상업이 이루어진다
시골에서는 메콩강을 중심으로 상업이 이루어진다이강진

 메콩강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주민.
메콩강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주민. 이강진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메콩강 주민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메콩강 주민이강진

덧붙이는 글 | 메콩강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읽어 주신 분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메콩강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읽어 주신 분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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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바닷가 도시 골드 코스트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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