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55) 배움터

[우리 말에 마음쓰기 436] ‘학교’와 ‘학당’과 ‘학원’과 ……

등록 2008.10.02 10:46수정 2008.10.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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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교실이 있는 것도 아니요, 학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 끝에 윤봉길은 입을 열어 자신의 계획을 말하였다. “야학당을 마련하고 일을 시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별 수 없소. 우선 우리 집 사랑방에서라도 시작해 봅시다” 저녁 무렵 윤봉길은 사랑방에 흑판을 걸고 환경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배움터에 불이 켜지면서 새 희망은 약동할 참이었다 ..  《임중빈-천추의열 윤 봉길》( 물연구소,1975) 114∼115쪽

 

 언제부터였는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1980년대 들어서고부터 ‘배움터’라는 말이 곧잘 쓰였고, 요즈음도 드문드문 이 낱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 쓰이기로는 1960년대가 아닐까 싶은데, 그때에는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자리에서 꽤 쓰였어요. ‘이화여대’를 ‘배꽃계집큰배움터’로 고쳐서 써야 한다는 소리를 읊고 있느냐고 하면서.

 

 자료를 더듬어 보거나, 그 무렵 우리 말 운동을 하신 분들 말씀을 들으면, ‘이화여대’를 ‘배꽃계집큰배움터’로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글만 쓰기’를 외치는 분들 쪽에서 꺼내지 않습니다. 한글만 쓰기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한자 섞어쓰기’ 외치는 쪽에서 여론을 비틀려고 슬그머니 내놓은 말입니다.

 

 서로서로 좀더 나은 길을 찾아나서면 좋으련만, 왜 서로를 깎아내리고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가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자 섞어쓰기를 외치는 쪽에서 꺼내어 준 ‘배꽃계집큰배움터’라는 낱말을 곱씹으면서, 우리 말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화여대’라 했으니 ‘이화여대’라고 쓰지만, 옛 시조를 읊으면서 “이화에 월백하고”가 아닌 “배꽃에 달이 밝고”라 말하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대학교 이름도 ‘배꽃대학’으로 붙일 수 있지 않겠느냐 싶어요.

 

 그동안 써 온 한자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이름을 하루아침에 ‘SAMSUNG’이니 ‘LG’니 ‘SK’니 ‘Korail’이니 ‘J’니 하고 바꾸고 있어요.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학교이름뿐 아니라 회사이름을 ‘오이꽃’이니 ‘나팔꽃’이나 ‘감꽃’이니 ‘도라지꽃’이니 ‘나리꽃’이니 ‘겨우살이꽃’이니 하고 붙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또는, ‘소나무학교’나 ‘참나무학교’나 ‘미루나무학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쑥골학교’나 ‘기러기학교’나 ‘미나리학교’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아요. 곳에 따라서 ‘산내골학교’라든지 ‘두물머리학교’라든지 ‘꽃섬학교’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 학교(學校) : 일정한 목적과 교육 과정, 설비, 제도, 법규에 의하여 교사가

 │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 학원(學院)

 │  (1) = 학교

 │  (2) 학교 설치 기준의 여러 조건을 갖추지 아니한 사립 교육 기관

 ├ 학당(學堂)

 │  (1) = 글방

 │  (2) 개화기 때에, 학교를 이르던 말

 │

 └ 배움터 : 배우는 곳. 배우고 가르치는 곳

 

 배우는 곳이니 ‘배움터’입니다. 고개숙여 배우고 서로서로 한 가지 두 가지 나누면서 살아가는 슬기로움을 주고받는 곳이니 ‘배움터’입니다. 억지로 집어넣는 지식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하고 기쁘게 같이하는 곳이라 ‘배움터’입니다.

 

 다만, ‘학교’라는 낱말을 싹 걷어치우고 ‘배움터’라는 낱말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할 까닭조차 없습니다. 학교는 그대로 학교이고, 살갑게 배움을 어우러 놓는 마당을 ‘배움터’라고 하면 됩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새내기한테 새로운 배움마당이 어떤 자리인가를 알려주는 자리를 ‘새내기 새로 배움터(새터)’라는 이름으로 붙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든 회사든, 오리엔테이션이 아닌 ‘배움마당’ 또는 ‘첫배움터’를 열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치는 곳 이름으로 ‘글배움터’를 써 놓아도 어울립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가르치는 도서관 배움마당을 ‘책배움터’라 해 보아도 괜찮습니다. 갓 혼인하여 살아가는 젊은 가시버시한테 새 삶을 일러 주는 자리를 ‘사랑배움터’라 해도 되겠지요. 절이나 예배당에서는 ‘믿음배움터’를 꾸릴 수 있습니다.

 

 기자를 가르치는 곳이면 ‘기자배움터’가 되고, 교사를 길러내는 곳이면 ‘교사배움터’나 ‘교사기름터’가 되며, 의사를 키우는 곳이면 ‘의사배움터’가 됩니다.

 

 ┌ 배우는 곳 = 배움터

 ├ 몸을 씻는 방 = 씻는방

 ├ 표를 끊는 곳 = 표끊는곳 / 표사는곳

 └ 쉬었다가 가는 곳 = 쉼터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 우리가 어우러지는 그대로, 우리가 일구는 그대로 말이 되고 글이 됩니다. 우리 삶을 고스란히 말로 담아내며, 우리 생각을 찬찬히 글로 여미고, 우리 모습을 하나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02 10:46ⓒ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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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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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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