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인위적인 雅語化 경향
.. 가령 한자어를 대신하여 고운 우리 말을 쓴다고 하여 나타나는 인위적인 雅語化 경향은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경향으로 보인다 .. <궁핍한 시대의 詩人>(김우창, 민음사,1977) 384쪽
‘가령(假令)’은 ‘이를테면’이나 ‘그러니까’로 다듬습니다. “한자어(-語)를 대신(代身)하여”는 “한자말 말고”나 “한자말을 안 쓰고”로 손보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경향(傾向)으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나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볼 수 없다고”로 손봅니다.
┌ 인위적인
│
│→ 억지스런
│→ 우스꽝스러운
│→ 어설픈
└ …
“인위적인 雅語化 경향”에서 ‘인위적’을 다듬어 보지만, “雅語化 경향”은 다듬지 못하겠습니다. 글쓴이가 일부러 이렇게 쓴 대목이고, “고운말 운동”이란 그리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비판을 하고 있거든요.
글쓴이는 ‘한자어도 한국말이고 토박이말도 한국말’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분 글에 ‘가령’이나 ‘경향’ 같은 낱말이 보이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운말 운동”이라고 말해도, 이분은 굳이 “雅語化 운동”이라고 한문으로 고쳐서 한자까지 드러내면서 적어 놓습니다.
이 글이 쓰인 때가 박정희 독재정권 때이고, 제가 어림해 보기로는 박정희씨가 ‘한글專用’을 외치던 때이기에, 박정희씨를 비판하고자 이와 같은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1970년대는 제가 태어나던 때라 그때 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가를 또렷이 모릅니다. 그저 그때 신문과 책과 잡지로 짚어 볼 뿐입니다. 이때 ‘한글만 쓰기’를 힘껏 펼치는 한글학회와 여러 지식인들 움직임에 박정희 씨가 인기몰이를 하고 싶어서 ‘한글專用’ 방침을 공무원한테 내려보내곤 했습니다.
한글학회에서는 ‘한글만 쓰기’를 말했는데, 이를 비판하는 맞은편 지식인들은 꼭 ‘한글專用’이라고 적었습니다. 인기몰이를 하려던 박정희씨 또한 ‘한글전용’이 아닌 ‘한글專用’이라고 적은 담화문을 내놓습니다. “글을 쓸 때 한글로 쓰자”고 하면서 왜 ‘한글만 쓰기’로 적지 못하고 ‘한글專用’이라 했을까 아리송합니다만, ‘고운말’은 ‘고운말’이지 ‘雅語’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가서’가 있지요? 이 ‘아가서’는, 성경을 읽는 분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다들 알 터이나, 예수교를 안 믿는 사람은 누구도 모릅니다. “갓난아기를 이야기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일본사람이 일본 한자말로 옮겨적은 ‘雅歌’라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쓰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사랑노래’입니다만,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들려주는 노래와 같은 ‘아가’를 왜 ‘사랑노래’라 못하고 ‘雅歌’라는 말로 적을까요.
┌ 억지말 / 어거지말
└ 우스꽝말 / 웃긴말
알맞춤하게 빚어내는 말이라면 토박이말도 좋고 한자말도 좋고 미국말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써야 할 말이어야 합니다. 굳이 안 써도 될 만한 말을 장난삼아서 함부로 빚어낼 일은 아닙니다.
머리로 지어내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며 쏟아내는 말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머리에 담긴 지식으로 짜맞추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곰삭이는 가운데 터져나오는 말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 한 마디나 글 한 줄이나 생각 한 줌이 허투루 흘러넘치기보다는, 잘 삭여지고 알뜰히 다독여지면서 고루 나눌 수 있도록 샘솟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말이나 우스꽝말이 아니라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담는 말이면 반갑겠습니다. 어떤 말이든, 그 말을 듣거나 읽으면, 그 말을 펼친 분들 생각과 삶이 들여다보입니다.
ㄴ. 인위적 환경 속에서
.. 현실 세계와 단절된 채 인위적 환경 속에서 질식해 가고 있다 ..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전의우 옮김, 양철북,2008) 161쪽
“현실 세계와 단절(斷絶)된”은 “현실 세계와 끊어진”이나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으로 다듬습니다. “환경(環境) 속에서”는 “환경에서”나 “터전에서”로 손보고, ‘질식(窒息)해’는 ‘숨막혀’나 ‘목졸려’로 손봅니다.
┌ 인위적 환경 속에서
│
│→ 억지스런 환경에서
│→ 메마른 터전에서
│→ 팍팍한 삶터에서
│→ 싸늘한 곳에서
└ …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터전이 아닌 곳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니 억지스럽고,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니 메마르거나 팍팍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함이 조금도 없다면 ‘싸늘함’이나 ‘서늘함’이나 ‘썰렁함’을 느낍니다. ‘추위’를 느끼지요. 고달픕니다. 괴롭습니다.
┌ 고달픈 곳에서 숨이 막혀 가고 있다
└ 괴로운 곳에서 목이 졸리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숨막히는 곳에서 살아가고프지 않으리라 봅니다. 어떠한 사람도 목이 졸리는 데에서는 자기 꿈을 키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너그러이 감싸 안으며, 느긋하게 껴안는 터전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조금 더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한 번 더 따스한 눈길을 건네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거나 거들면서 살아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01 18:1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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