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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자식은 뭘까? 애면글면 키우다 시간이 되면 곁에서 떠나는 존재. 잠을 자면서도 잊지 못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잊지 못한다. 우리 또래의 부모들은 혹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군대 간 아들 면회 얘기만 나오면 사뭇 눈이 화들짝 떠진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지도 어언 16개월, 그래도 외국에 나가 대학 다니던 때보다는 자주 볼 수 있다며 기뻐하는 아내에게 그 16개월은 무엇일까.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 아들을 보며, “군대 참 좋아졌다”고 말하는 내게 아들은 무엇일까.
그래도 만들면 되는 날
내가 목사이다 보니 우린 일요일(주일)이나 붉은 글씨의 휴일에 외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붉은 글씨의 날에 밀리는 차들 사이에서 지루함과 불편함의 낭비를 즐길 이유가 없다. 까만 글씨의 날들에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일정을 잡으면 된다.
남들이 노는 날(일요일)은 절대로 내게는 빼낼 수 없는 날이고, 남들이 바쁜 날이 내가 그래도 시간을 내는데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목사는 놀고 먹는다’고. ‘남들은 닷새나 엿새 일하는데 목사는 하루만 일한다’나?
생각이야 자유니까 어쩌겠는가. 하긴 겉으로 보이는 일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하루를 남들이 닷새나 엿새 하듯 살아야 하니 얼마나 버겁겠는가. 쉽게 말하는 이보고, ‘그럼, 네가 목사 해봐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
사람에게는 죽어도 안 되는 게 있는가 하면, 그래도 만들면 되는 일이 있다. 우리에게 일요일(주일)은 죽어도 안 되는 날이다. 하지만 그 외의 휴일은 그래도 만들면 되는 날이다. 이번 개천절이 바로 만들어서 되는 날이었다.
빨간 글씨의 금요일은 곧 면회일?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은 아내가 전화기를 든 채 내게 말한다. 그러나 이미 무슨 내용인지 아는 터라 나 또한 선뜻 대답한다. 내 대답은 힘들어야 할 내 몸에 아무런 배려를 하지 않은 채 한 대답이다. 아들 때문에 얼마간의 희생을 감수해야겠다고 즉각 생각한 후 나온 답이다.
“여보,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 어때요?”
“할 수 없지 뭐. 자식 보는 일인데. 주보(일요일 예배 안내를 담은 문서) 오늘 중에 끝내고 준비하지 뭐. 우리가 고생 좀 하면 되는데 그럽시다.”
그렇게 우리 내외의 아들 면회하기 일정이 잡혔다. 아들은 금요일이 빨간 날임을 익히 알고 면회를 신청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법정 휴일이기에 면회가 허락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일요일이 내가 절대로 뺄 수 없는 날이어서 아들은 그런 때는 면회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번 개천절처럼 금요일에 빨간 물 머금은 날짜가 신나게 찍혀 있는 날에는 끔찍이도 군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다. 보통 때 서너 시간이면 되는 거리지만 빨간 글씨의 날에는 길면 그 배도 걸리니 섣부르게 허락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큰맘 먹고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실은 아들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간절한 요구이기도 한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결정 난 아들 면회, 아들 만날 희망에 5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고 출발을 했다.
하지만 역시 연휴라 길은 막히고, 길 위에서 기름을 허비하며 지루함과 불편함과 피곤함을 버무리며 인고한 시간이 6시간 이상, 속초의 아들에게 이르렀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아들이 거기 없다면 절대로 연휴에 그리로 가지 않았을 우리 부부가 결국 속초에 이른 것이다.
자식이 뭐기에?
원래 애정 표현이 호들갑스럽지 못한 우리 가족은 그저 웃음 담긴 눈으로 아들을 대했을 뿐이다. “잘 있었어?” 고작 한다는 말이 이랬다. 아들 녀석도 그저 빙긋 웃어 반가움을 표한다. 아들을 만나자마자 아내는 뭐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지난번 훈련을 받을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군대생활 하면서 힘든 것은 없는지…. 봇물 같은 질문들을 풀어놓는다.
아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없어요.” 아들을 만나자마자 우리는 음식점으로 직행했다. 물론 “뭐 먹고 싶은 것 없어?”라는 말을 한 후 결정된 식당으로. 이후 모든 일정은 아들에게 맞춰졌다. 그가 먹고 싶은 것, 그가 가고 싶은 곳, 그가 하고 싶은 일…. 경제여건이나 우리 내외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그렇게 우리의 1박2일이 갔다.
아들과 지내면서 느낀 것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늠름해졌다는 것이다. 군대 와서 거의 10kg 정도 살도 불었다고 한다. 팔이며 다리 등을 만져보니 무른 살이 아니라 모두 근육이다. 이만하면 군대 보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군대 폐지하라고 퍼포먼스를 했다는데 내 아들 같다면 군대 보낼만한 것 아닌지. 경색되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군대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나온다. 하루 더 외출이 허락된 아들을 모텔에 남겨 둔 채 우리내외는 일요일(주일)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뭐기에 이렇게 달려왔다 가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필리핀에 있을 때는 필리핀으로 아들을 보러 가고, 군대에 있을 때는 이 먼데까지 달려왔다 가니? 자식이 뭔지? 자식이 부모 맘 알까 몰라요? 그래도 감사하죠. 차가 밀려도 이렇게 자동차 타고 와 보고 갈 수 있으니. 보고 갈 자식이 살아있다는 게….”
아내의 말이 곧 내 말이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넘어있다. 얼마나 차가 밀리는지. 하지만 건강한 모습의 아들을 보고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이 생겨 내일의 일을 멋들어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낮에 본 아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 10월 3일과 4일 양일간 군대 간 아들을 면회하고 난 후 적은 글입니다.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0.06 13: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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