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만난 제자, 결혼에 "골인"

[교단일기] 마흔 셋, 나의 첫 번째 주례를 마치고

등록 2008.11.01 15:37수정 2008.11.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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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흔 셋에 첫 주례를 맡다. 사진은 영화 <어린신부>

마흔 셋에 첫 주례를 맡다. 사진은 영화 <어린신부> ⓒ <어린신부>


5회 졸업생 임정훈. 그의 결혼식을 닷새 앞둔 수요일 밤, 자율학습 감독을 끝내고 예비 신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료 교사의 차를 얻어 타고 인천지하철 작전역으로 나갔다. 예상했던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몇 명 더 있었다. 체격이 커서 레슬링 선수로 뛰었던 태훈이도 여자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었고, 최근 아빠가 된 공선이도 활짝 웃고 나를 반겨주었다.

그 자리에서 뜻밖의 제의를 듣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예비 신랑 정훈이가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술자리를 벌이다보니 취해서 농담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청하는 말, 돌아오는 일요일 낮 자신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결코 술자리에서 흘러가는 말이 아니었기에 나는 한동안 소주잔을 오른손으로 들고 멈춰 있었다. 갑자기 날아온 축구공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멍한 느낌이었다.

마흔 셋, 첫 '주례'

혹시나 해서 예비 신랑에게 먼저 약속했던 다른 주례 선생님께서 갑자기 사정이 생긴 것은 아닌지 묻기도 했다. 결혼 날짜를 잡은 뒤 일찍부터 나를 생각했고 아예 다른 주례 선생님을 알아보거나 고민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998년 2월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축구'라는 잊지 못할 인연 때문에 자주 만나 함께 땀 흘려 온 사이지만 그래도 중대사를 닷새도 못 남겨놓고 이런 제의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했고 아무래도 새 출발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경황이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래도 보통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나이 마흔 셋, 결혼식 사회도 아니고 '주례'라니, 흰 장갑을 껴야 하는 일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 젊은이들의 엄숙한 언약 아래에 이름까지 적어가며 관여한다는 사실이 그랬다.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표현하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목 주위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1991년 6월 어느 날, 내가 결혼했던 그 날이 떠오르면서 그 당시보다 더 긴장감을 느낄 정도였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사귄 지 6년 만에 결혼하는 순정파 청년이자 우리학교 5회 졸업생 임정훈. 재학 중 그는 별명이 'soccer'였을 정도로 축구에 미친 학생이었다. 아니, 나도 그와 별반 다를 것 없을 정도로 함께 '축구'로 살았다. 1995년, 그가 1학년 때 내가 학급 담임과 축구동아리 지도교사까지 맡으면서 맺어진 인연은 1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이듬해던가? 스승의 날이랍시고 축구동아리 학생들이 넓은 종이에 저마다 한 마디씩 적어서 내게 가지고 왔다. 그들은 학교 다니면서 유일한 즐거움이 선생님들과 축구하는 일이라 했다. 그것을 맘껏 시켜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깊어가는 가을 저녁이면 수업이 끝나고 금방 해가 떨어지지만 그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거나 학교 건물로 들어가 자율학습을 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야간 경기장의 조명탑 삼아 뛰고 또 뛰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나를 좀처럼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나도 함께 지치도록 땀을 흘려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지금도 학교 밖 생활체육 축구 클럽에서 그는 골잡이로, 나는 감독 겸 문지기로 함께 뛰고 있다. 행복하다.


정훈이를 포함한 그 축구동아리 친구들이 3학년이 된 1997년 가을, 나는 팀을 이끌고 인천시 청소년 생활체육축구대회에 나가 우승컵을 안고 돌아왔다. 도원동 인천공설운동장 안에서 그들의 손에 이끌려 높게 던져지던 그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리고 며칠 뒤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당시 애국조회 시간에 그들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트로피를 받아들고 파란 하늘로 더 높게 들며 자랑했다. 조회가 끝나고 주장을 맡은 정훈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교장실로 쳐들어가 정식 축구부를 창설해달라고 졸랐단다. 지금은 웃으며 나누는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 한 학생이 교장실로 직접 들어가 내뱉은 건의사항은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8년 10월 26일, 그가 내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와 신랑 자리에 우뚝 섰다. 나도 마찬가지로 긴장했다. 혼인서약부터 시작하여 성혼선언문 낭독 그리고 주례사에 이르기까지, 일주일 쯤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너무 빨리 진행한 것 같아 미안할 정도다.


주례사 첫머리의 중심 내용도 축구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의 멋진 응원가 제목이자 구단 엠블럼에 적혀있는 문장으로 주례사를 시작했다.

"You'll never walk alone."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단일기 #주례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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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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